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운스퀘어를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어느 경영 컨설팅 회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회사에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하면 향후 여러 가지 세제지원이 있으니 도와주겠다는 것이었다. 도와주겠다고 하니 일단 만나기로 했다.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하면 여러 가지 이점들이 있다. 연구 및 개발 인력비용에 대한 세액 공제, 연구 개발 설비 투자 세액 공제, 기업부설연구소용 부동산에 대한 지방세 면제, 무엇보다 병역특례 기업 지정 가점도 있다. 이 중 세제 지원 혜택은 회사가 수익을 내는 시점에서 납부해야 할 법인세 중 일정 금액을 공제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절세에 큰 도움이 된다.
좋은 혜택이 있는 제도이니 아무 회사에나 부설연구소 설립을 허가하는 것은 아니다. 규정에 맞는 연구전담인원이 있어야 하고, 연구 개발활동을 수행하는 연구공간이 별도로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회사는 이미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벤처기업으로 지정받아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인적 요건은 충족하고 있었다. 다만 사무실은 연구 개발 활동을 위해 독립된 공간을 두고 있지는 않았다. 하는 일 자체가 연구 개발이었으니 사실 별도의 공간이라는 게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따라서 연구소를 별도 공간으로 분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고, 일부러 공간을 나누어 룸을 만든다는 것도 어려운 상태였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컨설팅 회사의 컨설턴트 두 분이 회사에 방문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소소한 이야기를 하다가 부설 연구소에 대한 주제로 들어갔다. 그들은 현 상태에서 부설 연구소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앉아있는 회의실에 책상과 컴퓨터를 잠시 옮겨서 사진을 찍은 후 관계 기관에 신고를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서류는 자신들이 만들어 줄 것이니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비용은 착수 계약금과 종료금을 합해 기백만원이라고 했다). 그런데 생각컨데 조금 이상했다.
‘실제 연구소가 아닌 회의실에서 사진만 찍어서 부설 연구소 승인을 받는다?’
‘적합한 방법이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대답했다.“저희가 아직 매출을 올리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서 급하게 편법으로 승인을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자 컨설턴트들은 이렇게 말했다.“편법 아닙니다. 다들 그렇게 합니다. 그렇게 해도 전혀 문제가 없어요. 어차피 사장님네 회사에서 하는 일이 연구, 개발하는 것이잖아요? 다들 그렇게 합니다.”
“아니… 다들 그렇게 한다고 편법이 아닌건 아니잖아요.”
사실, 잘 모르겠다. 실제로 하는 일로만 보면 부설연구소를 설립해도 무방한 상황인데, 스스로 지나친(?) 형식 논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잠시 사진만 찍은 후 원상복구 시킨 다음, 부설연구소 승인을 받는다는 것은 ‘편법’이 아닌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금 이런 이야기는 회사 경영에 있어 언제든지 생길 수 있는 일상적인 일이다. 때때로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데하는 생각을 가지면서 의사결정하는 경우들이 생기기도 한다.
영업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항상 거래 상대방에게 뒷돈(리베이트)을 제공해야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는 경우가 아무리 없어졌다고 해도 간혹 생기기 마련이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좋다. 이런 것은 그렇게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가 문제이지 뒷돈 거래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은 명확히 알고 있다.
그러면 이런 일들은 어떤가? 거래 상대방에게 접대를 해야할 때가 있다. 가볍게 식사 한번하는 접대가 있고, 때로는 늦은 시각까지 술판을 벌여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어느 선까지가 괜찮은 것일까? 공공 기관 입찰에 참여한다. 사전 작업을 모두 해 놓았기 때문에 낙찰될 확률이 높다. 그런데 공개 입찰을 해야한단다. 들러리 업체를 세워서 입찰에 참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들러리 업체를 세우게되면 제안서는 대신 작성해 주어야 한다. 올바른 일인가? 아닌가?
초보 경영자 중에는 아니, 오랫동안 경영을 해 왔던 경영자도 회사 돈과 내 돈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경우 법인 신용카드를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곤 한다. 어떤 경우는 본인이 급할 때 회사 돈을 찾아 쓰고 경리 직원에게 알아서 정리해 놓으라고 하는 경영자도 있다. 회사 돈과 개인 돈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다. 그러면서 이렇게 합리화를 한다.
“내가 제대로 월급도 안 받고 일하고 있는데, 이 정도는 괜찮아.”
“어차피 내 회산데 모…”
일반적으로 회사는 ‘주식회사’다. 주식회사의 주인은 경영자 혼자가 아니라, 주식회사를 이루고 있는 주주들이다. 본인이 100% 지분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주식회사는 법인이고, 경영자는 개인이다. 회사 돈을 개인 용도로 사용하려면 급여, 보너스를 받거나 배당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앞으로 스타트업 경영자도 회사를 경영하다보면 여러가지 일을 맞닥트리게 될 것이다. 그 중에는 윤리적 의사결정이 필요한 경우들이 종종있다. 그런 경우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할 지 한번 생각해 보자. 물론 개별 사항은 맞닥트린 다음에 생각해도 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어떤 포지셔닝을 취할 것인가는 생각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적정한 수준에서 타협을 보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좋은 게 좋은 것이고, 나 혼자 깨끗한 척 하다가 회사가 망하면 말짱 도루묵이니 말이다. 솔직히 이런 결정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이런 부분에서 완벽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면 이 결과에 대한 책임은 기꺼이 질 각오를 해야한다. 이 중 당장 현행법을 위반하여 누군가로부터 고소, 고발 당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내용을 알고 있는 동료나 직원이 있다고 했을 때 무덤까지 비밀로 가져갈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서로 사이가 틀어진 순간, 이런 내용들이 비수가 되어 본인에게 다시 날아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 당장은 넘어갈 수 있겠지만 결코 죽을 때까지 묻어갈 수는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인터넷 어느 게시판에 그런 내용이 올라올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죽어도 원칙을 고수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정말 스타트업다운 패기의 결정이다.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이런 결정을 통해 장기적으로 임직원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고,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는 있지만 먹고 살기 힘들어 질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이것을 타파하는 방법은 특별히 없다. 더 열심히 뛰고 더 열심히 노력해서 실력으로 극복하는 방법밖에 없다. 경쟁 입찰에 참여했는데, A사가 아무리 로비를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더 월등한 품질의 상품을 가지고 있는 우리 회사가 선택되도록 하는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장기적으로 회사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고, 함께하는 구성들간의 결속력도 강화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회사를 해 나가다보면 윤리적 의사결정의 원칙이 필요한 경우가 많이 생긴다. 남들이 다 한다고, 지금까지 그래왔다고 해서가 아니라 한번 더 생각하고 자신의 원칙을 세우고 지켜나갈 필요가 있다.
글 : 조성주
출처 : http://biz20.tistory.com/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