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 투자일을 하다보니 투자 과정이 남여가 연애하고 결혼하는 과정과 비슷함을 종종 느낀다. 그리고 실제로 업계에서 그런 비유적인 말도 많이들 하고.
그래서 간단하게 나마 나름 정리를 해 보기로 했다.
남여가 길거리 가다가 만날 수도 있고 각종 모임에서 만날수도 있는데, 흔한 형태중 하나가 누구의 소개로 만나는 것이다. 보통 ‘소개팅’ 이나 ‘맞선’ 이라고 부르는 것들 말이다. VC 투자에서도 많은 경우에 누구의 소개를 통해서 VC와 사업가가 만나게 된다. 소개시켜주는 사람은 다양한데 대부분 VC나 사업가의 인적 네트워크 내에서 이루어지는게 보통이다. 많은 수의 좋은 친구를 알면 좋은 남편감/신부감을 소개받을 가능성이 크듯이, 투자에서도 인적 네트워크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업계의 좋은 핵심 인물들을 많이 알아야 좋은 사람, 좋은 기회, 좋은 투자자를 소개받기 쉽다. 암튼 누군가의 도움으로 첫만남이 성사되는데, 장소는 사업가의 오피스에서 할수도 있고, VC의 오피스에서 할수도 있고, 맞선처럼 호텔 커피숍에서 할수도 있다.
어디서 만나든 1:1로 만나는 첫 미팅에서 중요한 것은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소개팅 자리에서 결혼 결심하기 어렵듯이, 어차피 첫 미팅에서 투자가 결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VC 입장에서는 사업의 내용과 사업하는 team에 “호감이 간다”는 느낌이 오는 것이 중요하다. 호감은 쉽게 생기진 않지만, 만나는 사람의 진정성과 해당 분야에 대한 내공이 큰 역할을 한다고 본다. 그 호감이 있으면 다음 미팅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한가지 중요한것이, 첫 미팅에서 모든걸 다 보여 줄 필요는 없다는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가끔 VC 와 첫만남에 폰트 싸이즈 10도 안되는 텍스트가 즐비한 50여장의 슬라이드를 들고 pitching 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별로 효율적이지 않다. 어차피 VC 들이 꼼꼼히 읽지도 않을 뿐더러 읽는다 하더라도 회사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기억에 잘 남기도 어렵다. 소개팅에서 자기가 초등학교때 반에서 몇등 했는지 까지 말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큰 줄거리만 잘 잡아서 전달하면 된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pitching만 하지 말고,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므로 “대화”가 이루어 질수 있게 하면 더욱 좋다. 대화가 잘 이루어지면 서로가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아까 말한 “호감”이 생길 가능성이 훨씬 높다.
2. 연애 – Due diligence
연애를 하는것이 꼭 상대를 “조사”해보고자 하는 건 아니지만, 서로를 알아간다는 입장에서는 due diligence와 비슷한 면이 있다. 이 과정은 서로에 대한 commitment는 없지만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암묵적인 rule을 지켜가면서 수행해야 한다. VC 는 NDA 같은 것에 잘 싸인을 안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VC가 회사 정보를 밖으로 빼돌리거나 하는 짓을 하지는 않는다(정상적인 VC인 경우). 마치 여자친구/남자친구를 사귀는 동안에 딴데가서 바람피는게 법적으론 문제 없지만 도덕적으로 지탄 받듯이. Due diligence 과정에서 좋은 결과를 위해서 서로가 최선을 다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투자가 성사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예상하지 못했던 이슈가 회사내에서 발견 될 수도 있고, 계속 사업가와 만나는 가운데 서로간의 fit이 아니다라고 결론이 날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때는 VC가 가지고 있는 fund에서 이슈가 생겨 투자를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연애랑 똑같다. 잘 되면 좋겠지만 결혼으로 골인 안될수도 있는 거다. 상대방에게서 예상하지 못했던 면을 발견할 수도 있고, “이사람과는 맞지 않는다” 라는 생각이 들수도 있는 거다. 어떤때는 상대방은 훌륭한 배우자 감이지만, 자신이 결혼할 준비가 안되있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미국인들이 연애하다 헤어질때 흔히쓰는 “It’s not you, it’s me” 라는 말이 생각나는 군요. ㅋㅋ) 그리고 fit에 대해 한마디 더하면, VC 에게서 돈만 바란다면 별로 권장할 fit이 아니다. 제대로된 VC라면 투자를 고려할때 앞으로 그 회사를 어떻게 도와줄까 하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어야 한다. 특히 early stage 투자라면 이런 VC의 value-add가 아주 중요하다. 거의 part-time 공동 창업자라고 할만큼. 연애할때 상대방이 우리집의 빠방한 재산에만 관심이 있다면 그사람이랑 결혼하고 싶겠는가?
3. 결혼 – Investment
모든 과정을 거쳐 투자 계약서에 싸인하게되면 이건 정말 결혼 증서에 도장찍는 거나 마찬가지다. 앞으로 이회사랑 5년에서 10년은 머리 맞대고 고민할 용기와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투자할때 사업가의 성향, 성격도 중요한 고려요소다. 대화가 안통하는 사업가에는 투자하지 않는게 정신건강에 좋다. 반대로 사업가 입장에서도 말 안통하는 투자자에선 좋은 조건이라도 투자 안받는게 좋다.) 결혼을 하면 허니문이 있듯이 투자가 closing 되면 사업가도, 투자가도 한동안은 즐겁다. 사업가는 당연히 사업에 필요한 자금이 유입되니 즐겁고, VC도 나름 고생하고 고민해서 투자 했으니 마음이 후련하고 새로운 출발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곧 현실은 금방 다가온다. ㅎㅎㅎ
4. 결혼 생활 – Post-investment activities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VC가 투자를 하고나면 일이 끝나는게 아니라 그때 부터 진짜 일이 시작된다고. 정말 value-add를 많이 해주는 투자자일수록 이말은 정말 맞는 말이다. 결혼을 하면 그때 부터 꾸려나가야 할 일이 어디 한두가지 인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집과 살림살이도 장만해야 하고, 아이도 낳아야 겠고, 부모님도 자주 찾아뵈야 겠는데 회사일은 이전보다 더 많아 졌고, 등등.
좋은 VC 일수록 company building 역할을 많이 해주는 걸 본다. 단순히 분기별 한번씩 이사회 미팅 참석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업가와 수시로 만나면서 끊임 없이 회사의 전략에 대해 고민하고, 좋은 인재 찾는것 도와주고, 비지니스 파트너 연결해 주고, 등등 도와줄려고 하면 할일은 정말 많다. 간혹 한국에서 사업하시는 분들가운데 투자자나 이사회 멤버가 경영지원 해주는 것을 “경영간섭”이라고 여기고 못마땅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배경은 이해가 된다. 국내에서 VC투자자의 역할 모델이 점차 성숙되어가면 그문제는 나아지리라고 본다. 암튼 결혼도 그렇듯이 VC 투자도 아주 long-term relationship이다. 좋은날, 흐린날, 비오는날, 천둥치는 날들을 같이 맞게 된다.
결혼을 좀 일찍한 관계로 결혼생활이 어느덧 13년도 넘었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동반자가 있다는게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모든이가 다 결혼을 해야 하는 건 아니듯이 사업도 외부 투자를 받지 않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 맞는 좋은 투자자가 곁에 있으면 그만큼 사업가의 마음이 든든해 지지 않을까? 감히 짐작해 본다. 그리고 그런 투자자가 되는 것이 내 꿈이다.
글 : 윤필구
출처 : http://bit.ly/znjvz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