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과 오마주 그리고 부정경쟁방지법

법원 판결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주제를 다뤄볼까 한다. 아이디어가 곧 재산인 스타트업 입장에선 귀기울여볼만한 주제가 아닐까 싶다. 얼마 전 캔디 카메라로 유명한 스타트업인 JP브라더스가 만든 스냅킼(Snapkik)이 스크루바의 구닥(Gudak)을 표절헀다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사건의 재구성=구닥은 9월 26일 기준 다운로드 수 100만 건을 넘을 만큼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필름 카메라 앱이다. 1회용 필름 카메라처럼 24장을 모두 찍고 3일을 기다려야 사진을 볼 수 있고 필름을 인화할 때 발생하는 빛 번짐 현상 같은 것까지 그대로 재현해냈다.

그런데 지난 9월 30일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스냅킼 앱이 출시됐다. 소비자 상당수는 이를 구닥의 안드로이드 버전이라고 착각했다. 스냅킼의 컨셉트와 이미지가 구닥의 그것과 유사했고 구닥이 마침 안드로이드 버전 출시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

스냅킼을 출시한 JP브라더스 측은 수억 명이 쓰고 있는 캔디카메라 앱 푸시 알림을 통해 앱을 홍보했고 곧 이 사실을 알게 된 구닥은 JP브라더스에 스냅킼 출시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며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이에 대해 JP브라더스 역시 반박문을 낸다. 구닥 역시 기존에 있던 1회용 카메라 앱과 유사한 디자인, 형태를 띄고 있으며 자신들은 코닥의 편세이버 디자인을 오마주했기 때문에 문제될 부분이 없다는 것이었다. ​

하지만 반박문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반발이 계속되자 논란 이틀만인 10월 2일 JP브라더스는 사과문을 올리고 스냅킼 서비스를 중단했다. 다행히 법적 다툼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최근 스타트업 간 유사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과연 어디까지가 표절이고 어디까지가 오마주인지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표절과 오마주의 경계=항간에 이런 말이 있다. “원작을 알면 재미있는 건 패러디. 원작을 알리고 싶은 건 오마주. 원작을 감추고 싶은 건 표절.”

상당히 기발하면서도 명쾌한 기준이 아닐 수 없다. 좀더 정식으로 의미를 살펴보면 이렇다.

표절 : 다른 사람이 창작한 저작물 일부 또는 전부를 도용, 사용해 자신의 창작물인 것처럼 발표하는 것.

오마주 : 프랑스어로 존경, 경의를 뜻하는 것으로 영화에서는 보통 후배 영화인이 선배 영화인의 기술적 재능이나 그 업적에 대한 공덕을 칭찬해 기리면서 감명 깊은 주요 대사나 장면을 본떠 표현하는 행위를 말함.

결국 표절과 오마주의 경계는 문제되는 창작물을 자신의 창작물처럼 발표하고 이를 통해 고객 또는 해당 창작물의 향유자를 속이는지 여부에 달려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다시 구닥과 스냅킼의 경우로 돌아가서 살펴보자. JP브라더스의 주장대로 구닥이 1회용 카메라를 오마주해 만든 앱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JP브라더스는 자신의 앱 역시 1회용 카메라를 오마주해 만든 것이며 이는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보편적 앱 형태라고 주장한다. 과연 이건 표절일까 단순 오마주일까.

어려운 문제지만 스냅킼이 ① 한창 인기가 높은 구닥의 이미지와 유사한 코닥 카메라 이미지를 사용한 점, ② 단순히 코닥 카메라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을 넘어 ’24장, 3일’이라는 구닥의 컨셉트를 그대로 사용한 점을 보면 과연 스냅킼이 코닥 카메라의 오마주만 염두에 둔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더구나 정황적으로도 ① 추석연휴 기간으로 구닥의 빠른 대처가 불가한 시점이었던 점, ② 구닥이 진출하지 않은 안드로이드 시장만을 겨냥한 점, ③ 이로 인해 소비자로 하여금 스냅킼이 구닥의 안드로이드버전인 것으로 오인하게 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단순히 코닥의 오마주라는 변명으로 사태를 수습하기에는 어렵지 않았나 싶다.

만일 스냅킼이 구닥을 표절한 것으로 인정된다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개정 2011.12.2, 2013.7.30, 2015.1.28>

  1. “부정경쟁행위”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

가. 국내에 널리 인식된 타인의 성명, 상호, 상표, 상품의 용기ㆍ포장, 그 밖에 타인의 상품임을 표시한 표지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을 사용하거나 이러한 것을 사용한 상품을 판매ㆍ반포 또는 수입ㆍ수출하여 타인의 상품과 혼동하게 하는 행위

차. 그 밖에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 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

(출처 :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타법개정 2017. 7. 26. [법률 제14839호, 시행 2017. 7. 26.] 특허청 > 종합법률정보 법령)

가. 제2조 제1호 가목 위반

1) 상품 등 표지성=표지란 그 표지가 부착된 상품이나 영업 출처나 주체를 그런 표지가 부착되지 않은 상품이나 영업과 구별하게 해주는 기능을 하는 기호, 문자, 도형, 형상 등을 의미한다. 식별력이라고도 한다. 특정 영업장의 독창적인 인테리어나 종업원 복장도 영업 표지에 해당할 수 있다.

2) 주지성=이는 식별력을 전제로 소비자나 거래자, 경쟁업계에 널리 인식되어 객관적 거래 표지로 기능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대법원 2011. 4. 28. 선고 2009도11221 판결>

“국내에 널리 인식되었다”는 의미는 국내 전역에 걸쳐 모든 사람에게 주지되어 있음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의 일정한 지역범위 안에서 거래자 또는 수요자들 사이에 알려진 정도로써 족하고 널리 알려진 상호 등인지 여부는 그 사용기간, 방법, 태양, 사용량, 거래범위 등과 사회통념상 객관적으로 널리 알려졌느냐의 여부가 기준이 된다.

3) 동일성 및 유사성으로 인한 혼동=양자가 동일한 건 아니나 외관, 호칭, 관념 면에서 비슷해 거래 통념상 상품 생산자 또는 판매자에 관해 오인이나 혼동을 일으킬 염려가 있는 걸 의미한다. 이때 혼동은 현실적으로 발생할 필요는 없고 일반 거래자나 수요자의 일상적 주의력을 기준으로 할 때 혼동을 일으킬 염려가 있으면 충분하다.

<서울지방법원 2003. 8. 7. 선고 2003카합1488 판결>

혼동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상품의 성질, 영업의 형태 기타 거래사정 등에 비추어 유사상표를 사용하는 상품 또는 영업이 저명상표의 저명도와 그 지정상품 또는 영업이 갖는 명성에 편승하여 수요자를 유인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경업관계 내지 경제적 유연·후원관계가 있는지가 일응의 기준이 된다고 할 것이며, 그 구체적인 판단에 있어서는 표지선택의 동기, 표지에 나타난 악의도 참작해야 할 것이다.

4) 보호 객체로서의 상품 또는 영업=본 호에서 말하는 상품은 원칙적으로 거래 대상으로서의 유체물을 의미한다. 다만 앱과 같이 다운로드 방식으로 거래될 경우 무체물이지만 재산권의 대상이 되므로 본 혼의 상품에 해당한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

나. 제2조 제1호 차목 위반(성과도용행위)

1) 보호의 대상=본 호의 보호 대상은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다. 이때 성과는 기술적 성과 외에도 고객에 대한 이미지, 비즈니스 플랫폼, SNS 등을 이용한 고객 네트워크와 같은 무형의 성과도 포함한다.

구닥의 경우 1회용 카메라를 앱으로 실행하고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는 바 이런 명성, 이미지 역시 무형의 성과로 본 호의 보호 대상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2) 위법한 무단사용 및 경제적 이익 침해=본 호에 해당하기 위해선 타인의 성과를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 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사용해야 하며 이로 인해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해야 한다. 법원은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 질서에 반하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위 차목 위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의 성과를 이용하는 게 상거래 관행에 반하지 않는다거나 이런 이용이 오히려 정당한 경쟁을 촉진할 때에는 부정경쟁행위라고 볼 수 없다.

다. ‘구닥’ 과 ‘스냅킼’ 사건의 경우

1)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가목=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라도 다운로드 받아 유료, 인앱 판매 등으로 매출이 발생한다면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가목 상의 ‘상품’ ‘상표’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인다.

따라서 스냅킼이 본 호에 위배되는지 여부는 구닥이 국내에 널리 인식됐는지, 스냅킼이 구닥의 명성에 편승해 소비자를 유인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만일 스냅킼 주장대로 구닥과 자신의 컨셉트나 이미지가 모두 1회용 카메라에서 영감을 얻은 것일 뿐 구닥이 상표, 상품이 널리 알려진 게 아니라면 위 ‘가목’에 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에 ‘24장, 3일’이라는 컨셉트가 시장에 없었다가 구닥이 처음 시장을 열었고 적어도 독특한 카메라 앱을 사용하는 수요자에게 구닥이 널리 인식된 상태에 이른 상황이라면 그리고 앞서 본 여러 정황상 수요자가 구닥의 안드로이드 버전으로 혼동해 다운로드 받았다면 위 ‘가목’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2)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차목=구닥은 개발에 소요된 상당한 시간, 노력, 각종 비용을 투입해 ‘24장, 3일’이라는 컨셉트의 카메라앱을 만들었고 100만 건 이상 다운로드를 통해 상응하는 성과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스냅킼 개발이 구닥의 성과를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 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무단 사용해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했는지 여부는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 질서에 반하는 방법’은 상당히 추상적인 말이고 시장 내 경쟁은 결국 소비자에게 이익을 주기 때문에 함부로 경쟁을 제한해선 안 될 것이다. 만일 스냅킼이 일반적인 1회용 카메라 컨셉트와 디자인을 차용한 것이라면 구닥과 다소 비슷해도 경쟁의 범위에 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24장, 3일’이라는 독특한 컨셉트와 거의 같은 앱을 내놓으면서 이미 구닥이 유명세를 탄 애플 앱스토어를 피해 안드로이드 버전을 추석 연휴를 이용해 출시했다면 공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구닥의 인기를 이용했다고 볼 여지가 있고 그렇다면 위 ‘차목’에도 해당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양심적·합리적 경쟁으로 실리·자부심을=최근 인기 높은 제품을 교묘하게 베끼는 이른바 미투 브랜드가 늘어나고 있다. 어찌 보면 이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좋은 경쟁자는 오히려 적당한 자극과 발전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또 소비자에겐 선택의 범위를 넓혀주고 자유 경쟁 원리에 부합하며 경쟁 구도를 통해 품질 향상을 도모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베끼기가 정당한 경쟁의 범위를 넘는 경우다. 앱과 SNS 등 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이런 베끼기 형태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2013년 7월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차목으로 성과도용행위를 추가한 것도 이처럼 다양해진 표절 형태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다행히 법원도 이를 적극 활용해 원조 브랜드를 보호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상품 하나가 탄생하고 유명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감히 헤아리기 어려운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이를 그대로 베낀다면? 자극과 건전한 경쟁이 아니라 시장 전체의 침체로 이어질지 모른다. 실제로 많은 콘텐츠 시장이 표절과 따라하기로 침체되어 있다. 창의성이 필요한 산업 영역에서 지나친 베끼기를 하는 건 스스로 윤리적 가책을 느끼지 않을까? 양심적이고 합리적 경쟁을 통해 실리와 자부심이 함께 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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