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야? 분명 회사 신년회 행사를 보조할 진행요원 교육이라 해서 왔는데, 갑자기 왠 공연? 꽤나 지루한 교육이 진행되던 무대. 개그맨이자 공연기획자인 백재현씨가 ‘젊음과 소통’을 주제로 강연을 하다 말고 따분한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갑자기 뮤지컬 한 편 보고 교육을 이어나가자 제안하는데. 추운 겨울, 야외 행사 지원 알바를 하기 위해 교육에 참석한 5백 명의 대학생들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그래도 만면에 퍼지는 환한 미소와 이어지는 흥겨운 뮤지컬 공연. 이윽고 이 모든 것이 이 회사에서 취업난에 허덕이는 대학생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깜짝 이벤트’라는 게 밝혀진다. 그 반전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인데, 야외 행사는 없고, 돌아가는 길에 2012년 다이어리와 그날의 알바에 대한 수고비까지 챙겨주는 센스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이른바 소셜 미디어라는 것을 통해 최근 보게 된 유튜브 동영상 내용이다. 바로 코오롱 그룹에서 기획한 “힘내라 젊음, 헬로 드림” 프로젝트.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훈훈한, 재미와 감동의 ‘이야기’다. 관련 동영상 조회수도 10만을 훌쩍 넘겼다. 문득 생기는 궁금증. 사람들은 왜 이 동영상을 그렇게 열심히 퍼다 날랐을까? 왜 이렇게 조회수가 높을까? 힌트는, 바로 ‘이야기’다. 더 정확하게는 ‘재미있는 이야기’ 혹은 ‘감동적인 이야기’다.
“옛날 얘길 그걸 듣구서는 누귀한테 가 얘길 안 하면 얘기가 굶어 죽어. 그러면 얘기가 굶어 죽는다구. 그러, 괜히 살(煞)이 되면 안 돼. 그러니까 얘길 해요. 오늘 저녁에 들은 거 아무 데라도 댕기면서 얘기를 해야 얘기가 자꾸 빠져 나가면서 얻어먹구 살잖아.” 「한국구비문학대계」라는 구비문학 자료집 2-6 권에 실려있는 ‘이야기 주머니’ 설화의 첫 대목이다. 강원도 횡성군의 한 할머니가 구수한 사투리로 풀어 낸 이 이야기는 그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부터 발원한 사회적 존재 (Social Being)로서의 인간 본성을 에둘러 보여준다.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 관계를 맺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며 관계를 맺었다. ‘호모 스토리쿠스’란 말이 그다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배경이다.
공유의 비용이 제로에 가까운 소셜 미디어의 시공간에서 사람들은 이제 모든 것을 공유한다. 플리커를 통해 사진을 공유하고 유튜브를 통해 동영상을 공유하며 포스퀘어를 통해 위치를 공유한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이 모든 나눔의 현상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모든 공유의 이면에는 ‘이야기’가 존재한다. 사진과 동영상, 위치 등을 공유함으로써 사람들은 결국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어디에 갔더니 뭐가 있길래 이렇게 하면서 저렇게 했다.”라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내며 그런 ‘이야기’에 대한 반응들로 서로의 존재와 관계를 확인한다. 이른바 스토리텔링의 시대.
정보화 사회의 태양이 지고, 이야기 중심의 ‘드림 소사이어티’가 도래했다고 역설하는 미래학자 롤프 옌센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소셜 시대의 스마트한 기업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영리한 기업들의 마케팅은 이제 ‘이러이렇게 훌륭한 제품을 만들었으니 사라!’의 패러다임에서 ‘우리는 기존 질서에 도전하며 혁신을 꿈꾼다. 우리의 제품은 그런 가치 위에 발을 딛고 서있다’는 식의 ‘이야기 패러다임’으로 진화했다. 바로 애플의 사례다.
폭스바겐은 연료 효율을 높이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친환경 엔진 기술을 개발하고 ‘블루모션’이라 이름 붙였다. 일반 기업이었다면 TV나 신문에 대대적인 광고를 하며 블루모션의 차별적 기능과 특장점 홍보에 열을 올렸을 터. 하지만 폭스바겐은 고객들에게 무차별적 광고 대신 슬며시 ‘이야기’를 건넨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에스컬레이터보다 계단을 더 많이 이용하도록 할 수 있을까? 그렇게만 되면 우리가 사는 지구의 오염을 좀 더 줄일 수 있을 텐데.’ 폭스바겐은 지하철 역 에스컬레이터 옆 계단을 피아노 건반 모양으로 바꾸고 사람들이 밟을 때마다 소리가 나도록 만든다. 피아노 건반 모양의, 지나가면 소리가 나는 계단. 사람들은 너나없이 바로 옆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외면하고 즐겁게 피아노 계단을 오르내린다. 이렇게 동영상으로 만들어진 폭스바겐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열광적 호응 하에 소셜을 통해 퍼져 나갔다. 폭스바겐은 블루모션에 대한 일언반구 없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좀 더 살만한 곳으로 바꾸려 노력하는 친환경 기업’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한다. ‘이야기’의 힘이다.
한 개 가격의 동전을 넣으면 두 개가 나오는 코카콜라 자판기. 그런데 높이가 3m를 훌쩍 넘어 동전 투입구까지 손이 닿지 않는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 사람들은 친구와 함께 작전을 짠다. 친구가 허리를 숙이면 그 등을 밟고 올라가 동전을 넣기도 하고 친구를 무동 태워 동전을 넣기도 하고. 이 번거로운 수고에도 그들의 얼굴에는 연신 웃음꽃이 핀다. 친구와의 우정을 온 몸으로 느끼며 공짜로 얻은 콜라 한 캔. 이 모든 것들은 코카콜라가 미리 준비한 카메라에 오롯이 담긴다. 2011년 칸느 국제 광고제 수상작 <Friendship Machine(우정 자판기)>이다. 역시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
고객은 이제 스펙에 감동받지 않는다.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기업의 활동에 눈과 귀를 집중한다. ‘무엇을 만드는가’가 아니라 ‘어떤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가’가 기업을 상징하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든다. 이런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재미있거나 감동적인 ‘이야기’의 전파 속도는 폭발적이며 그에 대한 반응 또한 긍정적이고 호의적이다. 더군다나 이제 사람들은 그 ‘이야기’의 과정에 직접 참여하며 그 ‘이야기’들을 즐겁게 비틀며 유쾌하게 패러디한다. 재미와 감동을 추구하는 ‘호모 스토리쿠스’, 그 인간 본성의 소셜 시대 식(式) 발현이랄까. 기업들이 눈 여겨 보아야 할 소셜 시대 마케팅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글/ 벤처스퀘어 비즈랩 대표 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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