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포스트: 브랜드는 네트워크다>
오가닉 리치(organic reach), 오가닉 서치(organic search), 오가닉 마케팅(organic marketing) 등 어느새 ‘유기농’ 말고도 ‘오가닉’이라는 단어를 들을 일이 많아졌다. 광고나 홍보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고객에게 자연적으로 도달한다는 뜻으로 통용되지만 아직 개념이 정립된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와중에 작년 봄 오가닉 마케팅에 사활을 걸고 환골탈태를 원하는 180년 전통의 글로벌 미디어회사를 만나게 된다.
100년이 넘도록 전통 미디어 공간을 사고 마케팅을 하던 이 회사는 혁신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가닉 미디어라는 아직 한글로만 존재하는 책을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책을 내고 1년동안 두가지 부류의 독자를 만났다. 변화가 절실하고 죽을 힘을 다해 변화를 준비하는 사람들, 세상이 변했다고 설득해야 하는 사람들. 전자인 경우 우리의 만남은 행복하다. 이 글에서는 미디어의 진화가 마케팅에 어떤 본질적 변화를 가져오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나의 체험과 여정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중이 사라졌다 (Masses have disappeared)
매스미디어의 시대는 끝났다. 이것은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이 사라졌거나 사라질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매스미디어의 타겟인 ‘대중’이라는 사회적 집단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매스미디어는 신문, TV, 라디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라는 사회관계를 만드는 미디어를 말한다. 매스미디어가 사라진다는 말은 인터넷이 TV를 대체한다는 말이 아니다. 대중(동시에 같은 메시지를 받고 직접 상호작용하지 못하는 수용적 그룹)이라는 사회관계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불특정 다수라는 그룹은 변화무쌍한 네트워크로 대체될 것이다.[윤지영, 오가닉 미디어,21세기북스, 2014, 10쪽.]
이러한 미디어의 변화는 ‘대중’을 타겟으로 지금까지 메시지를 생산하고 전달해온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아니, 내 타겟 그룹이 어느 날 공중분해 되었다면 나는 이제 누구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 매스미디어를 정의해온 대중(mass)이 사라졌다면, 그럼 앞으로 무엇이 미디어를 정의할 것인가?
책(제품), 네트워크가 되다 (Book, becoming a network)
만약 (작년 2월 출간된) 책 ‘오가닉 미디어’를 ‘누군가’ 사겠지, ‘대중’이 저기 있잖아,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출간했더라면 아마도 여러분들을 이렇게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본인은 꽤나 대단한 것을 쓰는 것처럼 흥분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글을 읽어보면 얼굴이 붉어진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혼자 신들린 문체에, 어줍잖게 번역된 학술 용어에, 소위 말하는 ‘인문병신체‘가 바로 내 것이었다.
나는 출간 대신 블로그에 글을 하나씩 공개하기로 결심했다. 책이 거의 씌여진 시점이었다. 이 실험은 책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내 눈앞에 펼쳐진 마법이었다. 그리고 이 실험을 통해 책은 ‘네트워크’가 되었다.
나는 이 과정에서 독자 한사람, 한사람 ‘개인’을 알게 되었다. 독자와 소통하면서 전달방식은 본질만 남겨지고 통째로 바뀌었다. 책이, 콘텐츠가, 미디어가 왜 네트워크인지 입증하는 여정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을 배우게 된 시간이었다. 이것이 곧 체험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미디어의 진화고 본모습이었다.
예상은 언제나 빗나갔다. 야심차게 꺼내놓은 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하고 공개되자마자 사망하기도 했다. 반면 전체 이야기의 구조상 할 수 없이 끼워 넣은 글에서 사람들은 폭발적으로 반응하기도 했다. 이렇게 사람들의 좋아요, 공유, 추천, 댓글, 메일, 리뷰를 따라 글의 여정들이 시작되었고 그 글들은 때때로 서로 만나기도 헤어지기도 했다(자세한 이야기는 [“끝이 곧 시작이다”, op. cit., p.236~244.] 참고).
독자(고객), 책의 일부가 되다 (Audience, becoming a part of network)
1년이 넘도록 내 글들과 연결되고 반응하고 가르침을 준 독자들은 책이 출간된 이후에도 마케터 역할을 자처해 주었다(그들의 리뷰만을 엮어 하나의 글로 공개할 계획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가 중요한 지점이다. 독자들이 단순히 책의 버즈를 생산하고 입소문을 내주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책의 일부가 되었다. 독자들은 내가 책에서 설명한 바로 그 네트워크의 구성원이었으며 미디어였으며 책 자체였다. 그들은 ‘미디어가 네트워크’라는 사실, 그래서 살아서 진화하는 유기체라는 사실을 내게 되짚어 주었다. 저자의 스토리를 저자에게 체득하게 해준 스승이었다.
미디어, 마케팅의 질서를 바꾸다 (Media, a game changer for marketing)
미디어를 살아서 진화하는 유기체로 보는 순간 우리는 그동안 시장을 지배해온 게임의 법칙이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시장의 질서가 재편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크게 3가지 본질적 변화를 들 수 있다.
1. 통제할 수 없다 (You don’t have control)
미디어가 네트워크란 뜻은 사업자에게 더이상 통제 권한이 없다는 뜻이며 대중에게 제품, 메시지,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당사자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미안하지만 현대자동차 제네시스의 이벤트 사례는 여전히 강렬하다. 제네시스 4행시를 가장 멋지게 읊는 고객에게 아메리카노를 선물하려 했지만 고객들의 겉잡을 수 없는 반응으로 사이트는 하루만에 조롱과 풍자의 4행시로 폭파(?)되다시피했다. 살신성인의 자세로 업계에 남긴 교훈이 크다. 오가닉 미디어는 사용자에게, 그들의 예측할 수 없는 활동에 의해 지배되는 네트워크다. 단 한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다면, 이제는 시장이 불확실성으로 가득찼다는 사실 한 가지뿐이다.
2. 도달은 관계를 만들지 못한다 (Reach won’t create relationships)
최근 모 정부기관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커뮤니케이션 혁신이 주제였는데 2시간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도달률’이었다. 미디어의 진화는 모바일, SNS로 공간만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는 ‘가장 빨리, 가장 멀리, 가장 많이’라는 공간 관점이 미디어를 지배했다면, 이제는 ‘어떤 연결을, 누가, 어떻게 만드는지’ 네트워크가 지배한다. ‘좋아요’ 숫자만 세고 있는 것은 전통 미디어의 도달률을 측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좋아요 수보다 그 이후 그들의 행동이다. 그렇다면 관계를 측정하기 위한 질문들과 이에 따른 구체적 지표가 수립되어야 한다.
- 네트워크가 구성될만한, 공유할만한, 일관된 콘텐츠가 있는가? 있다면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연결해주기 위함인가?
- 얼마나 많은 고객들이 직원으로, 기자로 우리를 위해 공짜로 일하고 있으며 그들 한명 한명은 누구인가? (리뷰를 쓰는 능동적 고객만이 아니다. 고객이 혜택(쿠폰, 할인, 추천 등)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데이터를 오픈하고 서로의 최적화된 연결에 기여하며 선순환을 만든다면 이들도 모두 우리의 직원이다)
- 그들은 무엇을 매개하며 (공유, 언급, 리뷰, 구매, 참석, 소비 등) 얼마나 자주 매개하는가?
3. 끝이 곧 시작이다 (The end is the beginning)
이제 출간, 공개, 출시, 이벤트 등은 작업의 끝이 아니다. 책의, 서비스의, 제품의, 마케팅의 시작점이다. 마치 앱스토어에 어플리케이션을 등록하는 순간 본게임이 시작되는 것처럼 말이다(심지어 나는 PC에서 청정마을처럼 시작한 SNS를 스마트폰용 어플로 출시한 후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한 적도 있다. 사용자들의 예측불가한 집단 행동에 놀라 10만명에게 메일을 보내 사정을 하기도 했다.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모든 비즈니스가 사용자 경험, 행동, 체험에 기반한다. 아무리 대대적인 광고와 마케팅을 하더라도 소용없다. 사용자 경험(UX)이 시작되는 지점이 비로소 스토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품, 프로젝트, 이벤트 기획 방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예전에는 기획과 개발 기간이 선형적(linear)이고 터무니없이 길었다. 고객을 만나지 않고 상상으로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끝이 곧 시작’인 시장에서 기획과정은 비선형적(non-linear)이며 실험과 검증의 연속으로 대체된다. 고객을 만나는 지점은 대망의 출시, 이벤트가 아니라 훨씬 더 이전에 이뤄진다. 설문조사에서 드러나지 않는 현상을 직접 체득하고 리스크도 줄인다. 작은 실험 사이클을 여러번 경험하려면 결국 마케팅, 홍보, 프로모션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가설을 검증하고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수단(의 연속)이 되어야 한다(콘텐츠를 항상 고객의 데이터 분석을 위해 활용하는 버즈피드 사례).
오가닉 마케팅은 관점의 전환이다 (Organic marketing as a new perspective)
미디어의 진화가 마케팅 영역에 숙제를 남기는 것은 당연하다. 대중이라는 사회적 그룹이 사라지고, 마케터들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서 미디어는 네트워크 자체가 되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마케팅을 정의할 것이며 어떻게 숙제를 정리할 것인가?
전통적 마케팅과 문제의 정의
전통적으로 마케팅은 제품, 서비스, 브랜드의 가치를 고객에게 소통하는 것으로 정의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들어 마케팅은 보다 넓은 관점에서 정의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마케팅협회(Americal Marketing Association)는 다음과 같이 마케팅을 정의한다.
마케팅은 고객, 파트너 그리고 사회 전반에게 가치있는 제품 등을 만들고, 소통하며, 전달하고, 교환하는 일련의 과정이자 활동이다. (Marketing is the activity, set of institutions, and processes for creating, communicating, delivering, and exchanging offerings that have value for customers, clients, partners, and society at large.)
과거의 마케팅에서 고객 한 사람의 니즈, 욕구가 무엇인지 중요했다면 이제는 고객이 사랑하는 가족(tribalism), 고객이 참여하는 사회, 고객이 살고 있는 지구 단위로 가치는 확대되었다.[Philip Kotler, Marketing 3.0, 2010.] 고객의 역할도 달라졌다. 고객은 주체적이며 능동적이다. 그리고 고객이 접하는 수많은 커뮤니케이션 도구들은 아예 그들 스스로를 미디어가 되도록 만들었다. 마케팅에서 고객은 이제 직원, 기자, 마케터, 전문가가 된 것이다.
그러나 ‘고객과 나의 관계’에 대한 집착은 여전히 버리기 어려운 마케팅의 본질이다. 마케팅이 품어야 하는 가치의 종류와 범위는 넓어졌고 고객의 역할도 달라졌으나 마케팅은 여전히 고객과 나(기업·기관·브랜드)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이란 용어가 지칭하는 바도 그렇다. 그러나 연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회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고객과의 관계 경영이 가능한가?
오가닉 마케팅(Organic Marketing)과 관점의 전환
셀 수 없이 많은 제품과 회사와 정보와 데이터가 존재하는 세상이다. 고객이 모든 것을 판단하고 고르고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환경에서 고객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그러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오직 연결 가치뿐이다. 고객이 필요한, 공감하는, 원하는 정보·제품·사람·기회(opportunity)의 연결을 말한다(심지어 광고도 연결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개인의 컨텍스트를 파고든다). 여기서는 ‘고객의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키우고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곧 마케팅이 된다. 제품, 브랜드, 메시지는 이 맥락 안에서만 발현된다.
고객의 네트워크가 통제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고객의 네트워크가 자라나도록 도와주는 조력자 역할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안과 밖의 경계가 없는 시장에서 사업자는 누구인가?,” op.cit., 2014.]. 이제 마케팅은 ‘연결을 목적으로 하는’, 그 결과 ‘고객의 네트워크가 살아서 진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을 말하며, 이것이 바로 오가닉 마케팅의 정의기도 하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CRM은 고객의 네트워크를 매개하고 측정하는 활동(Customer Network Mediation)으로 관점을 전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오가닉 마케팅은 크게 3가지 특성을 띈다.
- 첫째, 고객의 관계를 매개한다(고객과 고객, 고객과 정보, 고객과 제품, 고객의 (잠재적) 관심 등을 매개한다).
- 둘째, 사업자, 소비자, 제휴사 등 모두가 연결활동에 참여한다(어떻게 모두를 매개자로 만들 것인가가 마케팅의 과정이다).
- 셋째, 이에 따라 마케팅의 결과는 네트워크로 나타난다(관계가 지표다).
오가닉 마케팅은 미디어의 정의를 그대로 따른다. 오가닉 미디어란 미디어를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는 관점이며, 그래서 진화하는 네트워크가 핵심이다. 전통적 미디어가 메시지(콘텐츠)를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다면, 오가닉 미디어는 관계를 ‘매개’하여 네트워크를 만든다. 물리적 공간에 기반한 미디어의 시대는 끝났다.
이는 전통적 마케팅의 시대도 끝났다는 말과 같다. 오가닉 마케팅은 유료(paid) 마케팅의 반대말이 아니다. 마케팅의 본질적 진화다. 다만 이 진화는 미디어를 살아있는 네트워크, 그래서 누구도 통제하거나 소유할 수 없는 유기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The age of organic marketing begins when you accept the fact that (organic) media cannot be controlled as they are living creatures and evolving networks which nobody owns.).
우리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 (Endless journey to find the answer)
다행히 ‘오가닉미디어’ 책의 여정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미디어가 네트워크라는 사실을 입증하듯, 책은 그 여정속에 여러분을 만났고 영어 출간을 위한 후원자도 만났다. 존경하는 미디어 석학도, 이 책의 이론 정립에 영향을 준 저자도 만났다(곧 상세히 여러분과 공유할 수 있게 되기 바란다). 그런 면에서 이 글의 공개도 마침표는 아닐 것이다. 마케팅 전문가들과 함께 많은 검증과 실험을 더하며 진화하기를 바란다.
고객(독자)들에게 나는 어떤 연결가치를 전하려고 했을까. 현장의 독자들에게는 생각할 시간을 벌어주고 싶었고, 학자들에게는 문밖과 연결되기를 원했다. 완전한 생소함이 아니라, 이미 그들이 체험과 연구를 통해 습득한 조각들이 발현되고 조금 더 연결되는 즐거움 말이다. 네트워크가 자라고 있는 한 책(미디어)의 진화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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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지영 (오가닉 미디어랩)
출처 : http://goo.gl/Mw1H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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