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과 관련한 유명한 글들을 많이 남겼던 조나단 라우치(Jonathan Rauch)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거론하며 “민주경색(demosclerosis)”라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이 말은 아주 작은 조직들이 움직이지 않고 경색이 나타나면서 우리 몸의 무수한 미세혈관들의 경색이 나타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정부와 국가가 움직이지 않고, 변화에 대한 적응도 거의할 수 없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여러 작은 조직들이 분화된 전문가들에 의해 지배를 받으면서 이들의 세력이 공고화되고, 실제 시민 민주주의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시민들과 괴리되면서 나타난다. 이렇게 되면, 일반 시민들은 실제 국가와 공공적인 문제들은 자신들의 문제로 여기지 않으면서 점차 무관심해지고 정치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게 된다. 무관심이 많아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각각의 조직들을 장악한 전문가들과 정치인들은 더욱 쉽게 그들의 의도대로 정부와 국가를 움직이는 악순환이 나타난다. 실제로 이런 현상이 최근 수십 년간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여러 나라들에 나타났다고 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들은 별로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각각의 시민들과 사회에 관심을 가지는 자원봉사자들이 시민정신을 되살리고,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는 것에서 변화는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영화제작자인 애니 레너드(Annie Leonard)는 그동안 지나치게 비대해진 소비자 근육(consumer muscle)에 비해 위축된 시민 근육(citizen muscle)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소비자로 행동한다면, 결국 정치인들은 그에 맞춘 정책을 펼친다. 세금을 낮추고, 보다 쉽게 쓸 수 있게 만들 것으며, 각각의 이해집단들이 원하는 특별한 법률이나 규제를 시행할 것이다. 그러나, 시민으로서 국가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개인의 이해를 떠나 어떻게 사회가 번성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정책이 힘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민 근육을 키울 수 있을까? 무엇보다 비록 아마추어지만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인지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실행을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최근 급부상한 소셜 미디어나 각종 DIY 운동, 지속가능한 지역사회를 구성하는 것 등이 이런 범주의 노력에 해당한다.
또한, 앞으로는 지역사회에 더욱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통섭(Consilience)> 이라는 책의 저자로도 유명한 진화생물학자인 데이빗 윌슨(David Wilson)은 빙햄턴 이웃 프로젝트(Binghamton Neighborhood Project)라는 것을 시작했는데, 도시의 문제를 하나씩 파악해서 시민들의 행동가능한 단위로 만들고 실제로 시민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 예를 들어, 빈 공터를 공원으로 만들고, 작은 지역사회의 조직도 구성하며, 이들을 서로 연결하는 등의 활동이다. 이런 지역주의는 지역의 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자율성을 지역에 주게 된다. 지역들의 자율성이 살아나고, 이들이 더욱 커다란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다면 더욱 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아래 임베딩한 비디오는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당신의 공원을 디자인하세요(Design Your Own Park)” 프로젝트에 대한 것이다.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는 사례가 많아지는 것도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X 프라이즈 재단에서 진행하는 X 프라이즈는 정부가 해내지 못한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내는 지혜를 많은 시민들의 지혜를 모아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한 밑으로부터의 혁신이 실제로 여러 놀라운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플랫폼의 등장은 이런 변화를 가속화시킨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Code for America”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동참하는 도시들의 리더들과 함께 시민들이 문제해결을 쉽게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아래 임베딩한 비디오는 뉴올리언스 시의 CIO인 앨런 스퀘어(Allen Square)의 “Code for America”에 대한 인터뷰이다.
결국 진정한 민주주의의 회복은 개별적인 시민들의 역량이 높아지고, 이들이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서 작은 성취를 이루어가면서 시작된다. 몇 년에 한 번씩 적극적으로 투표하고 정치인들에게 시민들의 의식을 보여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시민사회 자체의 역량이 커지고, 밑으로부터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위로부터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고, 우리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일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 많아지고 있다. 아마추어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참고자료:
Binghamton Neighborhood Project
X Prize 재단 홈페이지
Code for America 홈페이지
글 : 정지훈
출처 : http://health20.kr/2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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