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코스 이야기를 연재하겠다고 해놓고 벌써 몇주가 흘렀다. 출장 등으로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왠지 뭔가 글을 잘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전혀 글을 못쓰겠다. 아무도 안 읽어도 되고 내 자신을 위해 기록을 남긴다는 마음으로 그냥 대충 쓰려고 한다. 우선은 스토리볼에 연재했던 내용을 좀 보완해서 하나씩 기록해 나가기로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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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코스CEO로 2009년 3월에 공식적으로 부임한 이후 한동안은 악착같이 비용을 줄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흑자 전환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재무 팀장과 엑셀 시트의 비용 항목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이건 무엇인지 줄일 수 있는 것인지를 하나하나 물어보면서 몇백, 몇천불이라도 줄여나갔다.
콘트롤러(재무팀장)과 앉아서 이 비용이 무엇을 뜻하고 왜 필요한 것인지 물어봤다. 예를 들어 위는 각종 사무실운영비용인데 ‘아이언 마운틴’이라는 항목이 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어보니 종이로 된 오래된 서류를 아이언마운틴이란 회사에 보내면 아카이빙해서 보관해준다는 것이다. 미국회사들은 대부분 이용하는 서비스라는데 한국에서 온 CEO로서는 하나하나 물어보기 전에는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필요없는 출장, 컨퍼런스 참가 등도 모두 줄였다. 출장을 갈 경우에도 CEO부터 전 임원이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는 것으로 했다. 출장항공권이나 호텔예약조차도 비서나 여행사에 부탁하는 것이 아니고 익스피디아를 통해 직접 예약했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 복지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하지만 회사가 어려운 상황인 만큼 다들 이해하고 참아주었다.
그러다 보니 반 년 후 조금씩 월별 수지가 개선되면서 소폭의 혹자로 돌아섰다. 기쁘기도 하고 너무 비용 절감만 외친 것이 미안하기도 해서 HR매니저 존과 상의해서 직원 사기진작을 위한 이벤트를 갖기로 했다.
큰 돈 들이지 않고 어떤 행사를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나온 것이 무비나잇(Movie Night)이었다. 직원들이 모두 다같이 근처 극장에 가서 영화를 관람하고 팝콘, 음료 정도를 회사비용으로 사준다는 것이다. 소박한 아이디어였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도 비슷한 행사를 가진 일이 있기에 쉽게 이해가 됐다. 회사 일과가 끝나고 다같이 극장으로 출발해서 영화를 관람한 다음 나와서 맥주 한잔을 하고 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 운전을 하고 귀가해야 하고 근처에 술집도 거의 없는 보스턴 교외지역에서 영화를 보고 맥주 뒤풀이까지 하기에는 좀 무리다 싶었다. 그래서 영화만 보는 것으로 생각하고 HR매니저와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 무비 나잇 당일이 됐다. 오후 2시쯤 존이 내 자리로 와서 “이제 전 직원들과 극장으로 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난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아니 무비 나잇은 이름 그대로 밤에 하는 행사가 아닌가? 왜 그걸 시퍼런 대낮에 하자고 하는 것이지? 게다가 회사에서 돈을 대주고 가는 것인데 왜 업무시간을 빼먹고 가야 하는 것이지?”
한국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이해가 안됐다. 솔직히 좀 화가 났다.
존에게 왜 2시에 나가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질문했다. 그러자 그가 당당하게 대답했다.
“영화가 끝나는 시간이 오후 5시를 넘으면 안됩니다. 5시이후는 패밀리 타임입니다.”
난 그 이야기를 듣고도 라이코스 직원들이 군기가 빠져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다른 미국회사도 그런지 궁금했다. 트위터를 통해 트친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다른 회사도 그런지 물어봤다.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회사에 다니는 다른 한국 분들의 대답이 돌아왔다. 대부분 자기들 회사도 똑같다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영화를 보러 갈 때는 일찍 가서 저녁시간이 되기 전에 영화가 끝나고 귀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순순히 직원들과 다같이 극장에 가서 즐겁게 영화를 관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영화도 꼭 다같이 같은 영화를 볼 필요가 없었다. 본인이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해서 삼삼오오 같이 들어가서 감상했다.
몇몇 안 보이는 얼굴들도 있었다. 물어보니 영화에 별로 흥미가 없는 직원들은 회사에 남거나 일찍 집으로 갔다고 한다. 회사 행사라고 모든 직원들을 다 강제로 가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 일을 통해 한국과 미국의 직장 문화의 차이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예전 직장에서는 직원들의 단합회식은 업무시간이 끝난 저녁에 하는 것이 당연했다. 심지어 단합대회 워크숍을 토요일에 가는 것도 당연하게 여겼다. 그리고 열외는 인정되지 않았다. 중병이 걸린 것이 아니면 모두 참석해야 했다.
반면 미국에서는 이런 문화가 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최소한 미국의 직장은 한국보다 더 구성원들이 가족 중심적으로 살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다.
글 : 에스티마
원글 : http://goo.gl/LQ2Y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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