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버터블 노트

한국에서는 아직 컨버터블 노트가 투자 방식으로 널리 통용되지 않지만 이곳 실리콘 밸리에서는 초기 투자시에는 거의 대부분 컨버터블 노트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컨버터블 노트는 말 그대로 전환사채 비슷한 개념인데, 다만 전환가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오픈형 전환사채”라고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컨버터블 노트는 투자가가 회사에 돈을 빌려주는 계약이다. (따라서 상환 기간과 이자율이 명시되어 있다.) 다만 주 목적이  회사채처럼 나중에 이자를 쳐서 돈을 돌려받기보다는 이후에 이루어질 투자 라운드때 해당 회사의 주식을 취득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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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버터블 노트를 하는 주된 이유는 회사의 가치 (밸류에이션) 를 초기 상태에서 산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밸류에이션 산정을 좀더 나중에 하자고 미루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설립된지 두달 된 회사에 투자가로써 1억원을 투자한다고 치자. 그 댓가로 얼마만큼의 지분을 획득해야 할 것인가? 이 대답은 결국 회사의 밸류에이션이 얼마냐로 연결되는데, 초기 기업일수록 기업가나 투자가나 그 회사의 가치를 산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 과정에서 서로 감정 상해가면서 싸울수도 있다. 그래서 일단 돈 투자는 지금 하되, 회사 가치 및 그에 따른 지분가치는 나중에 회사의 서비스나 제품이 시장에서 검증된 다음, 대형 VC (벤처 캐피털리스트) 들이 들어올때 그들이 산정해 주는 가치를 따르자는 것이다.

그 외에도 몇가지 컨버터블 노트를 하는 다른 이유들도 있다. 절차상의 간단함 (제대로 된 벤처 라운드를 하면 변호사 비용만 해도 수천만원에 이름), 각 투자가마다 다른 조건의 적용 가능성 (폴 그레엄은 이걸 “high resolution financing” 이라고 부름), 세금 이슈, 이사회 자리를 내주지 않아도 되는점 등등. 하지만 컨버터블 노트를 하는 주된 이유는 초기기업 밸류에이션 산정의 어려움 때문이라고 본다.

이것도 따지고 들어가면 복잡한 내용이 많지만 (liquidation preference, participating vs. non-participating, 전환시 보통주 vs. 우선주 등등), 가장 중요한 요소는 valuation cap과 discount, 그 중에서도 특히 valuation cap이다.

캡은 말 그대로 뚜껑, 또는 상한선이라고 볼 수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대로 컨버터블 노트는 회사에 빌려준 금액이 나중에 주식으로 전환되는 것인데, 밸류에이션 캡을 적용한다는 것은 나중에 회사 밸류에이션이 올라가더라도, 컨버터블 노트로 투자한 투자가들에 한해서는 투자금이 주식으로 전환되는데 있어서 “마치” 회사 가치가 캡에서 정의된 금액인 것처럼 보자는 얘기와 유사하다. 그래서 밸류에이션 캡은 거의 밸류에이션과 유사하다고 볼수도 있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A라는 회사에 투자가가 5천만원을 컨버터블 노트로 투자하기로 했다. 그리고 투자 조건에 밸류에이션 캡을 50억원으로 정했다. 말 그대로 컨버터블 노트는 빌려준 금액이니까 현재 취득된 지분은 없다.

6개월 뒤, 회사가 잘 되서 한 벤처캐피털에서 회사에 200억원의 기업가치(pre-money valuation)로 투자하기로 결정을 했다. 이제 먼저 컨버터블 노트로 투자된 금액 (+ 이자도 포함되지만 계산 편의상 생략) 이 주식으로 전환될 타임이다. 그런데 위에서 이야기한대로 50억원의 밸류에이션 캡이 있다는 이야기는 회사의 현재 산정된 밸류에이션이 200억이지만 먼저 들어온 투자가에 대해서는 “마치” 50억원인것처럼 주식으로 전환된다는 이야기다.

주당 단가와 취득 주식수로 계산하면 이해하기 쉽다. 회사의 발행 주식수를 100만주라고 해보자. 이제 VC에서 산정해준 회사의 밸류가 200억이므로, 이 시점에서 주당 단가는 2만원 (200억원 / 100만주) 이다. 그러면 이 시점에서 만일 VC가 20억원을 투자하면, 주당 단가가 2만원이니까 10만주를 획득하게 된다.

하지만 앞서 50억원의 밸류에이션 캡에 5천만원을 투자했던 투자가는 “마치” 회사 밸류가 50억원인것처럼 (즉 “마치” 주당 단가가 5천원인것처럼) 주식 전환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주당가격 2만원에 들어오는 투자가에 비해서 동일한 투자금액 대비 4배 많은 (주당 2만원 대비 주당 5천원) 주식수를 획득하게 된다. 5천만원을 투자했던 투자가는 현재 주당단가인 2만원을 적용했을 때 취득할 수 있는 주식 수 (2500주) 에 비해서 4배 많은 주식수인 10,000 주를 획득하게 된다. 그러면 현재 주당 가격이 2만원이니까, 주식으로 전환된 10,000주는 2억원에 해당하는 것이고, 따라서 투자 원금 (5천만원) 에 비해 1억 5천만원 또는 300% (1억 5천만원 순수익 / 5천만원 투자금액) 의 장부상 순익을 거두는 셈이다.

또한 밸류에이션 캡 외에 discount라는 개념도 있다. 이를테면 20%의 디스카운트를 적용한다는 것은, 컨버터블 노트로 투자된 금액이 주식으로 전환될 때, 나중에 들어오는 투자가에 비해 20% 낮은 (디스카운트된) 주당 가격으로 주식을 취득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나중에 들어오는 VC가 주당 2만원에 들어온다면, 20% 디스카운트를 적용하면 주당 16,000 원이므로, 동일한 금액대비 25% 많은 수의 주식을 취득하게 된다. (예를 들어 4천만원을 투자했을 때 주당가격 2만원은 2000주 획득, 주당가격 16000원은 2500주 획득). 따라서 먼저 들어온 투자가가 나중에 들어온 투자가에 비해서 25% 많은 주식 수를 획득하게 되고 대략 25% 장부상 이익이 생기는 셈이다.

밸류에이션 캡과 디스카운트는 보통 둘다 적용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회사의 밸류에이션이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일수록 디스카운트 개념보다는 밸류에이션 캡이 더 중요한 개념이 된다. 위에서 보았듯 만일 50억원 밸류에이션 캡을 가진 회사가 200억원 밸류에이션으로 VC 투자를 받을 경우 밸류에이션 캡에 따라서는 300% 장부상 이익이, 디스카운트에 따라서는 25% 장부상 이익이 발생한다. 따라서 이 경우 밸류에이션 캡이 훨씬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다음 라운드때 산정되는 밸류에이션이 크게 증가하지 않으면 밸류에이션 캡보다 디스카운트가 더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만일 다음 투자 라운드라는게 없다면? 이를테면 컨버터블 노트에서 명기한 상환 기간 (보통 12-18개월) 이 지났는데도 “다음 투자 라운드” 가 없다면, 기본적으로 투자가가 빌려준 금액은 주식으로 전환되지 않고, 회사는 이자와 원금을 투자가에게 상환해 주어야 한다. 만일 이 시점에서 회사가 빌린 돈을 가지고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해서 매출과 현금흐름을 많이 창출했다면, 비록 다음 라운드 투자는 못 받았어도 원래 빌린돈을 이자와 함께 상환하면 된다. 만일 회사가 열심히 서비스와 제품 개발을 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투자가에게 “빌린” 돈을 다 소진했는데도 불구하고 추가 투자를 못받은 경우는, 극단적으로 말해서 회사가 망해서 문을 닫는 경우라고 봐야 한다. 매출이나 이익도 없고 돈도 다 떨어진데다 추가 투자도 못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보통 실리콘 밸리에서는 실패한 투자로 보고 투자가가 마음을 정리한다.

기업가 입장에서는 엄밀히 말하면 손털고 물러나면 그만이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보통 투자가에 대한 책임은 회사가 갖는 것이고 연대보증 개념으로 대표이사나 임원진에게까지 그 책임이 오진 않는다.) 그래서 잘 알다시피 실패한 경영자들이 얼마 안가서 다시 창업하고 심지어 투자도 새로 받기도 하고 그런다. 하지만 제대로 된 생각과 양심을 가진 기업가라면 그 상황까지 가기전에 투자자 손실을 막기 위해서 추가 투자 유치든 매출이든 회사 매각이든 별 방법을 다 할것이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자기돈보다 자기를 믿고 투자해준 남의 돈을 훨씬 더 소중히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 참고로 테크크런치에 나온 글 (1, 2) 참고 바람. 단, 여기에는 몇가지 내가 알고있는것과 다른 사항들이 있기도 함. 이를테면 보통의 경우 주식 전환이 보통주로 되지 우선주 (preferred stock) 으로 되지는 않는 듯.

글: CK
출처: http://www.memoriesreloaded.net/2012/06/blog-post_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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