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8일, 한국에서 섬머인턴을 하다가 맞이한 생일날, HP의 충격적인 뉴스를 들었다. 세계 1위 PC 판매업체인 HP가 PC 비즈니스를 접겠다고 한 것이다. 17일까지 $31.39였던 HP 주가는 18일 6%, 19일 20%가 떨어지더니 $23.60까지 곤두박질 쳐버렸다.
그 후 한 달여 지난 9월 21일 HP는 결국 PC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Léo Apotheker를 내보내고 Meg Whitman을 신임사장으로 임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P의 주가는 20달러 초반에서 놀다가, 10월 27일 PC 비즈니스를 접지 않겠다고 발표한다. 그 후 주가는 20달러 후반까지 올라 뭔가 회복하는 기미를 보이더니 2012년 2사분기의 예상 실적이 안 좋을 것이라는 발표가 난 후 곤두박질쳐서 3월 22일에는 $23.03까지 떨어진다. 그런데 어제(2012년 3월 23일) 주가가 다시 올라갈 만한 내부 문건이 하나 유출되었다. 바로 HP가 프린터사업부(IPG)와 PC사업부(PSG)를 통합한다는 조직변경에 관련된 문서였다. 주가는 23일 2.61% 오르고 마감했다. (HP 내부 문서 전문: 클릭)
IPG + PSG = PPS
IPG는 Imaging and Printing Group, PSG는 Personal Systems Group으로 독자적인 법인과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 이 두 그룹이 합쳐지면서 PPS, 즉 Printing and Personal Systems Group으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IPG는 매출 약 $25B에 수익(operating profit before tax)이 $4B의 비즈니스였고, PSG는 매출 약 $40B에 수익이 약 $2B의 비즈니스였으니, 이제 PPS는 매출 $65B에 수익 $6B의 거대한 조직이 되었다. 비중으로 따지면 HP 매출의 50%, 수익의 40%를 차지하는 최대 조직이 탄생한 것이다.
Now, as one team, we can accelerate our path to profitable growth while we deliver the best experience to more people. – 내부 문서 중
HP가 이러한 통합으로 인해 기대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비용 절감이고 다른 하나는 고객 만족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비용 절감은 중복된 업무를 없애고 업무 프로세스의 효율화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고, 고객 만족도 제고는 고객으로 하여금 프린터를 사건 PC를 사건 HP에 single point of contact를 두어 편리성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결국 공통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는 정리해고이다. 그렇다면 몇 명이나 피를 흘리게 될까?
HP는 2005년 원래 하나였던 PSG와 IPG의 분리를 발표하고 2006년부터 꾸준히 직원 수를 늘려왔다. 이에 따라 매출도 늘게 되는데, 만약 분리 전의 수준으로 돌아간다면 현재 350,000명인 직원이 150,000명 정도로 줄어든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비즈니스 자체가 커졌으니 조금 더 보태서 200,000명 정도는 유지한다고 보면, 최대 150,000명까지 정리해고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니, Hoovers에서 참조한 임직원수 추이 정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설마설마 이 정도로 자를까? 최근 소프트웨어 기업 인수에 델을 상대로 과잉경쟁을 계속 해오던 HP는 2006년 말 $16B까지 끌어올렸던 캐시보유액이 2011년 말 그 반인 $8B까지 떨어졌으며, 이는 최근 10년 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만약 150,000명이 정리해고 되고 이들의 평균 연봉 및 기타비용이 인당 6천 만원이라면, HP가 이번 정리해고로 2013년부터 챙길 수 있는 추가적인 캐시는 $8B이다. 그냥 우연일까?
Who will be laid off?
아마 지금쯤 HP 직원들은 모두 불안에 떨고 있을 것이다. IPG와 PSG는 거의 모든 조직이 duplicate되어 있을 것이고 나 아니면 쟤가 잘리는 상황이 될 것이 뻔하다. Performance가 좋았던 직원은 재빨리 스폰서를 찾아 조직 변경 planning에 참여하려 할 것이고, performance가 애매했던 사람들은 조용히 하던 일을 더 열심히 하면서 눈치를 살피거나 대놓고 정치적인 행동을 할 것이다. Performance가 좋지 않았던 사람들은 자기들이 잘릴 것이라고 확신하며 조직에 대해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면서 이직준비를 할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performance와 상관없이 PSG 사람들이 많이 남고 IPG 사람들이 많이 떠날 것이라 예상되는데 그 이유는 최근 PSG의 성적은 향상되고 있는 반면 IPG는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5/6년 두 조직 통합 이후 IPG의 매출은 PSG에 비해 크게 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최근 3년 PSG의 수익률이 좋아지고 있는 반면에 IPG는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향후 HP에서 Win8을 탑재한 Smartphone과 태블릿을 출시한다면 이 제품들은 모두 PSG의 경험을 필요로 할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통합된 새로운 조직의 7명의 리더십 중 6명이 모두 PSG 출신으로 임명되었으니 이 역시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정말 피바다가 되는 방법 밖에 없을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위에 언급한 규모의 피바다는 연출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대규모의 인원감축은 다음과 같은 리스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순식간에 조직 문화를 부정적으로 바꿀 위험이 있는데 로열티가 떨어지고 정치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 필요한 인력의 유출현상을 야기할 수 있는데 이들을 손벌리고 반겨줄 곳은 바로 경쟁사로서 고객까지 잃게 될 것이다.
반면에 신임사장 Margaret Cushing “Meg” Whitman은 HP에 조인하기 전 직원 수 30명의 eBay를 10년간 이끌어 15,000명 조직으로 키우고 회사를 상장시킨 “성장”의 과정과 희열을 경험한 사람이다. 이 사람이라면 사람을 대거 자르기에 앞서 그 사람들로 어떻게 회사를 더 키울 수 있을지 고민할 것이하는 생각이 든다. 이에 걸맞게 그녀는 HP의 CEO가 된 후 두 가지 선언을 하는데 하나는 R&D에 다시 focus하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가 PSG를 버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 아우르고 더 키우겠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기분 탓일까? 그리고 그녀의 사진을 보면 피를 부를 인상은 아닌 것 같은데, 이것도… 기분 탓일까?
Worst Case Scenario
Meg Whitman의 인상 이야기를 한 김에 하나 더 하자면 그렇게 카리즈마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얼마나 강력하게 자기 의지를 밀어붙일 수 있을지 의심이 되기도 한다. 그녀의 경력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불안한 구석이 있기도 하다.
- Walt Disney(당시 매출 $15B)에서 전략기획팀 VP였던 그녀는 40세가 되었을 때 뜬금없이 Florists’ Transworld Delivery라는 매출 $500M인 비교적 작은 회사의 CEO가 된다.
- 그런데 1년 좀 넘어서 Hasbro의 한 division GM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 다시 1년이 채 안되서 직원 수 30명의 eBay로 옮긴다.
생각해 볼 수 있는 worst case scenario는 다음과 같다.
- 2012년 PPS 출범 및 100,000명 이상 감축
- 기존 IPG와 PSG 인력 간의 conflict가 매니지되지 않아 비즈니스 급격히 하락
- Whitman은 미래 성장 동력에 대한 방향성 제시 못하고 허리띠를 졸라메는 데에만 치중
- Cash 보유액이 늘지 않아 델에게 핵심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인수 비딩에서 모두 짐
- 이사회에서 Whitman 해고
- 신임 HP 회장, PSG 분리 및 매각 선언
- HP 주가 폭락
이러한 worst case scenario를 방지하는 것은 Whitman의 손에 달려 있다. 그녀가 얼굴 인상이나 경력과 달리 뚜렷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정말 강력한 추직력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HP는 순식간에 갈 수도 있다. 주가는 이미 떨어질 만큼 떨어졌고 HP의 고객은 HP 제품을 사도 되나..하는 고민을 하기 시작한지 오래다. Internal Use Only 메모가 순식간에 유출될 만큼 직원들의 moral도 실추되었으며, 많은 직원들이 lay-off의 공포로 인해 이번 주말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녀가 최대한 빨리 뜬구름 잡는 얘기가 아닌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을 발표하길 기대해 본다.
첨언…
델에서 일할 때 거의 매 분기 크고 작은 조직 개편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HP와 마찬가지로 새롭지도 않은 조직을 떼었다 붙였다 했던게 다였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속옷과 양말을 한 서랍에 같이 놓을 것이냐, 아니면 양말은 첫째 서랍에 넣고 속옷은 둘째 서랍에 넣겠느냐의 문제와는 전혀 다르다. 직원들은 불안해 하고, 리더십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며, 업무의 영속성은 떨어지고, 기회주의자들이 판치게 되고, 또 기회주의자들에게 들러붙는 사람들이 생기고, 각종 루머가 떠돌면서 모랄은 바닥을 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잦아지면 직원들과 주주들은 내성이 생겨서 변화로 인해 기대했던 시너지라던지 주가의 상승은 나타나지 않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많은 회사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크고 작은 조직 변경을 하는 이유는 1. 조직 변경 외에는 다른 것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2. 새로운 리더십이 짧은 시간 내에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3. 조직이 불필요하게 비대해져서 4. 먼저 있던 리더십의 결정을 그냥 뒤집어 엎기 위해서 5. 컨설팅 업체에서 하라고 해서.. 정도가 아닌가 한다.
정말 전략이 바뀌고 그 전략을 이행하기 위해서 조직을 바꾸는 것이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있던 조직을 뒤흔드는 것은 항상 거의 마지막 방법으로 생각해야 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조직은 최대한 덜 바꾸되 조직 내에서 resource의 이동은 flexible하게 만드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게 내 생각이다.
글 : Terry
출처 : http://mbablogger.net/?p=3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