[ICT 기술인문학 이야기(2)] 아날로그 사회와 디지털 사회의 괴리

지난 포스트에서는 디지털의 기본이 되는 비트의 역사를 중심으로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디지털 세상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기존의 아날로그 사회와 디지털 사회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르며, 이런 차이는 우리에게 현재 어떤 문제를 야기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문제를 가져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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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http://www.flickr.com/photos/thornet/3980317148/
아톰의 경제와 비트의 경제

디지털과 아날로그 세계의 차이에 대해 아마도 가장 정교하면서도 많은 인사이트를 주는 책으로는 MIT의 미디어 랩의 수장으로서 오랜 기간 일을 한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의 “디지털이다”를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그는 이 책에서 첨단의 디지털을 논의하는 자리에 등장한 에비앙 생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유럽의 1/3을 돌아 대서양을 건넌 후 캘리포니아까지 긴 여행을 한 이 생수는 국제무역이라는 전통적인 아톰의 교환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그의 손에 들어간 것이다. 무게도 상당한 이 생수는 많은 비용을 들여 선적을 한 뒤에 여러 날 동안 수천 마일을 배를 통해 대서양을 건넌 뒤에, 세관을 통과하고 각종 유통채널을 통해 전달이 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아톰이 지배하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세계는 실제로 만질 수 있고, 무게가 있으며, 이동을 할 때에는 다양한 감시를 받고 규제를 할 수 있는 대상들로 가득하다. 우리들이 직접적인 물건이나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 다음에는 이런 아톰들의 끊임없는 교환과 소비를 통해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며, 이런 방식이 아날로그 세계를 지배한다. 디지털 음악을 담고 있는 CD만 하더라도 이를 다루는 방식은 아날로그 세계에 있다. 예쁘게 포장을 하고, 선적을 한 뒤에, 매장을 통해서 팔린다. 물론 요즘에는 전자상거래를 통해서 많이 팔리기 때문에 매장에 직접 진열되는 경우는 많이 줄어들었다.

그에 비해 디지털은 일단 통신의 수단이 연결된 이후에는 무게도 없고, 전송에 시간이 걸리지 않는 비트를 통해 모든 것들에 대한 가치교환 및 진화와 발전이 이루어진다. 더 이상 물리적 공간에 대한 제약이 없고, 시간적으로도 자유롭기 때문에 아톰이 지배하던 아날로그 세계의 규칙과는 모든 것들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디지털 기술과 복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면 아날로그로 만들어진 원판을 훨씬 완벽하게 복제할 수 있다. 특히 디지털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잘 적용한다면 노이즈를 제거하거나, 다양한 효과 등을 동원해서 원래 가지고 있었던 원판의 콘텐츠를 훨씬 좋게 변환하는 것도 가능하다. 의료영역에 중요한 디지털 기술이 적용된 사례로 PACS(Picture Archiving and Communication System, 의학영상전송) 라는 것이 있다. 과거에 아날로그 필름으로 보던 흉부 사진이나 CT 사진 등을 모니터로 볼 수 있도록 디지털화하는 기술인데, 초창기 영상의학과 의사들은 이런 시스템을 믿지 않았다. 필름이 주는 세밀한 영상을 디지털 영상이 재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부 보수적인 의사들은 PACS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에도 1년이 넘게 이용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도 젊은 의사들이 각종 필터와 돋보기 기능 등을 이용해서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영상을 판독하는 것을 보면서 조금씩 디지털 시스템에 적응이 되기 시작하였다.  

디지털로 바뀐 콘텐츠는 복제가 쉽게 이루어지고, 더 나아가서 복제되기 전의 오리지널보다 더 나은 무엇인가를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에는 없었던 다양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서 글을 읽고 좋은 글이 있다면 이를 이메일로 전송한다면 어떨까? 필자처럼 트위터에서 좋은 문장이나 글을 퍼나르는 사람들은 어떤가? 마음만 먹는 다면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비트로 변환된 콘텐츠는 순식간에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문제는 이런 작업을 수행하는데 돈이 안 든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정보 대부분이 사용자들에게 무료로 공개되고 있는데, 이를 막을 수 있을까? 우리에게 너무나 쉽게 복제와 전송, 변형이 가능한 도구가 주어진 것이고, 모두들 이런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데 이를 막는다고 막아질까? 그런 종류의 작업은 쉽게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막는 것과 막지 않는 경우의 사회적 비용과 합의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아톰의 경제의 관점에서라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겠지만, 비트의 경제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면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앱이 콘텐츠를 파악하고, 이를 분석한 뒤에 요약을 하거나, 개인들의 취향에 맞게 새로운 신문이나 잡지 등을 자동으로 만들어서 제공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미 이런 종류의 앱과 서비스 등이 최근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본래 저작권법에는 어떤 소재를 가진 글을 요약할 경우에는 요약한 사람이 재산권을 가진다. 그런데, 이와 같이 프로그램이나 앱이 자동으로 요약한 경우에는 저작권을 어떻게 할 것인가?

(… 다음 회에 계속 …)

참고자료:
“디지털이다(being digital)”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저/백욱인 역, 커뮤니케이션북스, 1995

글 : 정지훈
출처 : http://health20.kr/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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