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시스템을 사온다는 말이나, 시스템을 (뚝딱!) 만든다는 말은 사실 의미가 맞지 않는다. ‘어떻게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에는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해야 이러한 체계가 공유 될 수 있느냐’ 하는 의미가 들어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시스템(system)’이라는 단어보다 ‘체계(體系)’라는 정감 가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려 한다. 시스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흡사 IT시스템을 생각하는 위기관리 매니저들도 있고, 마치 시스템이라는 것이 잘 포장된 박스에 담겨 팔리는 공산품처럼 느끼는 분들도 있어서 한마디로 ‘체계’라는 단어를 사용하려 하고 있다.
인하우스의 위기관리 매니저 입장에서는 업무의 단순화 효율화에 신경을 쓰게 마련이기 때문에, 이 체계라는 것을 좀 어떻게 한번에 구입하거나, 단순하게 가져다 심으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당연히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그렇게 해본 분들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더 현실적인 위기관리 매니저들의 고민은 ‘체계가 곧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이야기고, 공유상황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핵심이 있다’하면 스스로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코디네이터로서의 역량을 반신반의하는 부분이다. 기업의 위기관리 체계를 만들어 나가는데 있어 커뮤니케이션 부서가 체계의 허브 역할을 하고,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하게 되는 이유가 ‘그들이 기업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때문’인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커뮤니케이션’과 ‘공유’ ‘협업’에 대한 자신을 강하게 갖지 못한다는 부분이 현실적인 문제가 아닌가 한다.
홍보부서에서 오랜 일을 한 분들일 수록 스스로 자신의 직무기술서(Job Description)에 있어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역할을 ‘출입기자 또는 언론 관련 이해관계자들로 한정’하고 있다면 이 부분은 이러한 체계 구축 과정상 분명한 걸림돌이 된다. 심지어 “왜 홍보팀이 위기관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거지?”라는 직접적인 질문을 받을 때는 상당히 어렵다.
기업 위기관리 시스템 구축을 준비하는 위기관리 매니저들에게는 실제 프로젝트에 돌입하기 전에 충분히 준비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사내 역량이 있다. 기업 내에서 커뮤니케이션 코디네이션과 콜래보레이션에 일정기간 이상 익숙해야 하고, 이를 스스로 자기 부서의 직무기술의 중요한 핵심으로 정립하는 사전 역량이 그것이다.
기업의 대소와 사업분야를 막론하고, 인하우스 내부의 위기관리 매니저가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하지 못하고, 내부에서의 코디네이션을 낯설어 하며, 협업에 대해 자신이 빈약한 경우에는 해당 기업의 위기관리 시스템 구축에 성공하는 비율이 매우 희박하다는 경험칙을 가지고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위기관리 매니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인 결과물을 말 그대로의 ‘시스템’으로 납품을 받지만, 그 ‘시스템’은 그냥 시스템으로 조직내부에서 아무런 생명력을 가지지 못하고 책장이나 서랍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 회사에 위기관리 매뉴얼이 있었어?” “위기관리에 대해 우리가 언제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했었나?” 이 모든 이야기들이 그런 류의 기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기업 위기관리 시스템은 곧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이야기다. 끊임 없는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공유와 협업을 이끌어 내는 그 과정과 마지막 결과물이 곧 체계다. 커뮤니케이션하고, 커뮤니케이션하고, 커뮤니케이션 해야 겨우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글 : 정용민
출처 : http://jameschung.kr/2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