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산업 트렌드] 음악 소비, 30~40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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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한국 음악 산업에 30~40대가 자취를 감췄다. 10대와 20대가 아니면 대중음악을 논하지 않는 묘한 시장이 형성돼온 것이다. 지갑에 만원짜리 몇 장씩은 챙겨다니는 이들 구매력 높은 연령층들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30~40대로 진입하면 당연히 음악을 듣지 않게 되는 걸까? 음악 산업을 고민하면서 좀체 풀리지 않았던 숙제이기도 했다. 잠시 여유가 난 김에 이들의 행적을 추적해보기로 했다.

그들의 행적을 추적하기에 앞서 미국 시장부터 들여다보자. 최근 콘텐츠진흥원이 작성한 자료(세계음악산업현황)에 따르면, 미국 음악 소비자들의 연령대는 45세 이상이 33.7%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0대의 비율이 약 18%정도로 나타나며, 20대가 18.4%, 30대가 18.7%, 40대 초반이 11.0%인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가 작성된 시점이 2010년인 관계로 대략 그 즈음한 통계인 것으로 짐작된다.

반면 한국은 어떨까? 엠넷미디어의 조동춘씨가 2008년 10월 발표한 자료 ‘국내 디지털 음악시장의 발전방향’을 보면 음악 소비가 가장 많은 연령층은 10대 47%, 20대 31%로 전체 소비의 78%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음악 소비에 한정된 수치로 보이지만, 10~20대 소비 의존도가 생각 이상으로 높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30~40대가, 한국은 10~20대가 음악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셈이다.

10대, 20대에 늘 듣던 음악을 30대, 40대가 되면 곧바로 끊어버리는 기현상이 한국 음악 소비시장의 특징이라고 감히 단정할 수 있을까? 왜 유독, 이런 현상이 한국에서 두드러지는 것일까? 구매력 높은 30~40대가 삶에 바빠 문화적 니즈를 포기하고 무미건조한 삶으로 일관하고 있는 탓일까?


2002년 미국과 한국 음반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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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어땠는지 알아보기 위해 CD 음반 산업이 꺾일 즈음인 2002년으로 되돌아가보자. 당시 한국음반산업협회가 발표한 ‘연령별 음반 수요 비율’을 보면 10대가 47%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20대가 31%, 30대가 16%로 78%를 10~20대가 차지하고 있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당시 보고서를 보면 “80년대 후반부터 10들이 국내 가요를 선호하면서 외국 가요시장은 위축되고 국내 가요 시장이 크게 성장했다”고 적고 있다. 이어 “10대 시장이 커짐에 따라 음반기획사가 자체 기획으로 10대들의 구미에 맞도록 비주얼 요소를 극대화시켜 ‘비디오형’ 가수들을 양산시키는 소위 국내 스타시스템이 정착됐다”고 부연한다.

이미 이 당시부터 30~40대 음악 소비자는 한국 음악 시장의 주류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반면 미국에선 30대 이상의 구매력이 주목받고 있던 시기. 음반 구매 연령층을 보면 34세 이하의 비중이 줄어드는 대신 35세 이상의 비중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표는 말해주고 있다. 심지어 34세 이하를 목표로 했던 음반, 머라이어 캐리의 2000년 앨범 ‘Glitter’는 천만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할 정도였다 하니, 한국과는 판이하게 다른 흐름을 보여주고 있었다고 짐작해볼 수 있겠다.

여기서 또 한가지 ‘?’가 등장하게 된다. 2002년 당시 10~20대의 연령 자연 증가를 방정식에 산입해보자. 약 10년이 지난 지금, 20대는 이미 30대로 훌쩍 성장했다. 그럼에도 30대는 음반 시장에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배제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쯤에서 다시 30대는 ‘음악과 절교 선언을 한 건가’라는 궁금증이 도출된다.


나가수의 시청자 연령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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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지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mbc의 ‘나가수’는 대단한 폭발력을 지닌 쇼프로그램이었다. 1박2일조차 긴장하게 할 정도였다. 비교적 높은 시청률를 구가하던 때, 나가수의 주 시청 연령대는 어떠했을까? 한 뉴스 사이트에서 공개한 자료가 있어 여기에 인용한다. 지난 6월 기준임을 이해해주시라.

당시 나가수의 시청자 구성비를 보면, 여성 40대가 14.6%로 가장 높았고 이어 여성 30대 12.5%,  남자 30대가 10.1%, 남성 40대 9.3% 순이었다. 다수가 30~40대에 분포돼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선호하는 뮤지션, 그들이 선호하는 음악 장르가 폭넓게 제시되면서 30~40대 음악 소비층이 시청률의 형태로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주목할 만한 현상이 한 가지 더 발견되고 있다. <미디어오늘> 의 金土日 (동네뮤지션, 449PROJECT)의 칼럼을 보자.


“예를 들면, 박정현 콘서트의 관람객 가운데 40대의 비중은 언제나 한자리 수를 밑돌았다. 하지만 <나가수> 출연 이후로 40대의 비중이 두 배 이상 상승하며 두자리수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 한 번의 경연을 끝으로 <나가수>를 떠난 김연우 역시 <나가수> 출연 이후 30~40대 티켓 구매 비율이 대폭 상승하였으며 윤도현의 경우에도 40대 티켓 파워가 거의  3분의 1 비중에 육박한다.”

40대가 음악 시장에 유입되면서 콘서트와 음반 시장이 활성화되는 재미난 결과가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음악 시장에서 잡히지도 않던 이들이 강력한 티켓 파워를 내뿜고 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의외로 적지 않다.

그 중 한 가지만 언급하자. 음악 소비 생태계의 순환고리의 재발견이다. 이들이 지갑을 열게 되는 프로세스를 들여다보면 ‘나가수’ 무료 시청 → 뮤지션에 대한 향수 발현, 열광 및 재열광 → 구 음반 및 콘서트 티켓 구매 → 신 음반 구매 의향. 다시 말해, 이들 구매력 높은 연령대를 음악 소비층으로 유인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그들을 타깃으로 한 접촉면의 증대가 제1 요소가 되고 있다는 걸 유념해야 한다.


음악 생태계 순환고리의 재발견

현재 30~40대는 SNS에서도 막강한 활동력을 보여주고 있다. 페이스북 주 연령대가 30~40대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들어 20대의 유입이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서 엇비슷한 비율을 보이고는 있지만, 30~40대의 참여와 콘텐츠 생산력은 분명 어느 연령대와 비교해도 왕성한 편이다. 뮤지션과의 접촉면을 넓히는데 있어 SNS는 무척이나 유용한 경로임을 떠올려볼 수 있다.

정리 단계로 들어가보겠다. 기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 음악 소비가 30~40대가 주도하고 있는 배경에는 다양한 장르와 혁신적인 매체의 등장이 자리를 잡고 있다. 반면 한국 음악산업은 디지털 음악 시장 중심으로 급격히 전환되면서 ‘아이돌’ 편중의 공급자 위주 시장으로 고착화되고 있는 구조를 띠고 있다. 

아이돌의 성공 원인으로 일부는 “기성 가수들과 달리 스트리밍과 ‘MP3’로 변화된 디지털 음악시장에 맞는 음악만을 내놓는다. 감미로운 노랫말보다는 중독성이 강한 후렴구를 앞세운 ‘후크송’과 비주얼이 강한 무대 매너로 단박에 가요 팬들을 사로잡았다”고 진단한다. 디지털 음악 흐름에 재빨리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상품군으로 아이돌을 공급해내고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과점화되고 있는 공급자 시장에서 강력한 구매력을 지닌 30~40대가 ‘존재감’을 발휘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이들이 음악 소비 시장으로 들어오지 않는 한 일본과 비교할 때 ‘새발의 피’ 수준에 불과한 한국 음악산업의 파이는 더이상 성장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30~40대 음악 소비, 존재하지 않았다?

그간의 과정을 보면 30~40대 음악 소비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라기보다 존재하나 발견되지 않았던 영역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공급과 수요의 mismatch는 디지털 음악의 시대에 좀체 교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크리스 앤더슨은 자신의 저서 ‘프리’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무엇보다 콘서트 비즈니스가 성장하고 있다. 팬층을 확대시키는 무료 음악의 능력이 이를 촉진시키고 있다. 음악 비즈니스에서 라이브쇼는 항상 수익성이 가장 높은 부문 가운데 하나였다.

matching을 위한 ‘후크’로서 ‘무료 음악’ 이를 통한 콘서트와 같은 2차 음악 산업을 성장시키는 새로운 비즈니스 경로를 열어나갈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페이스북에 글 을 남겨준 한 분(Oh YoeHan, 허락을 구하지 않았습니다)의 코멘트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대중음악의 역사와 비교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음악이란 곧 라이브 음악과 동의어였던 역사가 인류 역사의 대부분이었죠. 유명한 악사를 후원할 만한 재력을 갖춘이에게만 허가된 유흥이었을테고요.

변화1. 축음기가 나와서 실연 시점과 감상의 시점이 분리되었고, 음원의 복제가 가능해지면서, 비싼 돈을 들여 악사를 초대하지 않고도 레코드 판에 대한 가격만 지불하면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축음기 앞에 모여 파티 손님들과 함께 즐기는 방식으로, “대중음악”이 가능하게된 첫번째 원인.

변화2. 라디오의 발명으로 동시에 수많은 이들이 음악을 듣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청자들 사이의 공간적인 분리겠네요. 정서적 체험의 동기화랄까요. 공연 실황 뿐만 아니라 스포츠 경기 등의 생중계가 가능해졌습니다. “대중음악”이 가능하게 된 두번째 원인

변화1과 변화2가 초래한 산업구조는 꽤나 견고했지만, Freemium 경제에서는, 다시 인류의 primitive 한 음악으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시간적으로, 시/공간적으로 분리되었던 연주자와 청자, 그리고 청자와 청자 사이의 간격이 없어져서, 같은 시간, 한 공간에 모여 번복 불가한 일회적인 경험이라는 가치가 생겨나고, 이것에 기꺼이 기존의 음원 가격 이상을 지불하겠다는 충분한 시장이 형성되고 있지요.


글 : 몽양부활
출처 : http://blog.muzalive.com/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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