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언론에 보도된 ‘뽀로로 1조원 인수제의 거절’로 한 동안 많은 얘기들이 회자 되었었는데 그런 사실을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M&A라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뽀로로 사건에 대해서는 @estima7님께서 잘 정리해주신 포스팅이 있으니 참고하세요)
저는 뽀로로에 대해서 다시 얘기하고 싶어서 포스팅을 하는 것은 아니고,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M&A에 대해서 적어보려고요. 얼마 전 언론사 기자분께서 제게 연락을 하셔서 “한국 벤처업계에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어보신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제가 드렸던 대답은 “M&A가 일어나지 않는 환경이죠. IT 대기업/중견기업들이 좋은 스타트업들을 많이 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부터가 선순환의 시작입니다.” 였습니다. 그리고 또 얼마 전에 정부에서 SW분야를 담당하시는 사무관님께서 제게 연락을 하셔서 “국내 SW 업체들을 지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요? 정책자금을 주는 것이 최선일까요?” 라고 문의하셨을 때에도 정책자금도 도움이 되겠지만 똑같이 M&A가 핵심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벤처업계에 있어서 M&A가 가장 큰 문제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는데,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래야지만 (1) 좋은 기업가들이 많이 나와서 창업을 많이 하고 (2) 벤처캐피탈이 열심히 투자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투자자는 궁극적으로는 수익을 내기 위해서 투자합니다. (수익을 내라고 저희 같은 벤처캐피탈에 국민연금과 같은 투자자가 또 투자를 해주는 것이고) 그런데 좋은 아이디어와 좋은 팀을 갖고 있는 스타트업에 담보/연대보증 없이 투자를 해주기 때문에 그것이 궁극적으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죠. IT산업 발전도 되는 것이고. (IT산업 발전을 위해서 투자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이해하면 주객이 전도 된 것이죠) 아무튼, 저희 투자자들은 수익을 내야 하는데 회수(exit)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면 갑갑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IPO를 하기 위해서는 대략 매출 100억원에 순이익 20억원 수준 정도는 되야 하는데 모든 스타트업들이 재무적으로 그 수준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거든요. 또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 비즈니스 모델은 고객들이 원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재무적으로는 성과를 내기 힘든 경우도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국내의 많은 벤처캐피탈들이 초기기업 투자, 인터넷/모바일 기업 투자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는 점도 이해가 갑니다 (참고로 저희 소프트뱅크벤처스는 국내에서 인터넷/모바일, 초기기업 투자에 가장 공격적인 벤처캐피탈로 꼽히죠. 그래서 아주 가끔 다른 벤처캐피탈로부터 “너네는 뭘 믿고 그렇게 투자하냐?”라는 얘기를 듣기도 하고요)
앞서 ‘선순환’이라는 단어를 제가 사용했는데, 제가 볼 때는 그렇습니다. (1) IT 대기업/중견기업들이 스타트업이 만든 서비스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스타트업이 오랫동안 해왔던 고민과 노하우를 인정해 주면서 적정 밸류로 인수를 하는 경향을 보이면, (2) 벤처투자자는 시장의 니즈를 잘 읽고 좋은 서비스를 낸 좋은 팀이라면 궁극적으로 IT대기업/중견기업이 인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훨씬 편하게 초기 기업에 투자할 수 있을 것이고, (3) 좋은 아이디어와 팀이 있으면 벤처투자를 상대적으로 쉽게 받을 수 있고, 또 잘 될 경우에는 괜찮은 밸류로 인수도 될 수 있는 것을 아는 대한민국 인재들이 스타트업을 창업하거나 조인하거나 하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실리콘밸리의 성공요인’에 대해서 이런 저런 것들이 많이 회자되는데 사실 IT 대기업/중견기업이 스타트업의 경험을 인정해주고 인수를 많이 하는 문화가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꼭 신문에 보도될 정도로 수천억 대의 금액으로 인수가 되는 것이 아니더라도, 실리콘밸리에는 USD 5M~20M (한화로 약 50억~200억원) 수준의 소규모 M&A가 참 많이 일어납니다. 일년에 수백개가 일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 벤처캐피탈협회에서 발간되는 벤처캐피탈의 회수 방법을 보면 아래와 같이 절대적으로 M&A가 많습니다.
그만큼 M&A가 활발하다는 것이고, 소규모 M&A에 참여하는 각 주체는 대체로 다음의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스타트업 창업가: 1) M&A를 통해 어쨋던 성공/엑시트의 경험이 있는 기업가가 될 수 있고 2) M&A로 인해서 적당한 부를 누릴 수 있고 (예를 들어 아이가 대학갈 때까지 먹고 살 수는 있는 정도?) 3) 내가 그렇게나 고민한 서비스를 큰 기업의 인프라를 활용해서 제대로 scalable하게 만들어보고 싶다 (참고로 최근에 구글에 자신의 회사를 매각한 CEO가 왜 그랬는지를 블로그에 쓴 것이 기사화되기도 했는데 한번 읽어볼만합니다)
- IT 대기업/중견기업: 1) 저 팀이 참 탐난다. 저 좋은 팀이 그 사업 분야에서 그간 쌓아온 경험/노하우는 대단한 것이다. 저 팀만큼 많은 고민을 한 사람은 없을테니 저 팀이 right person이다 2) 저 사업을 우리 내부에서 따라하면 얼마나 걸릴까? 그리고 우리가 만드는 기간 동안에 저 팀은 더 앞서겠지?
- 벤처캐피탈리스트: 1) 저 팀이 좋은 인프라를 가진 환경에서 일을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2) 우리는 원금+ 정도의 수익이 났으니 다행이다. 역시 좋은 팀에 투자하면 손해를 보지는 않는구나
반면 우리나라는? 벤처캐피탈협회에서 위와 같은 자료를 따로 공개하지는 않지만, 머니투데이가 보도한 벤처투자/회수 관련 기사에 따르면, 인수합병을 통한 회수가 2.2%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22%도 아니고 2.2%입니다. (금액 기준이기 때문에 비중은 더 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이해하면 오히려 M&A 밸류가 크기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겠죠)
그리고 사실 우리나라에서 큰 규모의 인터넷/모바일 기업의 M&A가 잘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NHN이 미투데이를 얼마에 인수하셨는지 아시는분? 전자공사에 따르면 22억 4천만원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업계 분들이 저한테 “미투데이도 겨우 22억에 인수되었는데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맞는 일이야?”라고 종종 하시는 것이죠. (그러고 보면 저희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열심히 초기기업 투자하니 무모하다고 볼 수도 있고)
결론적으로 시장의 주체자들이 미국과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 것 같습니다. M&A를 타부시하는 스타트업 창업가도 이유가 될 수 있고, 스타트업의 좋은 서비스는 그냥 그대로 베끼면 된다고 생각하는 IT 대기업/중견기업들도 이유가 될 것이고.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진정 우리나라의 벤처생태계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는 정부가 펀드를 결성해주고 각종 정책 자금을 대주는 것보다 합리적인 M&A가 많이 일어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도 그 날이 오겠죠?
글 : 임지훈
출처 : http://jimmyrim.tistory.com/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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