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M’
위대한 지적 진보가 그렇듯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이 간단한 공식으로 자본주의의 핵심을 이야기한다. 이 공식에서 M은 화페, C는 상품, M’는 다시 화폐다. 이 간단해 보이는 공식으로 어떻게 자본주의의 핵심을 설명할 수 있을까?
당신이 빵집 주인이고 수중에 백만원이 있다고 해보자. 이 돈으로 돈을 벌려면 우선 빵을 만드는 재료를 사야 한다. 편의상 빵은 밀가루만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해보자. 백만원(M)으로 밀가루를 구매한다. 그러고 나서, 이 밀가루를 사용해서 빵(C)을 만든다. 자, 이 빵으로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객들에게 팔아야 한다. 얼마에 팔아야 할까? 적어도 원재료를 산 돈을 밑지지 않으려면, 쉽게 말해 자본(M)을 까먹지 않으려면, 빵 전체를 백만원보다 비싸게 받고 팔아야 한다. 따라서 120만원(M’)을 받고 빵을 모두 팔았다고 하자. 일련의 과정을 앞의 공식에 대입해 보면 다음의 결과를 얻는다.
M(100만원, 초기자본) -> C(밀가루 구매 -> 빵제조 -> 빵 판매) -> M’(120만원, 매출)
마르크스가 말하는 공식으로 여러분의 빵 판매 비즈니스 모델을 정리해봤다. 이 공식이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 자본론의 핵심적인 주장이기도 한데, 자본주의에서 가치를 만드는 것은 자본 그 자체가 아니라, 노동이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초기 자본 100만원에서 매출 120만원으로 가는 일련의 과장에서 생긴 잉여가치는, 여러분이 좋은 밀가루를 수배하고 자신만의 조리법을 사용해서 빵을 만들고 판매하기 좋게 진열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앞의 예에서 여러분은 빵집 주인이자 노동자였다. 만약 빵을 만들기 위해서 제빵사를 몇 명 고용한다면, 이제 여러분은 자본가가 된 셈이다. 이 상황에서 제빵사에게 월급을 편의상 20만원을 준다고 해보자. 이 경우에는 여러분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만약 원재료와 매출을 바꿀 수 없다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 노동자에게 주는 월급을 줄이면 된다. 예를 들어서 제빵사들에게 월급으로 15만원을 준다면,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여러분은 5만원을 벌 수 있다. 말하자면 노동자가 생산해내는 가치 중에서 노동자의 월급을 주고 남은 5만원이, 자본의 순환과정에서 탄생한 잉여가치다.
바로 이지점에서 자본가와 노동가의 투쟁이 생긴다. 자본론에 따르면 자본이 확대재생산되는 과정상에서 생기는 가치는, 순전히 노동에서 나온다. 그 가치를 생산해내는 노동자에게 최대한 적은 몫을 준다면, 자본가의 몫은 극대화된다. 반대로 노동자의 몫을 많이 주면, 자본가의 몫은 줄어든다. 결국 자본의 순환 과정에서 누가 얼마나 가져 가느냐는 분배의 문제에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이라는 공식이 성립한 셈이다.
M-C-M’의 관점에서 IT비즈니스를 살펴보자. IT비즈니스에서 초기자본의 중요성은 점점 줄어든다. 이 이야기가 뭘까? 제조업과 달리 IT산업은 C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거의 사람에 의존한다. 자본론의 관점으로 설명하자면, 아주 적은 돈을 들여서 괜찮은 인력을 쓸 수 있다면, M’가 극대화된다,는 뜻이다.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벤처업이라는 건, 대개 성공하면 보상하는 모델이기 때문에 M이 무척 적다. 하지만 아이디어가 좋고 개발자의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면 무에서 우주를 만드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투입된 자본은 0으로 수렴하지만 M’는 무한대로 발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구글이 그렇고, 트위터가 그렇고, 유투브가, 페이스북도 그렇다.
벤처가 아닌 일반 소프트웨어 개발을 살펴보자. 대개 월급의 기준은 근무시간이다.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를 하는 기준으로 월급을 준다. M-C-M’의 공식을 이 경우에도 적용해보자. M은 거의 개발자의 월급에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M을 투여해서 얻는 C의 가치가 높다면, M’는 극대화된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논점은 간단하다. M’를 극대화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테일러리즘을 적용해서 개발자를 아주 철저하게 관리해야 할까? 아니면 미소관리기법을 사용하는 관리자를 붙여서 한 시간에 한 번 무슨 일을 했는지 근무기록표를 작성하게 해야 할까? 이런 방법이 효과가 있을까?
자본론의 관점에서 잉여가치를 극대화하는 방법은, 노동자들이 일한 노동 시간에 비해서 적은 돈을 주는 것이다. 제조업인 경우에 이 방법은 쉽다. 제조업이라는 건, 컨베이어 벨트에 붙어서 노동자들이 얼마나 일했느냐,로 얻는 성과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발은 다르다. 개발자가 몇 시간 동안 컴퓨터에 앉아 있냐로 가치가 생산될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미국을 따돌리고 소프트웨어강국이 되었을 것이다.
긴 글이지만 요약하면 이렇다. 자본론의 관점에서 가치란 노동에서 나온다. IT업은 그 특성상 사람이 전부다. 따라서 자본론에서 말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상 자본의 순환에서 만들어지는 잉여가치를 극대화하려면, 적은 자본으로 개발자에게서 많은 것을 뽑아내야 한다. 그런데 개발자들을 컴퓨터 앞에 앉아 놓고 24시간 돌리는 방법으로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만한 소프트웨어가 나오지 않는다. 차라리 개발자에게 자신의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해서 일할 수 있는 무형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그런 무형의 인센티브를 통해서 나오는 잉여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 말하자면 차라리 개발자들의 시간을 관리하지 않는 편이, 개발자들을 컴퓨터 앞에 앉혀놓고 무언가를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보다 낫다,는 뜻이다.
* 순수 소프트웨어 개발에서만, 이 글의 논점이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