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스타터(Kickstarter)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졌지만, 자금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방식으로 소비자들을 제작 전부터 참여시켜 시드 머니(seed money)를 마련해 주는 사업 모델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만들 엄두를 낼 만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고, 대다수의 사람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제 만들어 낼 생각은 못하죠. 아이디어와 실행은 전혀 다른 얘기인데, 후자는 경험과 의지가 없는 일반인들에겐 너무 높은 장벽으로 인식되기 때문이죠. 쿼키(Quirky)는 그 틈새를 노린 서비스입니다. 쿼키는 소셜 상품 개발[Social Product Development] 플랫폼이라는 독특한 방식의 사업 모델로 아이디어 상품 제작/판매를 하는 곳입니다. 벌써 2009년에 설립된 회사이니, 이 글도 엄청 뒷북이겠네요. 하지만 요즘 쿼키 브랜드로 참신한 아이디어 상품들이 제법 눈에 자주 띕니다. 이런 좋은 제품이 참신한 프로세스로 생산된다니 관심을 안 둘 수 없겠죠?
The Quirky Process
그럼 소셜 상품 개발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나면, 다른 회원들이 맘에 드는 아이디어에 투표하는데, 이런 커뮤니티 큐레이션(Community Curation) 과정을 거쳐 채택된 아이디어 중 상품화가 가능한 것들을 선별합니다. 이렇게 최종 선별된 아이디어는 쿼키 내부의 전문가들이 구현 연구/디자인/브랜딩/엔지니어링/생산/판매 등 모든 단계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해당 상품의 판매가 시작되면,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상품이 팔릴 때마다 영원히 로열티를 받습니다. (와!)
그런데 아이디어를 등록하는 데에는 $10의 등록비가 있습니다. 사이트의 설명을 따르면, 아이디어가 성공했을 경우는 제품 생산까지의 비용에 대한 분담금이며 실패했을 경우는 아이디어에 대한 소셜 시장 조사 비용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식의 설명이긴 하지만, 쿼키의 운영 비용을 고려하자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 아이디어를 너무 막 던져대는 걸 걸러주는 필터 역할도 할 수도 있을 것 같으니 꽤 합리적인 프로세스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것도 처음엔 $99였다가 낮춰졌다고 하네요. (이런 필터링 장치는 곳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디어에 대한 투표권도 인당 하루 15건으로 제한됩니다.)
이렇게 등록된 아이디어를 선별하는 커뮤니티 큐레이션 과정은 단순히 투표만 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등록된 아이디어에 대해 개선점을 제안할 수도 있고, 제품 연구 프로젝트 등에 조력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참여들은 쿼키 내부 프로세스와 재량에 따라 영향[Influence] 점수를 얻게 됩니다. 이 점수를 갖게 된 조력자들도 해당 상품의 발명가로서 수익 배분의 대상이 됩니다.
수익 배분 비율은 쿼키 사이트 직접 판매는 30%, 외부 판매망일 경우는 10%로 책정되어 있습니다. (외부 판매망은 아마존(Amazon), 타겟(Target), 토이자러스(Toys”r”us) 등 미국 대형 유통망과 제휴 되어 있습니다.) 이중 대략 35% 정도가 오리지널 아이디어 제안자에게 돌아가고 나머지는 위의 조력자들에게 분배되는 구조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최초에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라면, 대략 쿼키 직접 판매액의 10~12%, 외부 유통망 판매액의 3~4% 정도를 로열티로 받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판매/개발 중인 아이디어 상품의 사례
자, 모델이 아무리 좋다고 사업이 그냥 되는 것은 아니죠. 판매되는 상품이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면 다 소용없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나오는 상품들 정말 물건입니다. 몇 가지 예를 보죠.
스페이스 바(Space Bar)는 아이맥 받침 액세서리입니다. 아이맥의 무선 키보드와 USB 포트 위치에 대한 불편한 점을 아는 사람이라면 정말 필요한 아이템이죠. 마이클 커바다(Michael Cavada) 씨와 727명 이상의 회원들이 발명가로 되어 있는데, 마이클 씨의 영향도는 44%입니다. 소매가 $80에 현재까지 1만 3천 대 팔리고 배당 수익은 $39,256(약 4450만 원)입니다.
피벗 파워(Pivot Power)는 두꺼운 전원을 끼우기 어려운 파워 탭이 자유자재로 굴곡이 되게 하여 쉽게 끼울 수 있게 만든 제품입니다. 제이크 진(Jake Zien) 씨와 885명 이상이 발명가로 되어 있고, 주 발명가인 제이크 씨의 영향도는 38%입니다. 소매가 $30에 24만 대 팔려 배당 수익은 현재 $276,500(약 3억여 원)입니다. 아직 출시 전인 제품의 예도 한 번 보시죠. 프랍스(Props)는 현재 출시 전인 생산 단계에 있는 상품입니다. 이어폰을 잠시 빼고 있을 때, 선을 들고 있든지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는데, 이 제품을 목에 두르고 이어폰을 걸어 두면 됩니다. 이 아이디어의 최초 제안자인 킴 럼버거(Kim Rumberger) 씨가 올린 자작품과 비교를 해보시죠. 최초 제안된 이름은 ‘버디즈(Budeez)’였고 재질도 달랐지만, 쿼티 회원들의 의견과 내부 연구를 통해 ‘프랍스(Props)’로서 새롭게 상용 제품으로 생산 중입니다.빠른 프로세스로 카피캣 따돌리기
그럼 이렇게 제안되어 생산된 제품에 대한 지적재산권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일까요? 쿼키에 제안되는 아이디어에 대한 지적재산권의 소유권은 모두 쿼키에게 양도됩니다. 이 부분은 일견 제안자로선 협상의 여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단 최초 아이디어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추가적인 아이디어가 더해지는 것이고, 많은 케이스의 법률적 협상을 하는 것이 비효율적일 수 있으므로 소유권을 일원화하고 수익 배분을 공식화하는 쿼키의 방식이 합리적으로 생각됩니다. 아이디어를 낸 입장에서도 가이드라인이 없는 협상보다는 규정을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판단하면 되므로 복잡하지 않고 깔끔하죠.
일단 제품 생산에 채택된 아이디어는 쿼키에서 특허를 추진합니다. 물론 특허에 대한 발명자는 최초 제안자를 포함, 회원 조력자들과 쿼키 스태프 등 개발에 공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등재합니다. 쿼키가 공개된 프로세스로 진행되기 때문에, 혹 다른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훔쳐갈 염려가 될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 쿼키 측은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 쿼키의 이용 약관상, 쿼키 내부의 컨텐트를 외부에서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고,
- 쿼키에 올라오는 아이디어들은 너무 개념적인 상태라 제품화를 위해서는 심도 있는 설계와 개발이 필요하며,
- 잠재적 모방자로부터 개척자로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제품의 아이디어에서부터 공급까지 아주 빠르게 진행하기 때문이랍니다.
실제 위의 상용화된 두 상품 예를 보더라도, 제품 개발 기간이 불과 1개월 이내였다는 점은 정말 놀랍습니다.
24세 청년 기업가, 벤 코프먼
이쯤 되면 이런 굉장한 서비스를 만든 사람이 궁금해지죠? 놀랍게도 쿼키의 설립자이자 CEO는 올해 24세밖에 안 된 청년 기업가, 벤 코프먼(Ben Kaufman)입니다. 벤은 이미 고등학교 때인 2005년에 모피(Mophie)라는 아이팟 액세서리 회사를 설립하여, 2006년 맥월드에서 ‘베스트 인 쇼’ 상을 받을 정도로 성공적으로 브랜드를 키웠고, 2007년에 회사를 매각했던 인물입니다. (네, 그 모피가 현재 아이폰용 배터리 액세서리인 ‘주스 팩(Juice Pack)’을 만드는 그 모피 맞습니다.)
이후 소셜 상품 개발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오다가 2009년에 쿼키를 설립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23.3M의 펀딩을 받았으며, 작년부터는 선댄스(Sundance) 채널에서 회사명과 동명인 “쿼키”라는 리얼리티 쇼까지 시작했더군요. 동영상을 보니, 쇼맨십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 프로덕션의 시대
쿼키는 스스로를 소셜 상품 개발 플랫폼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제품을 ‘소셜 개발 제품(The Socially Developed Product)’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요즘엔 ‘소셜’이라는 단어가 소셜 커머스에서 기만을 당한 경험 때문에 거부감도 있고, 너무 모호하게 과용되는 경향이 있어 느낌이 잘 안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쿼키의 프로세스를 보면, 충분히 ‘소셜’하고도 남습니다. 그런데 이 사업의 핵심은 ‘크라우드소싱’ 프로덕션 모델이라는 데 있습니다. 킥스타터가 크라우드 펀딩으로 돈을 모아주는 방식의 크라우드소싱 프로덕션 모델을 만들어 내고 있지만, 쿼키는 아이디어를 크라우드소싱하여 제품화하는 모델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지요.
과거에는 프로덕션 프로세스의 모든 리소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일부 재능을 갈고닦은 사람들과 기업가 정신이 투철한 남다른 사람들의 수고를 거쳐야 가능한 일이었죠. 하지만 세상은 점점 바뀌고 있습니다. 프로덕션의 툴이 쉬워지고 비용도 저렴해져서, 일반인들의 접근 장벽이 한껏 낮아졌습니다. 거기에 프로덕션에 필요한 재능과 리소스를 제법 쉽게 소싱할 수 있는 개방된 시장도 이렇게 열리고 있습니다.
마치 유튜브가 모든 사람을 비디오 제작자로 만들었듯이, 이런 크라우드소싱 프로덕션 플랫폼들이 모든 사람을 발명가와 개발자로 만들어 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유튜브의 평균 품질이 그렇고 그렇듯, 크라우드소싱 제품들의 품질도 보장할 순 없겠지요. 하지만 바로 그 크라우드(crowd)가 자연스럽게 걸러줄 것이고, 게 중에는 스타도 만들어 줄 겁니다. 그런 게 바로 인터넷 시대의 진정한 시장의 탄생이 아닐까요?
글 : 게몽
출처 : http://digxtal.com/?p=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