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킨들이 출시될 것 같다는 기사가 있었죠. 국내에서도 온오프 서점에서 몇 차례 전자책 리더를 출시했고 보급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나름 성과는 있었지만 그다지 가시적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마존의 킨들이 들어온다면, 막힌 물꼬를 틀것도 같습니다. 예상은 이런데요, 실제 어떻게 될지는 킨들이 출시되어야 알 수 있겠죠.
국내에 킨들이 출시된다면, 일단 온오프 서점들은 매우 곤란할 겁니다. 거대 유통 업체인 아마존과 직접적으로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죠. 이에 반해서 출판사 입장에서는 환영이겠죠. 기존 유통망에 새로운 유통망이 추가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킨들의 국내 진출 가능성 소식을 듣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킨들이 국내에 들어와서 국내 전자책 시장이 활성화된다면 국내 출판사는 어떻게 될까요? 출판시장의 규모는요? 사실 전자책이 들어오든 들어오지 않든, 평소에 책을 읽지 않는 분들은 책을 사지 않을 겁니다. 다만 전자책을 통해서 쉽게 책을 구매해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평소 책을 즐겨 읽는 사람들의 구매량은 늘어날 수 있겠죠.
하지만 전자책이 널리 보급되고, 기존 독서층의 독서율이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전자책을 읽은 사람들은 굳이 종이책을 사서 읽지 않겠죠. 반대로 종이책을 사서 읽는 사람들은 전자책을 사서 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종이책을 사는 사람 가운데 비용을 더 지불하는 사람에게 전자책을 제공해주는 마케팅도 있겠지만, 전자책 시장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종이책 시장이 줄어들 겁니다. 즉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일종의 카니발리제이션(cannibalization) 현상이 일어나는 셈입니다.
지금 당장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지만 최근에 출판사분들과 잠깐씩 이야기를 하다보면 (물론 IT서적관련 분야죠) 책 판매가 비수기와 겹친 탓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다양한 책이 빠르게 나오는 것도 있기에, 베스트셀러가 아닌 이상 출판 후 2~3개월이 지나면 독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점도 있습니다.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서 점점 위축받는 출판시장 속에서, 전자책이 출판된다면 종이 책은 어떻게 될까요?
어떤 출판사는 종이책을 출판하지 않는 곳도 있을 겁니다. 모든 책을 전자책으로 출판하는 것이죠. 하지만 독자로서 책을 읽다보면 전자책 리더가 아무리 좋아지더라도 종이책으로 읽고 싶은 책들이 있습니다. 전자책 시장 속에서 일종의 니치 마켓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데요. 이런 시장에 책을 공급하기 위해서 1번 인쇄할 때마다 1,000권이나 2,000권씩 만들어서 창고에 보관하는 기존 방법을 사용할 수 없을 겁니다. 즉 니치 마켓으로 남는 종이책 시장은 기존 방식으로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종이책 출판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그렇다면 종이책 출판 패러다임은 어떻게 바뀔까요? 아직 기술이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지만 오랫동안 기술을 쌓아온 프린팅 온 디맨드(POD, Printing On Demand)이 각광받을 것 같습니다. POD는 마치 자판기에서 책을 뽑듯이 출판한 책을 고르면 몇 분 안에 전자책을 종이책으로 만들어주는 서비스입니다. POD의 대표적인 사례로 Espresso Book Machine(EBM)이 있습니다. 링크된 동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반적인 출판 프로세스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책을 EBM으로 출판할 수 있습니다. 물론 페이퍼백만 출판 가능하지만, 이런 기술적 한계는 곧 극복되겠죠.
출판시장이 변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참 인류역사상 매우 중요한 순간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 덕분에 책은 새로운 세상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600년이 흘렀죠. 그동안 책을 만드는 기술은 많이 향상되었지만, 기본적으로 기술적 패러다임은 크게 바뀌지 않았죠. 수백년이 넘은 클래식한 기술이 눈앞에서 완전히 혁식되고 있습니다. 아찔하기도 하지만, 그런 변혁이 어디까지 진행될지 무척 궁금하네요.
글 : 신승환
출처 : http://www.talk-with-hani.com/archives/1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