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목민 (3)] 디지털 파놉티콘: 사용자가 만들어가는 감시사회

최근 깊은 고민을 요구하는 일렬의 질문들과 지루한 씨름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명쾌한 답변을 찾지 못해 헤매는 시간만큼 고통스러우나 생산적인 것은 따로 없다. 아래에는 그 중에서 첫번째 고민을 같이 나눠보고자 한다.

블로그 베를린로그를 통해 디지털 사회의 진화가 열어가는 다채로운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내게 던져진 쓰라린 자극은 지난 8월 초 테크크런치에 실린 글 “파놉티콘 사회를 환영한다(Welcome to the Panopticon)“이다. 과거 오랜 세월 동안 그리고 최근에 다시 강화된 국가권력에 의한 감시와 검열은 한국시민에게 그리 낯선 문제가 아니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한국사회에는 감시와 검열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경향이 유감스럽게도 존재한다(참조: 이정환, 일상화된 감시와 검열, 파놉티콘 사회). 이정환의 글에 등장하는 한국사회의 감시와 검열의 주체는 국가권력과 이에 기생하는 이른바 하부권력체들이다. 그러나 예의 태크크런치 글이 주장하는 것은 사용자 스스로가 집단적으로 만들어가는 거대한 감시 시스템이 디지털 영역에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개별 사용자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개별 사용자의 행동이 집단화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알고리즘이 진화하면서 이른바 전 지구적인 디지털 감시시스템이 탄생하고 있다.

당신과 내가 디지털 감시사회를 만들고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디지털 감시 시스템은 서울 강남 골목골목에 설치된 수많은 CCTV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과 내가 나누는 휴대전화 통화 내용을 그 누군가가 녹음하고 있거나 엿듣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삭제한 이메일마저도 그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어서 수사기관이 원한다면 모든 이메일이 압수대상으로 쉽게 전락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기 검색어 순위가 법적 근거없이 모 포털사업자에 의해 조정되고 있다는 개연성은 매우 높으나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다.

점차 대중화되고 있는 스마트폰이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등 일렬의 서비스를 만나면서 새로운 디지털 감시세계가 알을 깨고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등 ‘인터넷 구름(Cloud)’의 구석구석에 올리고 공유하는 것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야구장에서, 축구장에서 느끼는 현장의 기쁨을 별도의 사진기를 통해 시간차를 두고 공유하는 방법보다는 스마트폰을 통해 음성으로 사진으로 영상으로 삶의 한 단면을 바로바로 나누는 것은 즐거운 일이며 동시에 복잡한 중간 단계를 생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용적이다. 그러나 지극히 개인적으로 또는 친구사이에서 즐기는 이러한 행위가 집단적으로는 다른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페이스북 사진서비스가 최근 제공하기 시작한 안면인식기능(facial recognition system)은 이러한 긍정적인 효과와 동시에 어두운 그림자를 함께 제공하는 대표적인 예다.

생일파티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릴 때 사진에 등장한 친구들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따로 연락할 필요가 없다. 페이스북이 자동으로 사진에 등장하는 얼굴을 인식해서 해당 사용자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단체사진을 함께 찍고 공유하는 것이 편해진 것이다. 영국 글래스턴베리에서는 매년 대규모 음악 페스티발이 열린다. 지난 2010년 페스티발 참가자들은 ‘행사 이후’ 독특한 온라인 체험을 했다. 2010년 페스티발에 함께했음을 기억하기 위해 전체 20만명이 이르는 참가자들 중 9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형 행사사진에서 각자 자신의 얼굴을 찾아 이메일 주소 또는 페이스북 링크를 남기는 방식으로 이른바 ‘집단 사진 태깅‘ 작업에 동참하였다(아래 사진 참조)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래스턴베리 페스티

단체사진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록하는 이러한 집단 태킹작업은 사용자 각자의 동의아래 진행되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오히려 매우 신선한 시도이며 자연스럽게 사용자의 대규모 참여를 이뤄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이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은 페이스북 안면인식기능이 사실상 행사사진에 나온 모든 사람의 얼굴과 페이스북에 저장된 모든 사진을 비교할 능력을 갖추었음을 의미한다. 참으로 놀라운 수준으로 분석알고리즘이 진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안면인식기술은 또한 iOS 5에도 적용될 것으로 예상되며 구글 또한 관련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참고 보기). 때문에 2012년부터는 대다수 스마트폰과 다양한 웹서비스에서 안면인식기능은 보다 광범위하게 사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이러한 기술에 대한 젊은층의 반응도 아직까지는 호의적이다. 아래는 지난 2010년 코카콜라가 이스라엘에서 젊은이들이 얼굴인식을 통해 페이스북에 로그인하고 이를 통해 오프라인 행사에서 ‘좋아요(Like)’를 표시하는 것을 가능케 했던 이벤트를 소개한 동영상이다.

그러나 이렇게 유용하고 재미있는 기능이 ‘개인’을 넘어서 집단화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여름 밤 여자친구와 함께 야구장을 찾은 모습이 모르는 다른 사람의 스마트폰에 찍혀 그의 페이스북에 등장하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페이스북은 물론 친구관계에 놓여 있는 사람의 얼굴만 자동인식하여 관련 사용자에게 알려준다. 따라서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페이스북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해당 개인은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난 기능이다. 페이스북 알고리즘은 ‘이론적으로’ 내가 누구와 함께 어디에 갔는지를 나를 모르는 타자의 사진 또는 동영상을 통해 분석할 수 있다. 이를 보다 진화시킬 경우 개인의 스포츠 취향은 물론 야구장에서 즐기는 맥주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등 보다 지능적인 분석이 가능하다. 바로 이렇게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행위를 통해 빅브라더(Big Brother)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술의 진보가 가져다 주는 긍정적인 유용성 뒷면에 도사리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다.

기술의 진보는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른바 ‘감시국가/사회(surveillance state)‘와 앞서 이야기한 ‘사용자와 알고리즘이 함께 만들어 가는 감시체계’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용자 집단이 생산하는 개인 정보의 집합체는 국가기관 등 일부 특권층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리고 독점 소유되는 것이 아니다. 공개 API를 통해 개인 정보에 대한 외부 접근성이 아직까지는 보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작용이 존재하는 기술의 진화에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하는 것일까? 법을 동원하여 안면인식기능을 금지하는 것 또는 이를 정치 쟁점화하여 해외 서비스가 한국 시민의 정보를 보관 및 분석하는 것을 막아버리는 것 등이 쉽게 떠오르는 정책수단이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금지와 규제 그리고 정치적 행동주의가 효과적인 방법일까? 아니다! 도시화의 폐단이 크다고 하여 다시 농경사회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이미 컴퓨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그리고 인터넷과 월드와이드웹이 탄생한 이후 인류의 운명은 이들과 함께 공존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페이스북의 안면인식기능을 금지하고 유사기능을 포함할 애플과 구글의 운영쳬계를 차단한다고 하여도 곧 다른 누군가에 의해 또는 다른 기업에 의해 이러한 기술은 한국사회에서도 구현될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 사용자는 이 기술이 선사하는 유용성에 환호할 것이다. 열차가 떠난 이후 뒤에 남은 철로에 가시철조망을 세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공개적 토론과 정보투명성 강화

디지털 사회의 부작용은 과거 방식의 통제를 통해 완화되지 않는다. 국가기관이 개별 기업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을 통해서 또는 개별 기술을 금지하는 것을 통해서 디지털 기술 발전의 속도와 폭을 통제할 수 없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이러한 문제를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부작용에 대한 연구결과를 공개하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거대한 긍정적 효과를 유지하면서 어두운 그림자를 축소시킬 실용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디지털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에 대한 면밀한 연구와 성찰이 필요하다. 이러한 지난한 과정을 통해 디지털 사회를 위한 새로운 경제체계와 법 체계 그리고 교육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것보다는 사회 투명성이 시민참여를 통해 확대되는 것, 정보독점을 최소화하는 것, 정보공유의 아름다운 가치와 무한한 가능성 그리고 동시에 그 위험성을 디지털 시민들이 습득하는 것 등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새로운 디지털 감시사회를 논해야 한다.

글 : 강정수
출처 : http://blog.muzalive.com/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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