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포스트: 컨텍스트에 답이 있다>
이 글은 컨텍스트를 4가지 요소로 정리한 것이다. 편의상 구분을 했지만 실제로 4요소는 끊김이 없이 발현된다는 점, 컨텍스트란 연결을 만들며 진화하는 하나의 ‘상태’라는 점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므로 이 4요소는 사업자(미디어)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이 컨텍스트의 본질에 쉽게 접근하기 위한 틀걸이가 되기 바란다.
(*일러두기: 쉬운 이해를 위해 방송 프로그램을 사례로 다루었으나 ‘연결의 6하원칙과 IoT 네트워크‘에서 언급한 ‘컨텍스트 네트워크’를 포함하여 컨텍스트의 쟁점은 모든 비즈니스에 적용된다. 여러분들의 피드백에 따라 필요한 경우는 다른 비즈니스 사례도 추가하여 논의하기로 한다.)
전통적 미디어 환경의 컨텍스트
예전에는 컨텍스트가 사업자에게도, 사용자에게도 간단했다. 95년도 국내 드라마의 전설을 만든 SBS 24부작 ‘모래시계’의 컨텍스트를 생각해보자. 일명 ‘귀가시계’라는 별명은 전통미디어에서 컨텍스트가 어떤 특성을 지니는지 한마디로 암시한다.
프로그램은 편성표가 24시간, 주간 단위로 나와 있으니 수목 밤 10시에 어김없이 발견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야 본방사수 개념이 줄어들어 시청률 10%도 많다고 하지만 20년전 상황은 달랐다. 주로 지상파 3사가 저녁시간을 좌우하니, 이시간에 무엇을 할(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어렵지 않았다. 심지어 최민수가 ‘나, 떨고 있니?’하며 죽어가던 대목에서 순간 시청률은 75%에 달했다.
콘텐츠를 시청(경험)하는 컨텍스트는 어떤가? TV가 있는 거실에 모여 앉든, 방에서 혼자 보든, 방법은 많지 않았고 정전이 되거나 누군가 채널을 돌리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는 경험이었다. 콘텐츠만 좋다면 그 콘텐츠를 경험하는 컨텍스트 따위는 큰 고민거리가 아닌 것이다.
콘텐츠에 대한 공유는 집, 학교, 직장에서 산발적으로 이뤄졌다.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하며 재잘재잘 수다를 떨면 이야기는 기록도 없이 사라진다. 그 모임에 없었던 사람들은 내가 어느 대목에서 울었는지 알 수 없겠지만 그래도 잔뜩 수다를 떨었으니 마음만은 후련할 것이다.
컨텍스트, 사용자와의 교감이 시작되다
그러나 연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물리적 시공간 개념은 해체되었다. 방송 프로그램은 주간 편성표라는 공간에 매여 있지 않고 24시간의 규칙안에 순차적으로 담겨 있지 않다. 신문기사가 종이신문의 지면을 비집고 들어갈 필요도 없고 1면이라는 공간은 유일하지도, 절실하지도 않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1면이 생겼고 우리의 프라임타임은 매일매일 시시각각 변한다. 이처럼 시공간의 해체와 함께 물리적 유통 채널 위에 군림해 온 모든 사업자들의 전통적 권력은 해체되었다.
컨텍스트의 발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일어난다. 세상의 가치가 ‘관계’ 기반으로 재편되었기 때문이다[1]. 기존의 단순하고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던 컨텍스트는 미디어에서,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시공간의 해체속에 컨텍스트는 무한대로 확장되었다.
컨텍스트의 확장된 정의
여기서 컨텍스트란 커뮤니케이션을 둘러싼 모든 정보와 환경으로, 주어진(given) 환경으로서의 컨텍스트(시공간, 주변정보 등 실시간 상황), 사용자의 경험, 체험, 학습 등 커뮤니케이션에 영향을 미치는 사용자의 기억 정보[2], 나아가 사용자의 참여를 통해 계속 연결되고 진화하는 컨텍스트 모두를 포함한다.
“Context shapes language and language shapes context. […] Context is not simply a constraint on language, but also a product of language use.” [Duranti & Goodwin, Rethinking context: Language as an interactive phenomen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2, p.30]
컨텍스트가 단순히 언어를 규정하는 조건(제약)이 아니라 ‘언어사용의 생산물’이기도 하다는 언어학적 정의는 미디어 관점에서도 유효하다. 컨텍스트를 단순히 미디어를 사용하는 시간, 공간적 조건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 과정 및 결과에서 발현되는 작용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사용자에게 ‘주어지는 컨텍스트 (contexte défini, conditionnant, donné)‘의 수는 무한대다. ‘지금, 여기(시간과 공간)’ 뿐만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경험과 지식을 쌓았는지, 그 밖의 무수한 상황(관계, 역할 등)에 따라 앞으로의 경험도 당연히 달라진다. 그렇게 각자는 유일한 순간을, 그 순간의 연속으로 삶을 살아간다. 미디어 환경에서 대화, 거래, 구매, 검색, 감상 등은 각각 다른 컨텍스트에서 발생한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경험을 따라간다.
우리가 보는 검색 결과 화면, 페이스북의 뉴스 피드, 아마존의 상품 추천 페이지는 모두 다르다. 각자의 데이터의 기록이 만드는 각자의 세상이다. 사용자의 사소하고 개인적인 모든 상황과 찰나가 모여 전체(universe)를 구성한다. 다만 사례 하나, 상황 하나만을 놓고 보면 참 시시하고 핵심의 주변처럼 보일 뿐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점은 이러한 컨텍스트가 사용자와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진화한다는 점이다(context construit, transformateur, évoluant)[3]’. 사용자 개개인의 참여 활동(대화, 거래, 구매, 검색, 감상 등)은 새로운 연결을 낳고 그것은 곧 ‘새로운 컨텍스트의 발현’을 의미한다. 아래의 킨들 사례가 그렇다.
책을 읽다 보면 어떤 대목에서 몇명이 밑줄을 쳤는지 발견하게 된다. 나의 밑줄도 이렇게 “인기있는 구절“이라는 정보를 생성하는데 기여한다. 나는 혼자 책을 읽지만 그 무심한 소비 과정이 다른 사람의 의사결정과 소비의 경험을 바꾸는 컨텍스트를 새롭게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독서에 대한 내 경험도 진화한다. 오직 참여만이 컨텍스트를 발현시킨다. 각자의 유일한 컨텍스트들이 만드는 매 찰나 사소한 연결들이 결국은 컨텍스트를 진화시키는 것이다.
컨텍스트의 4요소: 발견, 공유, 선택, 경험
사용자의 개입으로 발현되는 컨텍스트는 발견, 선택, 경험, 공유로 그룹핑될 수 있다. 이 요소들은 독립배타적이지 않고 순차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끊김이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다중적으로 발생한다. 컨텍스트란 정지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흘러가는 하나의 상태(status)다.
해석에 따라 이들을 컨텍스트의 하위 컨텍스트 또는 컨텍스트의 종류 또는 사용자 경험을 통해 결과적으로 발현되는 컨텍스트, 컨텍스트 비즈니스의 구성요소 등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1. 발견하는 컨텍스트 (Discovering context)
발견 컨텍스트는 콘텐츠, 제품, 메시지 등을 만나는 접점이자 계기다. 예전에는 편성표로 시청자를 만나고 광고로 주목을 받았다면 이제는 그 접점이 도처에 깔려 있다. 페이스북에서 지인이 이 노래에 얼마나 감동했는지, 한소절 적어올린 포스팅은 ‘도대체 어떤 노래길래?’ 하는 궁금증을 유발한다. 만약 링크를 클릭해서 들어갔는데 전혀 공감도 유익함도 없었다면 이것은 발견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지인이 얼마나 감성적인지는 발견했을지 모르겠다.)
발견의 컨텍스트는 문득 나에게 온다. 사용자가 헤매고 검색하고 돌아다니다가 만날 수도 있고 이런 수고가 없이 뜻하지 않은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데 발견의 컨텍스트에서 완전한 우연이란 없다. 아니, 사용자는 뜻밖에 문득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지만 그것은 페이스북의 뉴스피드 알고리즘, 검색엔진 알고리즘, 콘텐츠의 추천 알고리즘 등을 통해 연결된 결과다. 이러한 발견의 경로도 제품, 정보, 콘텐츠 경험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2. 공유하는 컨텍스트 (Communicating context)
그리고 이렇게 발견된 콘텐츠, 제품, 정보 등은 나 자신을 통해 어딘가로 연결되고 공유되어 갈 것이다. 직접 공유버튼을 누르거나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도 있지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요소는 도처에 깔려 있다. 지인이 공유한 동영상을 클릭하는 순간 그 조회수가, 지인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순간 그 공감이, 그리고 이 가수들의 노래를 검색하고 챙겨 듣는 모든 흔적들이 이 콘텐츠를 누군가에게 (데이터로, 정보로, 내 목소리로, 글로) 전달하는 행위가 된다.
컨텍스트가 중요한 환경에서 커뮤니케이션 활동은 콘텐츠, 제품, 정보의 소비활동과 구분되지 않고 양방향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니, 끊김이 없이 연결되기를 지향한다. 위에서 언급한 아마존 킨들처럼 각자의 밑줄이 ‘인기있는 구절’이라는 정보에 기여한다면 각자의 밑줄은 공유행위, 커뮤니케이션 행위다(보다 자세한 사항은 매개의 4가지 유형 참조).
우리는 서로의 발견을 돕는 조력자들이다. 사업자는 이 조력자들이 더욱 그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커뮤니케이션 컨텍스트를 최적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발견의 경험은 매우 제한될 것이다.
3. 선택하는 컨텍스트 (Choosing context)
선택의 컨텍스트가 짧고 최적화되면 선택하는 과정 자체를 인지하기 어렵게 된다. 발견의 컨텍스트가 ‘문득’ 나에게 오는 것처럼 선택의 컨텍스트는 ‘저절로’ 부지불식간에 이뤄진다.
위의 이미지는 아마존 Fire TV에서 영화를 선택하는 컨텍스트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점이 의사결정 시간을 줄여주는데 기여할 것이고, 아래 이어지는 추천 (이 영화를 본 사람이 본 다른 영화)을 통해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는 컨텍스트로 이어질 수 있다.
모든 것이 양적으로 넘쳐나는 시대에 사용자 혼자의 힘으로 어떤 제품과 브랜드, 서비스, 콘텐츠, 정보를 소비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물론 모든 것을 고객이 스스로 노동을 통해 선택하도록 방치하는 사업자들도 많다). 정확성, 최신성, 적합성 순으로 필터링하여 선택의 폭을 좁혀주는 검색엔진처럼 고객의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은 덤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 행위는 다시 검색 엔진의 성능을 높이고 다른 사용자의 검색 시간을 줄여주는데 활용될 것이다.
결국 선택의 컨텍스트란 “다음에 뭐보지?, 다음에 뭐먹지?, 다른거 뭐사지?, 다음에 어디가지?”라는 질문을 하는 컨텍스트를 아예 죽여버리는 것이다. 끊김이 없이 다음 제품, 콘텐츠, 서비스가 ‘연결’될 때에만 가능하다. 물론 사용자의 컨텍스트(누구인지, 무엇을 보는지, 좋아하는지 등에 대한 데이터)를 알아야만 가능한 연결이란 것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4. 소비하는 컨텍스트 (Experiencing context)
예전에는 제품, 콘텐츠, 정보재를 ‘경험’하는 컨텍스트가 비교적 제한되어 있었다. 콘텐츠는 주어진 것이고 일단 소비를 하게 하는 것만이 즉 시청률, 도달률, 매출만이 핵심 과제였을 때는 그랬을 것이다. 그 시각으로 보면 소비 컨텍스트는 TV를 볼 때 거실에서 모여서 보느냐, 쾌적한 쇼파냐, 지하철 퇴근길 스마트폰이냐 정도로 제한될 것이다.
며칠전 Kpop 스타의 준결승전을 보느라 PC로 700원을 지불했다. 그 여정은 정말 멀고도 험했다. 시청할 수 있는 기기가 애플 제품들 뿐이었고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사용하지 않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결국 VM(Virtual Machine)을 통해 구매를 했지만 여기로 옮겨온 후에도 막다른 길에 대한 경험은 수차례 계속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문득’ 발견하고 ‘저절로’ 선택, 지불하는 경험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대신 다시는 유료로 동영상을 보지 않으리라는 결심에 이르게 된다. 구매는 중요한 소비 컨텍스트다.
네트워크의 끊김이 없이 얼마나 쾌적한 경험을 제공하는지,모바일로 보던 것을 집에 가면 TV로 이어서 보여주는지 등 경험의 컨텍스트는 수도 없다(물론 발견, 선택, 공유도 콘텐츠 경험의 컨텍스트로 간주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는 제품 소비(사용) 과정 자체에 국한하여 설명하고 있다).
아래는 영화 펄프픽션의 유명한 그 장면, 우마써먼과 존트라볼타가 복고춤을 추는 장면이다. 안방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콘텐츠의 정보를 “X-ray“로 힐끔 거리며 시청중이다. 등장 인물, 배경, 배우의 다른 작품 등 모든 정보를 손안에 연결한다. 어디 TV뿐이겠는가?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제품을 사용하는 환경들이 모두 경험의 컨텍스트를 제공하며 우리의 매순간만큼 변덕스런 기분만큼 모든 컨텍스트는 유일하고 무한하다.
컨텍스트의 연결이 끊김이 없을 때 (Seamless context)
모신문사에서 컨텍스트 연결을 강의하니 청중에서 ‘기자는 일일이 기사에 댓글을 달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을 한다. 4요소에서 살펴본 것처럼 컨텍스트를 발현시키고 연결하는 것은 사업자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연결이 반드시 댓글이나 좋아요도 아니다. 혼자 발품 팔아 어찌 지구 저편까지 소식을 전하겠는가. 우리는 사용자가 연결하도록 도와주는 역할만 수행하면 된다.
콘텐츠에 그만한 가치도 있어야 하지만 컨텍스트의 4요소가 살아서 발현되도록 환경(사용자 인터페이스, 콘텐츠들의 관계, 데이터 분석 등)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사용자 관계, 콘텐츠 관계, 데이터 관계가 모이면 그것이 사업자의 자산 즉 네트워크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요소들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단번에 발현된다면 컨텍스트 가치는 극대화된다. 아래 이미지처럼 말이다.
종이책의 참고문헌을 보고 스스로 검색을 하고 서점을 찾아가 책을 직접 구매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논문을 써야 하는 특수 환경이 아니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관련된 책의 표지, 개요, 사람들의 평점이 함께 있고 클릭 한번으로 샘플 저장(내 온라인 책장에 책이 바로 담기는 경험), 심지어 구매를 하거나 지인들에게 바로 알릴 수도 있다면 어떨까?
여기서는 새로운 것을 문득 발견하고 저절로 선택이 이뤄지며 (샘플을 클릭해서 서재에 담겼다면 이미 선택은 이뤄졌다) 독자들이 서로 암묵적인 도움을 주고 이 모든 컨텍스트가 다시 책을 읽는 경험 자체를 극대화 시켜준다. 4가지 요소가 동시다발적으로 부지불식간에 발현되며 여기서 나의 무의식적인 활동 (클릭 한번)이 새로운 컨텍스트를 스스로에게, 타인에게 연결시킨다. 컨텍스트가 흐르고 진화한다.
컨텍스트의 본질에서 다시 출발하는 비즈니스
지금까지 사용자 참여 관점에서 컨텍스트를 4가지로 그룹핑하여 살펴보았다. 컨텍스트는 쉽지 않은 주제다. 컨텍스트가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아직 정보미디어나 IT, 비즈니스쪽에서는 그 개념이 표면적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 영역이 언어학, 인지과학, 심리학, 사회학 등에서 지속적으로 다뤄지고 많은 융합 연구가 시도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미디어의 진화를 이해하려면 비껴갈 수 없는 영역이고, 사용자 경험(UX)을 논하자면 더욱 그렇고, 네트워크 시장에 대처하려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시공간이 해체되고 경계가 없는 오가닉 미디어 시대에 연결이란 바로 컨텍스트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컨텍스트는 결국 매우 사소한 사용자의 그리고 사용자에 의해 발현되는, 수도 없이 반복되는 상호작용의 결과이며 이 작은 작용들이 모여 미디어를 만들고 의미를 만들고 비즈니스를 만든다. 이에 예외가 될 수 있는 비즈니스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 글이 당신의 생각, 경험, 체험에 어떤 변화를 주게 된다면, 당신이 이 글을 발견하고 읽고 나누는 일련의 과정은 다시 이 글의 컨텍스트를 진화시키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물론 내가 여러분들의 참여를 측정하고 수렴하고 동반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말이다.
<관련 포스트>
- 미디어의 3가지 구성요소
- 컨텍스트에 답이 있다
- 콘텐츠란 무엇인가?
- 윤지영, “제1부: 미디어가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오가닉 미디어, 21세기북스, 2014. (블로그의 글들을 갈고 닦고 엮어 책이라는 컨테이너에 담았습니다. 블로그 포스트가 그대로 반영된 것도 있고 제목만 남기고 새로 쓴 글, 추가된 주제 등이 있습니다.)
글 : 윤지영 (오가닉 미디어랩)
출처 : http://goo.gl/OhyAq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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