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넷북을 위한 운영체제는 여럿 있었습니다. 초기 넷북 시장에서는 윈도 XP가 대부분이었고 지난 해 말 윈도 7이 출시된
뒤로 지금 대부분의 넷북에 윈도 7 스타터 버전이 깔리고 있지요. 윈도 계열은 확실히 넷북의 대중화와 함께 쓰이면서 여전히 인기
운영체제로 자리를 잡았지만, 리눅스 계열은 그렇지 못합니다. 마니아나 몇몇 실험가들만이 넷북용 우분투나 졸리 클라우드 같은
넷북용으로 최적화된 운영체제를 깔아볼 뿐 대부분은 이에 관심을 두지 않지요.
그런데 주목할만한 넷북용 리눅스 운영체제가 드디어 공개됐습니다. 인텔과 노키아가 지난 1월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에서
함께 개발을 약속한 미고(Meego)의 넷북용 버전이 얼마 전 공개된 것입니다. 미고는 모바일과 PC, 가전, 자동차를 통합하는
운영체제면서 플랫폼으로서 기능하므로 넷북용 미고 1.0의 발표는 미고 플랫폼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습니다.
아직 모바일
버전을 비롯한 다른 하드웨어 플랫폼에 대한 소식은 없어 이번 공개가 반쪽으로 평가될 수도 있지만, 윈도 7 스타터를 빼고 쓸만한
운영체제가 없는 넷북 시장에서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넷북용 리눅스 운영체제인 모블린을 통해서 경험을 쌓은 인텔이
만든 운영체제 미고는 어떤 모습일까요?
이용자 배려 부족한 설치 과정
넷북용 미고는 지금 미고 웹사이트(http://www.meego.com)
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800MB의 IMG 파일을 다운로드한 뒤 DVD에 구워서 드라이브에 넣고 광학 드라이브로 부팅하도록
선택하면 미고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라이브 CD 옵션을 고르면 꼭 넷북에 설치하지 않아도 미고 운영체제를 맛볼 수 있습니다.
하드디스크보다 느린 광학 드라이브에서 읽는 탓에 기능하나 수행하기 쉽진 않지만, 넷북에 설치하지 않아도 되므로 구경 삼아 볼
분들은 라이브 CD 옵션으로 보기를 권합니다.
넷
북에 설치하는 과정은 어렵지 않습니다. 운영체제 언어 선택에 한국어도 포함되어 있어 전 과정을 한글로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설치 디스크를 고르는 옵션에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리눅스 식의 디스크 표기를 그대로 넣었더군요. 리눅스를 쓰는
사람을 위한 운영체제가 아닌 보편적인 운영체제로 쓰이길 바란다면, 미고 개발자들은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치
마법사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파티션을 나눌 때 파티션을 나누지 못하고 창도 닫지 못하는 버그를 봤는데, 다음 버전에서는
이에 대한 해결책도 내놓길 바랍니다.
결국 이전 윈도를 쓰던 파티션에서 따로 파티션을 할당하지 못해 하드디스크를 포맷하고 설치를 끝냈습니다. 인텔 아톰
N270(1.6GHz) 기반에 1GB 램, 80GB 하드디스크의 1세대 넷북에 설치한 미고의 부팅 시간은 20여 초(바이오스
이후). 생각보다 시작시간은 빠르더군요. 미고 로고가 보인 뒤 메인 화면이 뜨기까지 오래 걸렸다는 생각은 안듭니다. 무선 랜은
잡지 못해 일단은 유선 랜으로 인터넷에 연결했습니다.
빠른 동작, 쉬운 UI, 멀티태스킹도 무리 없어
미고는 부팅 화면을 거쳐 메인 UI에 들어가면 종전 운영체제와 많이 다른 느낌을 가집니다. 그런데 어색한 게 아니라 제법 친근합니다. 화려하지 않은 로고가 지나간 뒤에 뜬 메인 UI에 난데없이 귀여운 캐릭터가 여기저기 나타나 있기 때문인
데요. 이 캐릭터들은 미고 홈페이지에 등장했던 녀석들이지만, 운영체제 안에서 보니 의외로 더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더구나
단색이긴 하지만 유치하지 않게 잘 쓴 것 같습니다. 애니메이션이 되지 않는데, 다음 버전에서는 상황에 따라 이 캐릭터들이 바탕
화면을 돌아다니면서 말이라도 했으면 싶더군요
미고의 메인 UI는 비교적 쉽게 되어 있습니다. 미고를 시작하면 기본적으로 오늘의 약속과 업무, 이용자가 바로 실행할 수 응용
프로그램, 가장 최근에 열었던 미디어 등을 다시 열 수 있는 마이 존(My zone)이 뜹니다. 넷북을 업무용으로 쓰는 이를
위해 약속과 업무 항목을 마이 존에 빼놓았는데, 이용자가 인터넷 일정 관리 서비스를 쓰고 있다면 싱크를 통해 이곳에 표시할
수 있더군요. 애석하게도 이번 버전에서 구글 이용자의 연락처 정보만 가져오고, 구글 캘린더 데이터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블루투스가 되는 스마트폰을 통한 동기화도 되는데, 아마 미고 플랫폼의 스마트폰과 가장 연동이 잘 되지 않을까 예상되는
부분입니다.
상단에는 각각 다른 기능을 가진 탭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마이 존, 영역, 응용 프로그램, 상태, 사람들, 인터넷, 미디어, 장치, 블루투스, 네트워크
등으로 나뉘어 있는데, 한글화가 매끄럽지는 않더군요. 영역은 지금 실행 중인 프로그램을 보여주는 일종의 작업 관리자와 같고,
‘사람들’은 여러 인터넷 메시징 서비스에 접속해 있는 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따로 분류를 둔 것입니다. 페이스북,
MSN, 구글 토크 등 거의 대부분의 인터넷 메시징 서비스의 대화 상대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상태는 트위터와
같은 웹서비스의 상태를 바로 보여주는 기능을 하는데, 지금은 작동하지 않더군요.
각각의 탭을 옮겨 다니면서 기능이나 응용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전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일단 상단 탭은
위쪽으로 접히는데, 지금 프로그램을 실행한 상태에서 마우스로 상단을 누르면 해당 탭이 떠 다른 기능을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
있더군요. 작업 표시줄이 없으니 전체 화면으로 실행한 응용 프로그램이 좀더 커보이는 효과도 있습니다. 실행 중인 다른
프로그램으로 전환은 alt+tab으로도 되고 영역이나 프로그램 전환할 때 실행중인 프로그램의 상태를 미리 보기 형태로
알려줍니다.
여러 응용 프로그램을 실행한 상태에서 각각의 프로그램을 다뤄보니 느린 넷북인데도 무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이
더군요. 음악을 들으면서 3D 게임을 즐기고, 3D 응용 프로그램을 실행해도 어느 쪽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작업 전환이 늦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작업 관리 능력은 크게 뒤쳐져 보이진 않았습니다. 인터넷 브라우저는 구글 크롬인데, 윈도에서 쓰는 크롬
브라우저와 크게 다른 점은 없지만, 속도는 더 빠른 것 같았습니다.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만, 윈도 7+크롬 보다는 눈에 띄게
빨라진 느낌을 주더군요.
응용 프로그램은 부족하고 한글화 아쉬워
미고의 UI나 작업 관리 능력은 의외로 좋은 데, 역시 미고에서 수행할 수 있는 응용 프로그램이 적습니다. 게임, 교육,
미디어, 보조 프로그램, 시스템 도구, 오피스, 인터넷 등으로 응용 프로그램 항목이 나뉘어 있지만, 각 항목 안에 들어 있는
프로그램이 많지 않더군요. 미고 개러지(Garage)를 통해 응용 프로그램을 수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데, 지금 등록된
것도 얼마 없는 데다 압축을 푸는 과정에 에러가 있어 설치할 만한 게 별로 없습니다. 이는 미고를 쓰는 더 많은 하드웨어가
나오고 인텔 앱센터-인텔이 만든 앱스토어-가 결합되어야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UI의 한글 구현은 그럭저럭 괜찮은 데 브라우저에서 일부 한글이 깨집니다. 현지화 작업은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이고요. 넷북에
물리는 외부 장치의 드라이버가 어느 정도나 준비되어 있는지 지금은 확인해보기 어려웠는데 넷북에 있는 무선 랜도 잡지 못하는
것으로 보니 아직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한 듯 보입니다.
늦었지만 그래도 잘 나왔다
미고가 지금 쓰는 윈도와 다른 점은 제법 친근하게 다가서려고 노력한 점과 인터넷 서비스를 결합한 형태의 운영체제라는 점일
겁니다. 설치 때는 알기 힘든 용어 때문에 조금 불편하긴 했어도 윈도 뿐만 아니라 리눅스 계열 운영체제에서 보기 힘든 색상과
캐릭터, 아이콘을 쓴 점이나 UI의 편의성 덕분에 새로운 운영체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용자들의 마음을 조금은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물론 곳곳에 통일되지 않은 UI나 매끄럽지 못한 용어나 문구 등은 이후 버전에서 좀더 수정해야겠지요.
또한 일정, 연락처, 업무와 더불어 사람들이나 트위터 등 인터넷 서비스와 연동해서 쓰도록 만든 점은 넷북의 본질을 잘 살린
부분입니다. 단순히 인터넷 브라우저로 인터넷을 쓰는 게 아니라 인터넷 서비스를 바로 연결함으로써 인터넷용 노트북이라는 넷북을
좀더 편하고 쓸모 있는 것으로 탈바꿈시켰으니까요. 이용자가 쓰는 인터넷 서비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 등을 넣어야 할 것이
많아졌지만, 결과적으로 넷북을 넷북답게 쓰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 지 인텔이 몸소 보여준 셈입니다.
넷북 시장이 성장하면서 대부분은 윈도 계열의 운영체제가 그 시장을 가져갔지만, 정작 넷북을 넷북처럼 쓰게 하는 부분은 윈도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 문제점을 개선한 미고가 이제서야 모습을 드러낸 게 아쉽지만, 그래도 더 늦게 나오지 않아 다행인지도 모릅니다. 넷북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 테고, 미고 역시 넷북 뿐만 아니라 인터넷과 결합되는 모든 인텔 계열 또는 ARM 계열 컴퓨팅 장치에 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후속 버전을 지켜보면서 모바일과 TV를 비롯한 가전, 자동차용 미고와 이번에 공개된
넷북 미고가 만났을 때 전체 컴퓨팅 생태계의 판도를 변화시킬지 조심스럽게 관망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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