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잡지 기자 생활을 시작했던 시절은 90년대 후반이었다. 팩스로 보도자료를 받고 거의 모든 업무는 회사에서 배정해 둔 자리에서 전화를 걸고 받았다. 전화를 돌려 받는 방법이 있는지도 몰랐다.
원고작성이 전자 타자기에서 PC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키보드로 날렵하게 원고를 쓰면 반드시 종이로 인쇄해서 편집장에게 보여줬다. 종이 원고에 꼼꼼하고 빼곡하게 적힌 빨간펜 자국을 보면서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PC로 수정을 했다. 취재를 나갔다 와도 원고 작성은 반드시 회사로 돌아와야 했고 그 시각이 남들 퇴근 시간 이후가 되거나 남들 자는 시간까지 책상 앞에 매달려 있어야 했다. ‘위치 사수’가 중요했다.
몇 년 후 외국계 회사로 옮겼다. 이 회사는 이상한 문화가 있었다. 사무실도 넓지도 않고 뚜벅뚜벅 열 걸음 정도면 바로 만날 수 있는 사람들끼리 메신저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한번은 침묵 속에서 키보드 자판 소리만 들리면 서로 메신저 하는 것만 같아서 벌떡 일어나서 ‘그냥 말로 해’라고 외치기도 했다.
몇 년이 지나고나니 기자들이 모두 노트북을 들고 다닌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만 회사에 나가서 회의를 한다. 형식적이지만 우리 동료가 누구인지 정도를 확인하는 절차랄까. 멀리 있어도 원고는 메일과 전자 송고 시스템으로 모이고 정리되고 편집된다. 기자들은 취재처에서 제공한 공간인 기자실이나 커피숍이나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글을 쓰고 전화를 받고 원고를 작성해 보낸다. 바로 옆자리든 멀리 있든 필요한 내용이 있으면 메일, 메신저, 휴대폰 SMS, 스마트폰 메신저 등을 활용해 즉시 묻고 답한다. 요즘은 서로 SNS를 통해 쪽지를 주고 받고 서로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생각에 빠져 있는지 파악하기도 한다.2012년 트렌드라는 스마트워크. 사실 별거 아니다. 필요에 따라 좀 더 실시간으로 반응할 수 있는 수단만 갖춰져 있으면 이제 한 곳에 머물러서 회사 업무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이것을 원격 근무, 재택 근무라는 말을 붙였다. 10여 년 전에는 지금은 1인 창조기업이라 부르는 개인 기업, 소자본 창업가들을 소호(SOHO : Small Office Home Office)라고 부르기도 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요즘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부터 이런 원격 근무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집에서 일하는 불편함과 커뮤니케이션의 불일치로 인한 업무 비효율성을 제거하기 위해 스마트워크 센터라는 업무용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 스마트워크 센터는 원격 근무자들이 각종 통신 수단 및 업무 기자재를 갖춰놓고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공간적 개념이 추가돼 있다.
2011년 초 정부는 ‘2011년 스마트워크 활성화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오는 2015년까지 전국적으로 총 50개의 스마트워크 센터를 짓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공공기관과 공기업들의 지방 이전으로 인한 인재 유출을 막고 출퇴근 장거리화로 인한 교통비용을 감소시키겠다는 부수적인 효과를 노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무직 860만 명이 스마트워크에 동참한다면 탄소배출량이 연간 111만톤 감소하고 1조 6000억원의 교통비용이 절감된다는 추정치도 내놓고 있다.
부수적인 효과로는 자녀 육아 문제로 퇴직하는 여성의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특히 근무자들이 출퇴근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도심지 업무지역 근처의 주거지 집값이 안정화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갖게 된다.
물론 스마트워크 정착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기업문화와 조직 문화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출퇴근 시간으로 업무 시간을 채우는 식의 업무 측정 방식에서 성과와 목표를 위주로 마감까지는 참고 기다려줄 수 있는 조직 문화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조직원들 스스로 스마트 워크가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휴식 시간을 일이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휴식과 일은 어차피 하나라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이제 ‘위치 사수’가 일 잘하는 사람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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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스마트워크(Smartwork)라는 조어가 거의 확정적인데요. 미국에서는 Flexible Workspace, 즉 유동적인 사무공간의 의미로 많이 쓰인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HomeOffice의 개념과는 좀 달라야 하니까요.
근데 또 이게 사무 공간의 의미로 쓰이다가 이건 일 하는 방식이 바뀐 것이므로 스타일이 붙어서 Flexible Workstyle 이란 용어가 공식 용어로 정착되고 있다고 하니 해외 자료를 찾으실 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지인 분이 이런 용어의 새로운 출몰과 변신에 대해 “아이티 분야의 바벨탑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 같다”고 평해주셨는데요. ^^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조어(말 만들기) 능력은 저희들이 살아 있을 때까지는 여전히 사람의 영역일 거 같아요. 기계가 서로 소통해서 새로운 개념들을 창조하는 문화를 만들어 내기 전까지 말이죠.
글 : 그만
출처 : http://ringblog.net/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