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경제 패러다임 ‘창조경제’ 생태계 만들다
기업의 핵심가치는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바뀌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애플, 페이스북같은 기업을 탄생시키기 위해 1인창조기업정책이 추진됐다. 사진은 창조영재 육성을 위한 카이스트 영재기업인 개소식 모습.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필자다. (이민화 교수 제공)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면서 친기업 정책을 표방했다. 성장과 고용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벤처 정책에 대한 기대가 커지던 시점이었다. 시대 변화를 반영한 ‘벤처 2.0 정책’이 필요했다.
애플이 스마트 혁명을 주도하고, 페이스북은 소셜 혁명을 일으켰다. 지식 재산이 기업의 핵심 가치가 되는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시대 변화를 공부하기 위해 삼성경제연구소의 이언오 박사, 박광회 소호회장,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의 여인국 박사, 배종태 KAIST교수 등과 함께 창조경제연구회를 시작했다. 기업 활동의 기반이 생산에서 기술개발과 마케팅으로 이동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창조경제’로 정의하고 산업, 기업, 교육 분야의 화두들을 토론한 것이다.
2008년 7월 이장우 경북대 교수가 필자에게 물어왔다. “형님!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 걸맞은 기업은 1인 기업 형태가 되지 않을까요?” 필자는 “창조성은 작은 기업에서 발현 가능성이 높으니까 1인 기업도 가능하겠지만, 본질은 작은 창조기업이라고 할 수 있겠지”라고 답했다. 이 교수는 1인 창조기업 정책을 추진해보자고 제안했다. ‘1인은 상징적 의미인데, 창조보다 1인에 집착하면 문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필자의 우려도 있었지만, 결국은 이 교수의 말에 따라 ‘1인 창조기업 정책’이 탄생했다.(이후 실제로 정책 적용 대상이 1인에 국한되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미국의 경우 창조기업은 ‘지식 소호 기업’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경제의 근간이 되고 있었다. 한국에도 소호기업 협회가 활동 중이었다.
이 교수의 노력으로 2009년 3월 정책은 빛을 보았다. 1인 창조기업은 즉각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창업(創業)에서 창직(創職)으로, 젊은이들이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된 것이다. 불행히도 애플의 스마트폰이 우리나라에 도입이 안 돼 스마트 혁명이 늦어지고 있었으나,(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아이폰 출시가 3년 정도 지체됐다) 일단 불씨는 지펴진 것이다. 그 동안 토론한 것을 바탕으로 그 해 8월 창조경제 공개 세미나를 개최했다. 필자를 포함해 임태희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고정식 특허청장, 이언오 박사, 박광회 회장 등이 발표자였다.
창조경제에서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삼성과 같은 플랫폼 대기업이 효율을 제공하고 수많은 앱, 시나리오, 게임 개발 등 창조기업들이 혁신을 제공하는 ‘생태계적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게 발표의 주된 내용이었다. 창조기업의 발전을 위해 대기업의 공정한 개방 플랫폼의 형성은 절대적인 전제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창조 경제에서는 단일 기업 경쟁이 아니라 기업 생태계 경쟁으로 경쟁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것이다. 경쟁보다는 기업 간 협력이 중요해진 셈이다.
주춧돌 역할을 담당하는 플랫폼 대기업의 후보들은 한국에 존재한다. 1인(?) 창조 기업들의 대규모 진입이 필요한 것이다. 특허만 만드는 기업, 시나리오만 쓰는 기업, 캐릭터를 그리는 기업 등 실제 생산과 서비스는 하지 않지만 창조성을 바탕으로 한 기업들이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가 됐다.
미래의 창조기업을 만들어갈 창조 영재들이 필요했다. 2009년 KAIST와 포항공대에서는 특허청 지원으로 창조영재 육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필자는 KAIST를 담당했다. 세계 최초로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특허 기반 기업가 육성을 시작한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학생들이 교육에 자발적으로 몰입해 1년간 1인 평균 4건이라는 특허 출원 실적을 보여줬다.
1인 창조기업은 아직 후속 정책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는 반응을 얻고 있다. 지금도 문화체육부, 중소기업청 등의 지원 하에 소호협회, 1인 창조기업 협회 등이 주축이 돼 활발한 노력을 하고 있다.
글 : 이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