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노트, 그리고 창업자 필 리빈(Phil Libin)의 이야기

지난 5월 3일, 에버노트가 $70M(약 77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는 소식을 발표했다. 이번에 투자를 통해 새로 책정된 회사 가치가 무려 $1B (1.1조원)이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의 회사 가치가 $1B인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에버노트의 가치는 저평가된 것처럼 느껴진다. ‘내 삶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 애플리케이션‘ 리스트 중 첫 번째가 에버노트였다.

에버노트는 아주 간단하게 말해서 노트 정리를 위한 소프트웨어이다. 노트 정리를 도와주는 소프트웨어는 셀 수 없이 많이 있고, 간단하게는 메모장이나 워드를 써도 되지만, 에버노트는 스마트폰과 동기화가 된다는 점, 그리고 손으로 노트를 쓴 후 사진 찍어서 올리면 인식이 되어 검색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보이스 메모도 쉽게 남길 수 있다는 점 등 노트 정리를 위해 가장 필요한 기능들로만 최적화되어 만들어져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사용자 수가 무려 2500만명이며, 그 중 100만명은 유료 버전을 사용하고 있다.

영어권 국가에서 큰 성공을 거둔 후, 아시아 나라 중에서는 일본에 먼저 진출했고,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진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얼마 전 밸리인사이드에 에린의 인터뷰를 기고했던 백산(Twitter: @sanbaek) 씨는 이번 여름에 에버노트에서 인턴십을 하기로 되어 있다. 하게 될 일 중 하나가 한국 시장을 위한 전략 수립이라고 한다. 한편, WSJ의 오늘자 (5월 6일) 기사에 따르면, 에버노트 전체 사용자 중 중국인이 4%인데, 곧 중국에 서버를 설치해서 중국 시장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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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노트 실행 화면. 이렇게 손으로 글을 쓴 다음에 폰으로 사진을 찍어 올리면 검색이 된다. 즉, "remember" 또는 "everything"으로 검색하면 이 메모가 나온다.
에버노트 본사가 집에서 약 5분 거리에 있어 퇴근할 때 종종 보게 된다. 1층에 있는 사무실인데 한쪽 벽 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사무실 내부가 환하게 보인다. 지나갈 때마다, 내가 매일 즐겨쓰는 이 제품을 만든 회사가 바로 그 곳에 있다는 생각에 반가운 마음이 든다. 한편으로는 정말 유용하게 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에버노트에 돈은 하나도 내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도 든다. 에버노트 무료제품은 월간 메모량 제한이 60MB인데, 나는 주로 텍스트 위주로만 쓰고 있어서 아무리 써도 60MB를 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0년 겨울,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던 때에 와인 몇 병을 사 들고 무작정 찾아간 적이 있다. 가서 문 앞의 한 직원에게 “저는 에버노트를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는데 돈을 하나도 내지 않고 있어요. 미안한 생각이 들어 와인으로 보답하려고 합니다.” 라고 말했더니 활짝 웃으며 마침 사무실에 있던 VP(임원)들을 불러 소개해 주었다. 여러 사람들로부터 명함을 받았는데 Alex라는 이름이 유난히 많길래 특이해서 물어보니, 러시아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다고 했다. 알렉산더의 이름을 딴 Alex는 러시아에서 아주 흔하게 찾을 수 있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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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틴 뷰 에버노트 본사 (출처: BusinessInsider.com)
창업자이자 CEO인 Phil Libin은 ’100년 가는 기업’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가 작년 10월 12일에 스탠포드대에서 “평생을 바쳐서 하는 일에 엑싯 전략은 없습니다 (No Exit Strategy for Your Life’s Work)“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팟캐스트로 두 번이나 너무 재미있게 들었기에 여기에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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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노트 창업자 & CEO, 필 리빈 (Phil Libin)

어린 시절: 러시아에서 태어나 8살 때 미국으로 이민하다

제가 살면서 무엇을 달성하고 싶었는지, 그리고 왜 창업가가 되는 것이 그것을 달성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는지 오늘 설명해 보겠습니다.

다섯 살 때였어요. 제가 아직 러시아에 살던 때였죠.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갔는데, 그 곳이 너무 좋아서 돌아오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집에 안 가겠다고 했더니, 여행이 끝났다고 하는거에요. 어머니가 다시 말했어요.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단다.” 그래서 다시 물어봤죠. “이 세상도 끝이 날까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언젠가는.”이라고 대답했어요. 그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어요. 언젠가 세상의 끝이 올 것이라는 생각 말이에요.

8살 때 그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했다.

고등학교 때는, 완전 너드(nerd: 뭔가에 심취해서 주변 친구들과 잘 못 어울리는 사람)였어요. 심지어 체스 팀도 저랑 놀아주지 않았죠 (웃음). 컴퓨터 클럽 친구들은 상대를 해주더군요. 그 때 다양한 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리고 계속 생각했죠. ‘세상의 종말은 무엇으로 인해 올까? 바이러스? 은하계의 파괴?’

우리가 무엇을 하든, 세상은 종말이 올 것임을 알고 나자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혜성에 의해 멸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인류가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 스스로 종말을 가져오는 길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햇어요. 그래서, 기술을 이용한다면 종말을 조금 미룰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자.’ 이것은 충분히 큰 꿈이었어요. 다만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실천하는 것이 불가능했죠. (웃음) 계속 너드(nerd)로 지냈어요. 대학 졸업하고 나서 직업을 찾았고, ATG라는 회사에 취직했어요. 이 회사가 얼마 전에 오라클에 인수되었더군요. 그 회사는 정말 끝내주는 곳이었어요. 똑똑한 사람들이 가득했죠. 솔직히, 그 전까지는 제가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 회사에서 저는 평균 이하였고, 처음엔 싫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즐거워지더군요. 배울 것이 너무 많았으니까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앞으로 항상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한 환경에서 지내자. 그래야 내가 성장할 수 있다.‘

그 원칙을 항상 실천해왔어요.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요. 지금 제가 스탠포드에서 여러분 앞에 서 있잖아요? 저는 스탠포드에 떨어졌어요, 그러니 따지고 보면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은 저보다 똑똑한 거죠.

창업: 세상의 무지함을 줄이기 위해 회사를 시작하다.

그리고 그는 친구 네 명과 함께 회사를 시작했다. 이름은 ‘엔진 5′. 사업에 대해서도 몰랐고 투자가 뭔지도 몰랐다. 뭔가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 때쯤 제 꿈이 구체화되었어요. 즉, 제 꿈은 ‘세상에 존재하는 무지함을 줄여 보자 (Reduce stupidity from the world)‘는 것이었습니다. 두 명은 중간에 떠났는데, 지금 분명 크게 후회하고 있을 겁니다.

회사를 만드는 아이디어는 한 가지였다. ‘No Assholes (멍청이들이 없는 곳)’. 즉, 이 세상의 바보들이 줄어들도록 하자는 것. 회사 안에서도, 그리고 밖에서도.

노키아로부터 프로젝트를 맡았어요. 노키아가 비녯(Vignette)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스토리지 서버(storage server)를 이용했는데, 우리의 역할은 그 서버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10억원이 넘는 비싼 장비였어요. 근데 쓸모가 없었죠. 비싸기만 하고 하는 일은 전혀 없는 서버였는데 노키아에서 그 제품을 산 거에요. 노키아 CEO가 그 쪽 회사 사람들과 골프를 쳤다나 뭐라나.”

교훈: 원하는 것을 정확히 이야기하자 (Be direct about what you want)

어쨌든, 어렵게 프로젝트를 끝냈다. 그리고 나서 동료가 말했다. “Vignette에 이메일을 한 통 보내면 어때? 우리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서 이게 이제 작동을 하게 만들었는데, 그들의 제품은 정말 꼬졌다고.”

처음엔 웃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런 말을 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편지를 써서 보냈어요. 물론 좀 완곡한 표현을 써서요.

그로부터 3주 후, 필은 Vignette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들은 필의 회사를 사고 싶다고 제안했다. 당시 12명짜리 회사를 $25.7M(약 280억원)에 사겠다는 조건이었다. 그들은 모두 부자가 되었다.

그들도 알고 있었던 거에요. 상품이 꽝이라는 것을. 그래도 잘 팔리니 품질 개선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겠지요.

두 번째 창업: 보안 회사, 그리고 실리콘 밸리로 이사

회사를 매각하고 나서, 동료들과 함께 새로운 회사를 만들었다.

보안 소프트웨어 회사였는데, 별로 재미가 없었어요. 우리는 분명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별로 흥미가 없는 (don’t get excited) 거에요. 생각해보세요.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시나리오는, 아무 보안 사고가 나지 않자 고객이 찾아와서 돈을 쓸데 없이 낭비했다고 후회하는 것이죠.

소비자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것.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하면 흥분되는(excited) 그런 것. 그리고 나서 캘리포니아로 이사했다. 실리콘 밸리 안에 있기 위해서.

동료인 앤드류에게 물었어요. 사람들이 정말 좋아할만한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다고 했더니 중국식 아침식사(Chinese Breakfast) 사업이냐고 묻더군요.

에버노트(Evernote)를 만들자. 우리 중 그 누구도 현재 존재하는 노트 정리 소프트웨어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어. 우리가 아이디어를 정말 잘 구현한다면, 뭔가 의미있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야.

엑싯 전략 없음 (No Exit Strategy)

그렇게 해서 에버노트가 탄생했다.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더 잘 정리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덜 무지해지도록. 그로 인해 인류의 멸망이 늦춰지도록.

자기 자신을 위한 제품을 만들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도 유용하게 쓸 수 있다면 흥분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왜 엑싯을 하겠는가? 100년짜리 회사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저는 제 인생의 꿈을 좇고 있습니다. 훨씬 재미있지요. 당신이 회사를 팔고 싶어 한다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이지요. 그 회사와 사랑에 빠져 있지 않다는 것이니까요. 이제는 누가 우리 회사를 사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대신에, 우리가 어떤 회사를 사야 할 것인가를 이야기해보기로 했어요.

그리고 그들은 Skitch라는 회사를 찾아냈다. 맥에서 아주 간편하게 화면을 캡쳐하고 그 위에 설명을 단 후 사람들과 쉽게 공유할 수 있게 하는 툴인데, 정말 잘 만들었다. 내가 아주 자주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이기도 하다.

창업가가 되고 싶다고요?

창업가가 되고 싶다구요? 저는 사실 창업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목표는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었어요. 단순히 창업가가 되는 것이 목적이면 안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라구요? 그럼 당신은 계산을 잘못 하고 있는 겁니다. 회사의 95%는 망합니다. 은행가(banker)나 좋은 회사의 엔지니어가 되는 편이 기대값으로 따지면 더 많은 돈을 법니다. 힘을 가지고 싶어서라구요? 즉, 조직도에서 가장 위에 있기 위해서요? 웃기는거죠 (That’s ridiculous). 사장은 사실 제일 밑바닥에 있는 사람이에요. 미디어, 직원들, 투자자, 고객 모두가 보스가 됩니다. 그러면, 좀 더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고 싶어서라구요? 9시부터 5시까지 회사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 것이 싫어서요? 예, 창업을 하게 되면 당신이 시간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즉, 하루 24시간동안 일을 하게 됩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이 당신의 목표라면, 창업을 하십시오. 지금보다 더 좋은 때는 없습니다. 지금은 기크(Geek: 수학, 과학, 컴퓨터 공학 등을 전공한 사람을 놀려서 표현하는 말)들이 돈을 버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앱스토어 덕분에 예전과는 달리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에 당신 시간의 95%를 할애할 수 있습니다. 정말 멋진 앱을 만들어 올리면, 내일 바로 전 세계 사람들이 당신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됩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는 전 세계 어디에나 있습니다. 인프라스트럭쳐도 잘 되어 있고, 많은 오픈 소스를 이용해서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제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우주의 역사를 통틀어 지금이 가장 창업하기 좋은 때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 참고

글 : 조성문
출처 : http://valleyinside.com/ever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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