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가 서체에 주목하고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전공이 심리학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애플은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서 발전해 왔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4 출시 행사에서 한 말이다. “우리는 기술 회사인가?” 페이스북 본사입구에 르네 마그리트의 미술 작품과 함께 걸려 있는 표어다.
미래 기업들의 화두인 ‘앞으로는 기술보다 인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커진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해 생각해 보자. 시장 경쟁의 핵심 요소인 차별화를 지금까지 기술 혁신이 주도해 왔다. 그러나 이제 기술은 두 가지 이유로 차별화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다.
첫 번째는 기술을 만드는 기술, 메타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의해 기술 혁신의 차별화가 축소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첨단 기업들의 연구·개발(R&D) 투자가 매년 감소하고 있다. 과거 생산이 일반화되면서 제조 아웃소싱을 했듯이 연구·개발 그 자체도 이제 기업의 핵심 역량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흔히 주장해 왔던 첨단 기술이 지나치게 발달돼 인간에 대한 추가적인 가치 창출이 미약해지고 있다. 최근 몇 년간의 중앙처리장치(CPU)의 연산 속도 정체는 기술의 문제라기보다 인간의 필요성에 기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애플은 무엇을 통해 차별화된 혁신을 이뤘을까. 그것은 인간에 대한 파악이었다. 유저 인터페이스(UI)를 넘어, 사용자 경험(UX)을 넘어 인간을 파악하고 필요한 적정 기술들을 융합해 낸 것이다. 이제는 첨단 기술이 아니라 적정 기술의 적절한 배합을 통해 인간의 욕구를 충족하는 단계에 돌입하고 있다.
적정 기술의 융합 자체는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은 시장경제에서 가치 창출의 원천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문난 맛집의 레시피를 분석해 보면 어떻게 적절한 배합을 하느냐에 맛집의 비밀이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이제 혁신의 핵심은 인간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으로 돌아오고 있다. 지금까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것은 기술의 몫이었다. 기술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혁신의 요체가 된다. 이것은 인간성의 영역이다. 이것을 일컬어 디자인 혁신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문제를 푸는 것보다 문제를 찾는 것이 혁신의 중심이 되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서체에 주목하고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전공이 심리학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간의 감성적 욕구는 사람마다 다양하다. 디자인 혁신은 근본적으로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디자인 혁신을 특정 천재 한 명에게 의존하는 것은 명백한 한계가 있다. 디자인 혁신은 결국 소셜 이노베이션 형태를 가지게 된다. 한 개인의 천재성이 아니라 집단지능으로 혁신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집단지능이 모이는 장터로서 애플의 앱스토어가 대표적인 사례다.
애플 아이폰 그 자체는 170달러 제조원가의 하드웨어일 뿐이다. 여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집약된 수십만 개의 애플리케이션들이 등장하고 이를 집단지능이 선택하고 그중 일부가 확산된다. 페이스북도 하나의 장터다. 트위터도 장터다. 새로운 디자인 혁신은 결국 집단지능 기반의 플랫폼 장터에서 생산과 소비가 프로슈머(Prosumer)로서 융합되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가는 것이다.
이민화 카이스트 초빙교수·
글: 이민화
출처: http://bit.ly/Nz4S9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