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날을 맞아 지난 2년 반 동안 느낀 한국사회에 대한 단상을 적어보고자 한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노동력
지난 1992년 리우 지구 정상회의를 통해 탄생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개념은 그 이후 환경운동에 있어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지속가능성은 환경운동을 넘어 사회적 기업, IT 생태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이 개념은 농업경제에서 차용된 것으로 새롭게 자라나는 것 보다 많은 양이 소비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1997년부터 7년 간 연립정부에 참여한 독일 녹색당에 대한 감성적 지지 때문인지 몰라도 독일 생활을 통해 내 몸에 벤 것은 적게 소비하는 습관이다. 가능하다면 흐르는 물에 설거지를 하지 않는 습관이 생겼고, 운전을 무척 좋아하지만 가능하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음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애쓰고, 오래 사용하기 위해 자주 청소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데 독일에선 녹색당만이 ‘지속가능성’을 외치는 것이 아니다.
건설산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매우 낮은 독일경제에서는 낡은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은 금지에 가까운 수준으로 제한되고 있다. 이미 1960년대 보수당인 독일 기민당(CDU)은 부동산을 10년 이내 팔고 사는 거래행위를 통해 생기는 시세차익 대부분을 세금으로 환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지대를 낮게 유지시키고 이를 통해 인금을 안정시켜 파업 등 노사갈등의 원인을 줄여 자본주의를 보다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지속가능한 자본주의 발전모델’의 원조는 보수 독일 기민당에서 비롯되었다. 기민당은 부동산 세금정책을 심지어 주식 거래에도 적용하여 주식을 1년 내로 사고팔 경우 발생하는 시세차익 대부분을 세금으로 환수하고 있다. 투자는 하되 투기는 하지말라는 정책의도였다. 이 1년이 과하다며 그 기간을 6개월로 줄인 것은 1997년 집권한 독일 사민당(SPD)이다. 집세 걱정 없는 사회, 전세값 및 집값 동향과 관련된 뉴스를 읽지 않아도 되는 사회, 부동산과 주식을 통한 한탕주의가 없는 사회, 바로 지속가능성의 출발이다. 노동하는 한 개인에게 천문학적 액수인 수도권 아파트 시세. 이를 위해 대다수는 새롭게 생겨나는 노동력보다 야근, 주말근무 등을 통해 사라지는 노동력의 규모가 큰 삶을 살아가고 있다. 대다수가 화전민처럼 부동산과 자녀 교육비를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불 태우며 살아간다.
노동력 뿐 아니라 양심도 불 태우고 있어
이념을 떠나, 지지하는 정당을 떠나 최소한의 양심으로 판단할 때 잘못된 것은 우리 주변에 수 없이 많다. 타인의 재산을 강탈하는 행위, 성희롱을 강한 남자의 덕목으로 생각하는 마쵸 근성 등등. 개인 양심에는 다양한 사회환경에서 살아가다 보면 사라지는 부분도 있고 새롭게 성장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 균형이 깨지게 되면 양심도 지속가능성을 상실하게 된다.
대학에는 특수 대학원과 각종 고위자 과정이 넘처난다. 제한된 강의제원에서는 자연스럽게 학부강의는 부차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영어강의 비율에 따라 교과부의 대학지원예산규모가 비례하자 각 대학에는 모순덩어리 영어강의가 확산되었다. 이렇게 몰락하는 대학교육을 질타하는 대학 교직원의 성명서를 볼 수 없었다.
대다수 언론사의 뉴스사이트를 보자. 성인광고로 둔갑한 비뇨기과광고가 넘쳐난다. 기사 내용 및 수준과 상관없이 한국 저널리즘 전체가 황색 저널리즘으로 변한지 오래다. 이에 괴로워하며 기자직을 계속할지 말지를 술자리에서라도 고민하는 기자를 난 아직 만나지 못했다.
지난 설 명절. 컨설팅하고 있는 모 회사의 정규직 직원에게는 작지 않은 액수의 상품권이 명절선물로 전달되었다. 대다수 비정규직원은 그들에게만 주어진 화장품 세트를 들고 퇴근하며 “내가 비정규직이야”라는 명찰을 달았다. 이에 가슴 아파하며 상품권을 반납하고 화장품 세트를 들고 퇴근한 정규직 직원이 과연 있었을까. 참고로 이 기업의 노조는 민주노총 산하다.
에너지 경제만 지속가능해야하는 것이 아니다. 재충전 기회를 잃고 내일의 노동을 두려워하는 사회, 괴로워하는 양심마저 마음에서 자라나지 않는 영혼. 화전민처럼 불 태워버린 노동과 양심. 2012년 노동절을 맞은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글: 강정수
출처 : http://www.berlinlog.com/?p=1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