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Real Steel에서는 ‘연습용’ 2세대 로봇 Atom이 ‘경기용’ 최신 로봇들에게 승리를 거두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그 장면들을 보면서 제가 공과대학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 한가지가 생각나더군요. 제가 공부한 기계항공공학 과정 중에 로봇을 직접 설계하여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수업이 있었는데 그 해에 주어진 과제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 경사면과 90도의 절벽이 있는 강철로 만들어진 구조물을 타고 올라가 절벽 위에서 멀리 떨어진 목표 지점에 공을 발사, 집어넣을 수 있는 로봇을 설계할 것
- 제한 시간 동안 가장 많은 공을 넣는 로봇이 승리
- 로봇을 설계하는 총 재료의 비용 및 동력원의 개수에는 제한이 있음 (전기 모터는 4개, 유압 실린더는 6개 이내 등등)
위 과제에 대한 ‘표준적인 해법’은 아래와 같았고 대부분의 팀들이 이를 조금씩 변형한 로봇을 설계했습니다.
- 모터로 동작하는 바퀴로 경사면을 올라감
- 진공 흡착판으로 90도 절벽에 붙어서 올라감
- 절벽 위에서 실린더를 이용해서 공을 발사
이런 개념대로 잘 만들어진 로봇은 1분에 2~3개의 공을 성공시켰습니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우승한 로봇은 몇 개나 넣었을까요? 제 기억으로는 1분 동안 무려 10개가 넘는 공을 넣었습니다. 이런 ‘압도적인 결과’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우승 팀은 표준적인 해결책을 거부하고, ‘강철 구조물을 올라가서 공을 많이 넣으면 된다’는 문제 자체에 집중해서 바퀴를 전자석으로 만들어 강철 구조물에 ‘붙어서’ 이동하는 로봇을 설계했습니다. 그 결과 로봇에 들어간 부품수가 최소화 되었고 결국 조종이 필요한 동작도 매우 간결해 졌습니다.
- 전류 버튼을 +로 해서 경사면과 절벽을 올라간 후 유압 실린더를을 작동시켜 공을 발사
- 전류 버튼을 –로 바꾸어 출발점으로 돌아와 새 공을 받아서 다시 위 과정을 반복
실린더는 오직 공을 발사 하는 기능에만 사용했을 뿐이죠.
다른 팀들이 각 장애물을 해결하기 위해 기능을 덕지덕지 붙일 때 그 팀은 문제 전체를 보고 그것을 가장 단순하고도 효율적인 해결책 – 최소한의 비용으로 설계되었고, 조종도 매우 쉬우며 점수까지 압도적인 최고의 로봇을 만들었습니다.
이 결과가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그 다음 수업부터는 ‘바퀴에 전자석을 사용할 수 없음’이라는 제약 조건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너무나도 좋은 해결책이 수업의 룰까지 바꾸어 버린 것이지요.
“기능을 덕지덕지 추가 해 봤자 70점짜리 설계가 100점이 되진 않는다. 오히려 60점, 50점으로 점점 더 나쁜 설계가 될 뿐이다. 가장 좋은 답은 가장 단순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너무 많이 이야기 되어서 자칫 식상하기까지 한 저 원칙을 저는 그 수업에서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세상에 커다란 선물을 주고 떠난 스티브 잡스가 남긴 명언 중에서 이와 비슷한 문장이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겠지요.
That’s been one of my mantras — focus and simplicity. Simple can be harder than complex: You have to work hard to get your thinking clean to make it simple. But it’s worth it in the end because once you get there, you can move mountains.
(Businessweek, May 25, 1998)
위와 같은 관점에서 다시 Real Steel의 Atom을 살펴보겠습니다.
Atom은 2세대 연습용 로봇으로서 ‘음성 또는 동작 인식으로 작동’하고 ‘스파링 목적을 위해 맷집이 강한 것’ 외에는 별 다른 전자 장비나 특수 기능이 없습니다. 그에 비해 Atom이 맞붙은 로봇들은 각종 전자 제어 장치, 니트로 펀치 같은 특수 기능으로 무장하고 있었지요.
아마 Atom이 데뷔하던 시점의 WRB의 로봇들의 화두는 최고의 로봇 엔지니어가 만든 한 단계 진보된 챔피언 Zeus를 이기기 위한 ‘더 좋은 전자 장비, 더 뛰어난 특수 기능’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로봇들은 Zeus에게 1라운드 내에 KO 당하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아마 Zeus의 강력한 펀치 한두 방에 정밀한 전자 제어 장치들이 고장 나서 제어 불능 상태가 된 후 이어지는 공격에 속절없이 당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Atom은 고장 날 것 자체가 적었습니다.
실제 영화에서도 음성 인식 장치가 고장 나니까 동작 인식으로 전환해서 Zeus와 싸우지요. 또한 Atom의 상대적으로 작은 몸집도 Zeus의 공격을 받아 넘기는데 큰 이점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막 판에 Zeus가 다운 당하는 것은 Atom의 공격에 의한 것이라기 보단 니트로 펀치까지 사용하고 나서 동력원이 거의 없어진 후 스스로 무너진 것이 가깝습니다. 그 동안 1라운드 이상 싸운 도전자가 없었으니 없었으니 Zeus 팀에서는 ‘동력 고갈’을 미처 염두에 두지 못했겠지요.
챔피언 Zeus를 이기는 방법은 ‘더 뛰어난 전자 장비와 특수 기능을 가진 설계’ 일 수도 있지만 ‘뛰어난 맷집으로 Zeus가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견딜 수 있는 내구성 위주의 단순한 설계’도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장 좋은 답은 가장 단순하게 것’이라는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이 원칙이 제가 공과대학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이며 Pristones의 문화에 실제로 녹아나도록 노력하고 있는 사고 방식입니다.
참, 만약에 Zeus와 Atom이 리벤지 매치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Atom이 별 변화 없이 동일한 전략으로 승부한다면 전 Zeus가 이전보다 좀 더 수월한 승리를 거둘 것이라 생각합니다. 로봇 엔지니어 ‘탁 마쉬도’는 비록 악역(?)처럼 나오긴 하지만, 리빈지 매치에서는 Zeus를 Atom의 스타일을 상대하는데 최적화 시킬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는 천재로 보입니다. 니트로 펀치 같은 기능을 빼고, 동력원을 확충한 후 Atom이 작동 불능이 될 때까지 때릴 수 있는 기본 펀치만 강화 한다면 Atom은 1라운드는 아닐지라도 경기가 끝나기 전에 KO 당하지 않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봅니다. 🙂
글 : 조민희
출처 : http://story.pristones.com/50124783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