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생기고 나니까 벌써부터 걱정이 많다. 두달 밖에 안된 아들을 눕혀놓고 와이프와 이런 저런 걱정과 상상을 하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걱정은 교육이다.
한국 교육의 수혜자들조차 한국의 교육은 달갑지 않다.
나와 나의 와이프 두 사람 모두 한국의 입시지옥을 뚫고 비교적 좋은 혜택을 받으면서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설령 우리 아들이 똑같이 입시지옥을 뚫고 하늘대학에 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기쁠 것 같지 않다. 그런 생각에 이르면 정말 서글퍼진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교육적인 혜택을 많이 받은 우리조차 거부하는 교육. 그것이 지금의 대한민국 교육이다.
너무 어려서부터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잃고 살아가게 하고 싶지는 않기에, 그리고 우리도 한국에서 뿌리내리고 살아야 하기에 한국 내부를 자꾸만 보게 되는데, 그러면 절망만 쌓여간다. 한국 교육에 대한 불만과 함께, 최근에 부상하고 있는 대안교육 등에 대해서 이것저것 말하면, 지금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 자녀를 둔 부모들은 우리를 측은한 눈빛으로 본다. 이미 자신들은 다 해볼 것 해 봤다는 (Been there and done that) 자세이다. 이것저것 다 시도하고 알아봐도, 그리고 한국에서의 교육환경이라는 것이 말도 안되는 것인줄을 알면서도, 결국은 어쩔 수 없이 한국 교육에 순응하여 아이들을 키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보고 잘 해 보라는 당부도 있지 않는다. “찾아보면 길이야 있겠지만…” 같은 말로 끝을 흐린다. 그럴때면 결국에는 외국으로 나가야만 하는것인가? 라는 생각이 떠오르고, 이런 생각이 들때면 나는 패배감마저 느낀다. 특히 선진국도 아니라 우리나라보다 훨씬 못사는 나라의 공교육을 받기 위해서 필리핀 같은 곳으로 ‘영어’란 이유 하나로 아이들을 보내는 것을 보면, 도대체 우리나라의 공공교육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화도 난다. 한국에선 공부를 잘 하면 월급쟁이가 된다.
나와 나의 와이프 주변에도 고등학교때까지 공부를 잘 하고,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꽤 많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회사원이다. 월급쟁이, 샐러리맨이다.
우리가 같은 회사에서 만난 커플이니까 주변에 회사원이 많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아마도 한국 경제 자체가 70% 가량은 대기업과 그 하청업체들에 의해서, 그리고 나머지 중에서 20% 가량은 그런 회사를 다니다가 퇴직한 자영업자로 이뤄져 있어서 그런것 같다. 우리 주변에는 좋은 회사를 다니는 회사원, 그 좋은 회사에 물건을 대는 회사원, 그리고 그런 좋은 회사와 물건을 대던 회사를 퇴직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군인이 아무리 보직이 훌륭하고 훈장을 받았어도 군인이듯이, 회사원도 다 회사원일 뿐이다. 요즘은 사법고시 패스하고 연수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친구들도 판검사로 남기 보다는 로펌으로 간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사시 성적이나 연수원 성적이 좋을수록 로펌으로 간다. 그러면 그 친구들도 밤새 야근하는 회사원이 된다. 돈 많이 받는 회사원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교육은 둥글둥글한 아이들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무엇 하나 특별하게 못하는 것 없는 아이는 결국 무엇 하나 특별하게 잘 하는 것 없는 아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우리는 모든 과목을 잘 하도록 교육받아서, 결국 모든 과목의 시험을 다 잘 보고 대학을 왔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할지는 몰랐다. 그래서 회사원이 되었다.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과를 나올수록 더 좋은 회사의 회사원이 된다. 법대가 로스쿨(대학원과정)로 바뀐 후에는 각 대학에서 가장 들어가기 어려운 과는 (적어도 문과에서는) 경영학과이다.
그런 사실이 다른 선진국에서는 뭐 그다지 다를소냐? 라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과 다른 점이 있다. 미국의 친구들은 좋은 대학을 나오면 이름이 없는 회사라도 주식(stock option)을 많이 받고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회사원이 많다. 특히 실리콘벨리나 시애틀 지역과 같은 IT 산업이 발달한 곳에 기회가 많다. 혹은 뉴욕, 시카고, LA 등지에 있는 프로페셔널 컴퍼니로 나아가서 투자회사나 컨설팅 등으로 진출하면 그에 대해서 충분한 금전적 보상을 받는다. 둘다 아니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큰 내수시장을 가잔 나라에서는 회사에서 성공해서 임원이 되면 평사원의 몇백배의 금전적 보상을 받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애초에 회사원 말고도 다른 기회들이 많이 널려 있다. 유럽은 미국처럼 실리콘벨리의 주식대박의 꿈은 없어도 적어도 회사의 경영과 노동활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서유럽과 북유럽의 몇몇 국가들 말이다.
그럼에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의 회사원들은 그냥 회사에 다니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다. 그 회사에 대한 오너십을 가질 수도 없고, 그냥 그 회사가 우리회사라는 자랑스러운 느낌과, 나 혼자서는 별로 큰 대접을 못 받지만 내가 모 회사의 직원이라는 사실로 인해서 나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지위를 누릴 수 있을 뿐이다. 실질적으로 그 회사의 주식이나 경영권 등에서는 배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 문제는 소모품으로 전락하거나, 굳이 외부의 힘으로 인한 ‘전락’이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본인 스스로가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앞으로 더 기업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고용시장의 자율성이 높아진다면 기업의 종업원에 대한 충성따위야 기대할 것이 못될 것이다.
즉, 한국에서 공부를 잘 하는 아이로 키우면, 둥글둥글 모든 것을 잘 하면서 좋은 대학을 가고, 결국에는 졸업후에 남들이 좋은 회사라고 하는 곳을 다니는 회사원이 된다. 그리고 그게 우리 부부의 지금 모습이다. 우리 스스로의 삶이야 주어진 한도내에서 즐거움을 찾지만, 만약에 우리 아이의 삶의 틀을 짜는 것을 내가 도와줄 수 있다면 우리가 지금 사는 모습으로 살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 가장 큰 이유는 회사원으로 살더라도 소외감과 불안감이 크다는 것이다.
공부만은 시키지 않으리라.
내가 학교를 다니던 90년대 후반의 서울대의 모습, 그 중에서도 경영대학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30~40% 정도는 사시/행시/외시/회계사 시험과 같은 시험 준비를 했다. 나머지의 절반은 주로 대기업과 공기업(산업은행, 수출입은행, 한국은행 등) 및 대형 시중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외환 등)을 타겟으로 공부했던것 같다. 대기업 중에도 삼성,현대,LG 등과 같은 기업에 많은 숫자의 친구들이 입사했지만, 한편으로는 통신업계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어서 많은 유능한 친구들이 SKT나 KT 등으로 가기도 했다. 컨설팅이나 투자은행도 새로운 개념이라서 대략 10~15% 정도는 이런 분야를 준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2010년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약 1/3 가량은 대학원으로 진학하기도 한다고 한다.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대략 이정도가 큰 그림이다.
졸업한지 10년쯤 지나, 서로를 만나보면 다들 회사원 아저씨 아줌마다. 아직도 월급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친구들이 많고, 집도 마련못한 친구들이 대부분. 그래도 수능시험 상위 0.1%를 뚫고 들어온 친구들인데, 다들 금전적으로는 상위 1% 축에도 못드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조금 사정이 다른 친구들은 사업을 해서 성공한 친구들이다. 자기만의 사업 분야를 일궈서 성공한 친구들은 적어도 월급의 굴레에서는 벗어나 있다. 물론 이런 친구들이 많지는 않지만, ‘경영자’를 키운다는 경영학과에서 사업을 하는 친구들이 극소수인것도 어찌보면 이상한 현상이다. 요컨대 우리의 경영학과는 ‘기업가’ 혹은 ‘창업가’ 보다는 ‘기업의 중간관리자’를 양성하기 위한 곳임에 틀림없다.
아이를 보면서 우리 부부는 ‘공부만은 시키지 않으리라’고 다짐한다. 할 줄 아는 것 없는 아이에게 시키는 것이 공부라는 생각마저도 든다. 나의 아이가 무엇이든지 좋으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다면, 그리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아쉬운 경우는 아마도 우리 아이기 할 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어서 공부를 하게 되는 경우일 것 같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리 부모님도 우리에게 얼마나 그런 것을 바라실까? 나 자신도 그렇게 살아야만 행복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아이가 생겨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글: MBA Blogger
출처: http://mbablogger.net/?p=4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