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대기업…벤처 아이디어 베끼고 모르쇠

‘개들을 위한 개들에 의한 개들의 바캉스가 펼쳐진다! 개캉스.’ 반려동물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A사 대표 김 모씨는 얼마 전 온라인에서 한 대기업 통신사 광고를 보고 깜짝 놀랐다. 지난해 자신이 제안한 내용과 거의 같은 행사가 해당 통신사 단독 주최로 오는 8일 열린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A사는 그동안 반려·유기동물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2013년부터 국내 최초로 서울 능동어린이회관 수영장에서 ‘반려견을 위한 워터축제'(일명 개리비언베이)를 열고 있다.

김 대표는 “보다 많은 사람과 행사를 즐기고 싶어 통신사의 ‘반려동물 위치추적 기기’를 홍보해주는 조건으로 협찬을 제안했다”며 “몇 차례 회의 끝에 조건이 맞지 않아 합의가 무산됐는데 이후 통신사에서 ‘거품탕’ ‘볼풀장’ 등 우리가 제안한 프로그램을 이름만 바꿔 똑같은 콘셉트로 축제를 내놨다”고 주장했다. 그는 “반려동물과 서울 시민들이 도심공간에서 함께 어우러지도록 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를 기업의 제품 판촉을 위해 베낀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사업 제휴를 위해 대기업에 아이디어를 공개했다가 이를 도용당했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벤처·중소기업 사례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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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벤처기업이 많은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대형 포털업체와 분쟁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지난 6월 대형 포털회사가 출시한 모바일용 송금결제 서비스는 국내 신생업체 모델을 베꼈다는 논란이 일었다. 전화번호만 있으면 누구에게나 송금이 가능한 방식이나 서비스 화면 구성 등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형의 가치인 지식재산 특성상 특허 등으로 등록돼 있지 않는 이상 원작자를 가려내기가 어렵다. 박찬훈 법무법인 강호 변호사는 “창작 아이디어라고 하더라도 특허법, 상표법, 디자인보호법,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등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아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때 마지막 보루가 ‘민법상 불법행위’인데 대개 예외적인 상황에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만큼 해당되는 사례가 적다”고 말했다.

소규모 기업 여건상 거대 기업을 상대로 승산 없는 법정 다툼을 벌이기도 쉽지 않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신생 벤처회사나 중소기업이 아이디어 차원의 지식재산을 도용당했다며 대기업을 상대로 다툰 판례는 드물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이디어 수준의 지식재산을 현실화할 자본이 부족한 개인이나 신생기업으로선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반면 대기업은 이를 악용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전문가들은 사업 제휴 등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는 사전에 준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조우성 한중 변호사는 “가능하면 상대와 비밀유지 약정을 체결한 뒤 아이디어를 공개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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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현정 기자(매일경제)
원문: http://goo.gl/3BuV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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