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은 쉽게 멸망하지 않는다. 시황제가 제국의 기틀을 닦아놓고 그 철학을 후황제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실천하기 때문이다. 문제투성이 미국이 쉽게 망하지 않는 이유도 기존 패권도 있지만 이 점도 한몫한다. 천 년 제국이라는 로마가 그렇고 신라가 그렇다. 말하자면 제국이나 일국의 크기와 상관없이 집권 철학과 그 철학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었는가 핵심이다. 잡스가 없는 애플을 걱정하지만 그건 두고보면 알 것이다. 그가 자신에 의지한 혁신만 추구했는지 아니면 혁신의 DNA를 조직화하고 떠났는지 말이다.
국내 제조사들이 잡스가 없는 애플과 쉬운 싸움을 할거란 예측이 있다. 이건 오판이다. 물론 애플과 싸움 자체가 쉬울 수 있지만 애플은 게임룰을 바꿔버렸다. 이제 하드웨어 스펙으로 경쟁하는 시대는 끝났다. 물론 하드웨어도 중요하다. 단 포인트는 역량이 SW로 넘어 왔다는 것이다. SW전쟁 시대에 우리 제조사는 클라우드에 대비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했는지, 그리고 쓸만한 자체 OS가 없다는 것, 그렇다고 구글처럼 전체 SW생태계를 이끌 리더십도 모자른다는 것도 당면 과제다.
아이폰발 IT혁명이 촉발한 소프트웨어 위기론에 다들 걱정하면서, 우리는 하드웨어적 혁신이 없는 애플의 아이폰 4S를 보면서 한숨을 돌리는 모습을 연출했다. 외관을 포함한 하드웨어가 많이 변하지 않았지만 iOS5로 대표되는 데스크탑, 클라우드, 모바일을 통합하는 새로운 SW패러다임의 소프트웨어 혁명은 보지 못했다. 거기에 음성인성 기술을 통합하는 새로운 UI의 작동하는 제품까지 보여주었다. 소프트웨어 위기론에 걱정이 앞서는 사람들도, 실제로 눈앞에 펼쳐지는 소프트웨어 혁신에는 담담하다.
결국 난 이렇게 생각한다. 국내 제조사는 잡스가 없는 애플과의 싸움을 기획하기보다 내부의 SW 역량을 어떻게 키울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이다. 어제 넘쳐나는 애플에 대한 걱정 기사를 보면서 잘 나가는 남 걱정할 때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스가 그냥 떠났을리는 없고 적어도 3년짜리 마스터 플랜 같은 건 만들었을 것 같다.
글 : 신승환
출처 : http://www.talk-with-hani.com/archives/1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