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를 필두로 최근의 다음TV까지 스마트TV에 대한 마케팅이 날로 고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스마트TV의 핵심적인 가치인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실적은 미미합니다. 핵심이 잘 안된다면, 스마트TV 장사는 가망이 없겠지요. 이쯤 되면 더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TV에서 과연 능동적인 소비가 가능한 것일까요? 그게 아니라면, 스마트TV의 가치는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그런 게 정말 있기는 한 것일까요?
자, 여담으로 먼저 이야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TV는 왜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봐야 하는가?
우선 가족 공용 스크린으로서의 TV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적정 스크린 사이즈, 해상도에 대해’라는 지난 포스트에서 가정 내 TV의 적정 스크린 사이즈와 해상도를 대략 산출해 본 바 있습니다. (이 여담은 그러니까, 그 글의 부록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보통 30~40평대의 아파트를 기준으로 시청거리가 3m 정도, 시야각을 30도라고 가정했을 경우, 적정 스크린 사이즈는 70인치입니다. 해상도를 두고 따지더라도, Full HD(1080p) 영상 품질을 3m 거리에서 HD(720p) 품질과 구별되도록 ‘인지’하려면, 최소 50인치에서 최대 76인치의 스크린이 필요합니다. 최고의 영상 품질에 이 정도 스크린을 장만하는 것은 당장 경제적인 문제를 일으킵니다. 현재 40~50인치 정도가 TV의 주력 상품인 것은, 그런 경제적 문제에 대한 타협이죠. 그래서 지난번 결론은, 그런 일반적 사이즈의 TV를 3m 정도에서 보는 환경이라면 HD급 해상도면 충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시청거리가 3m보다 가깝다면 스크린 사이즈는 더 작아도 됩니다. 하지만 3m 시청거리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TV는 퍼스널 스크린이 아니죠. 가족 공용 스크린이기 때문에 여러 명이 동시에 시청하는 환경을 가정해야 합니다. 이 경우, 모든 시청자가 어느 정도의 시청 품질을 보장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합니다. 특히 정중앙에서 비켜난 곳에서 TV를 바라보게 되는 시청자의 환경이 관건입니다. 바로 아래 그림 같은 경우입니다.
스크린에 직각으로 보고 있는 상황이 아닌, 조금 빗겨난 지점에서 사선으로 시청하는 환경을 가정해 봅시다. 스크린 수평 길이를 W, 정중앙 위치까지의 시청거리를 D, 정중앙에서 조금 빗겨난 지점까지의 거리를 Ds라고 합시다. 그럼 중앙에서 Ds만큼 떨어진 곳의 시청자는 스크린을 100% 완전한 상으로 볼 수가 없겠지요. 사선으로 보기 때문에 수평으로 줄어든 화면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줄어든 수평 길이를 W’이라고 하고, 스크린을 시선 방향으로 기울여 W’의 왜곡된 가상 스크린까지의 새로운 시청 거리를 D’이라고 합시다. 위 그림에서 표현한 간단한 기하학 공식을 적용하면-이라고 적었지만, 실은 몇십 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꼬박 한나절이 걸렸음- D’과 W’은 다음과 같이 정의됩니다. (각 a, c는 위 그림을 참조하십시오.)D’ = Ds / cos(a) – ( W/2) * cos(a)
W’ = (W/2) * sin(a) + D’ * tan(c)
원래의 수평 스크린 길이 대비 왜곡된 가상 스크린 길이 비율(W’/W)을 수평 왜곡률이라고 해봅시다. (왜곡률이라 하면 오해의 소지가 좀 있으나, 마땅히 부를 이름이 없어 일단 그렇게 불러봅니다.) 이 수평 왜곡률이 얼마 이상이 되어야 하는지는 지극히 주관적입니다만, 한번 그래프를 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Ds를 얼마로 할 것인가에 대한 가정이 필요하겠죠. 대략 3인용 소파의 폭 길이가 2~2.5m입니다. 3명이 편안한 자세로 자리를 나눠 앉았다고 했을 때, 가장자리에 앉은 사람은 중앙으로부터 대략 1m 정도 떨어져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Ds = 1m로 설정하고 시청 거리(D)에 따른 수평 왜곡률(W’/W)을 계산하여 그래프를 그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요즘 잘나가는 TV 모델이 40~50인치이므로 스크린의 크기는 50인치(W = 1.11m)라고 합시다. 그럼 딱 3m 되는 지점의 왜곡률이 90%입니다. 즉, 이 지점에서 1m 정도 비켜난 곳에서 TV를 바라보면 수평 기준 90% 줄어든 상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굳이 90% 지점을 기준으로 삼느냐의 근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지점 부근을 전후로 곡선의 성격이 크게 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m 이상에서는 왜곡률이 개선은 되지만 거의 변화가 없는 완만한 곡선을 보이지만, 3m 이하로 가면 왜곡률이 급속히 악화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물론 스크린 크기가 달라지면 결과도 조금 차이는 있습니다만, 일반적인 TV 사이즈 범위 내에서는 그 차이가 미미합니다. PC 정도의 스크린 크기가 되면 차이가 좀 있습니다. 이 경우라면 2명 정도가 모니터를 보고 있다고 상정하고 Ds를 50cm 정도라고 해봅시다. 15인치(W = 0.33m) 모니터를 가정하면 왜곡률 90% 지점이 약 1.3m 정도 됩니다. 하지만 PC를 1.3 m에서 사용하는 사람은 없죠. PC의 적정 시청 거리를 50cm라고 하면, 이 지점에서 50cm 비켜난 지점에서의 왜곡률은 60%입니다. 불편하기 그지없겠죠. 실제로 둘이 PC 모니터를 공유하면서 스크린의 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고개를 이리저리 최대한 모니터 중앙으로 얼굴을 들이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죠?TV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보죠. TV도 3m 미만으로 여러 명이 보는 상황이라면 마찬가지로 불편한 시청 환경이 될 것입니다. 물론 말씀드렸다시피 이건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하지만 가족들이 옆에 앉는 것보다는 중앙에 앉길 원하고, 가운데 자리가 안된다면 소파 아래로 내려와 앉더라도 최대한 중앙에 머리를 두려고 하는 그런 습관은 없으신지 곰곰이 생각해 보시죠. 권고안은 대부분 최적의 시청 환경을 가정하죠. 고로, 제가 내 맘대로 내린 권고안은 TV 시청 거리는 최소 3m 이상이 되어야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정리를 위해-누가 시원하게 정의를 내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지난번 포스트의 결론을 위 권고안을 바탕으로 한 문장으로 다시 요약해 보면 이렇게 되겠습니다.
“공동 시청 환경에서의 적정 TV 시청 거리는 최소 3m이며, 최적 몰입 환경과 경제성을 고려한 적정 스크린 사이즈는 50인치, 해상도는 HD급(720p)이다.”
(사족으로, 경제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3m 거리에서 최적 몰입을 위한 스크린 사이즈는 70인치, 이때 해상도는 Full HD급(1080p)입니다.)
왜 TV 리모컨은 항상 그 모양일까?
자, 여담이 길었습니다만, 하고 싶었던 말은 지금부터입니다. TV 시청 거리가 최소 3m라는 것은 TV 소비 환경에서 중요한 점을 시사합니다. 바로 인터페이스에 대한 제한입니다. TV 인터페이스의 혁명은 리모트 컨트롤러에서 한 번 있었습니다.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시청하다가 채널이나 볼륨을 조절하러 스크린 앞으로 가야 하는 것은 대단한 수고입니다. 이를 해결해 준 혁명이 리모컨이죠.
하지만 그 혁명은 TV 서비스를 더 혁신적으로 발전시키지도, 인터페이스를 더 멋지게 만들어 주지도 못했습니다. 변화시킨 점이라곤, 채널 수를 엄청나게 늘려놓았다는 것과 사람들을 소파 속으로 더 깊숙이 박아놨다는 것뿐이죠. 왜 서비스 개선은 혁명 되지 않았을까요? 컨트롤이 손안에 들어왔는데, 왜 더 인터랙티브한 서비스들은 대중화가 되질 않았을까요? 물론 이제까지의 TV가 ‘연결[connected]‘되는 경우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서비스를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최근 스마트TV가 유행어가 되고 있는 현재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똑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겁니다. TV가 공동의 스크린이고 그 프라임 타임을 대부분 공유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공동의 시청을 위해서는 멀찌감치 떨어져 봐야만 하고, 이 환경에 최적인 인터페이스가 바로 리모컨이라는 것입니다. 소비를 공유한다는 것은 인터페이스도 공유한다는 것이죠. 여기에는 가족 구성원의 타협이 필요하다는 얘기인데, 복잡한 협상은 당연히 지양되겠죠. 채널 재핑에 대한 타협만 있으면 만사가 오케이. 더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왜 TV 스크린에선 능동형 소비가 메인이 될 수 없는가?
이런 리모컨으로는 복잡한 능동형의 서비스를 제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애플리케이션이 잘 안되는 이유가 TV 리모컨의 불편함 때문이라고 합니다. 삼성이 새로운 스마트TV에 음성, 동작, 얼굴인식 등의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특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는 사실을 보더라도 그런 공감대를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인터페이스가 아닙니다. 정말 필요한 서비스가 있다면, 인터페이스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입니다. 진짜 문제는 TV 스크린이 사람들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멀리 떨어지게 된 바로 그 이유에 있습니다. TV는 공동의 스크린이라는 것이죠. 이런 환경에서 능동형의 애플리케이션이라는 것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능동형 서비스는 대부분 지극히 개인적이고, 따라서 스크린을 독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아무리 가족 간이더라도 개인화된 서비스는 프라이버시 문제와 서비스의 소유권(로그인) 문제를 일으킵니다. TV에 딱 맞는 ‘혁신적인 UX 발굴’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그런 서비스들에 대해서는 훨씬 더 편하고 충분히 개인적인 대체 스크린이 이미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PC, 태블릿, 스마트폰이 그런 것들이죠. TV는 그런 서비스에 적합하지도 않을뿐더러, 이미 절대적 경쟁 열위에 있는 스크린이라는 얘기입니다. (경쟁 열위의 스크린이라는 것은 TV에서 검증된 거의 유일한 능동형 서비스인 콘솔 게임 시장에서도 이미 벌어지고 있습니다.)
TV는 가장 편안한 몰입형 미디어 소비 환경.
요즘 스마트TV 마케팅을 볼 때마다, 2000년대 초 본격화되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것 같았던 꿈의 서비스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 꿈의 서비스, “스마트홈”은 데모 룸 안에서는 여전히 멋진 ‘미래 서비스’이지만, 아직도 그 룸을 벗어나지 못한 채 망령처럼 우리 주위를 맴돌기만 합니다. “스마트TV”도 그 전철을 밟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공교롭게도 스마트TV는 계보 상 스마트홈의 직계 적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홈에서 가장 중요한 스크린은 항상 TV였으니까요. 그리고 그 옛날 스마트홈에서 정의했던 TV 서비스의 수많은 아이디어는 지금도 스마트TV에서 정확히 복제되고 있습니다. 제가 보는 스마트TV 미래의 암담함은 대부분 이런 학습 효과에 기인합니다.
실패를 거듭하지 않으려면, 도대체 왜 실패했을까를 바라봐야겠지요. 제가 생각하는 실패 원인은 두 가지입니다. 그 첫 번째가 위에서 주저리주저리 떠든 것입니다. 기술의 차원에서만 접근했지, 실제 소비 환경적 고민이 부족했던 거죠. 가족 공동의 TV 스크린은 능동형 서비스에 적합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 망할 인터페이스 탓이 결코 아니라는 것, 고로 다양한 서비스가 TV에서 펼쳐질 것이라는 환상은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실패 원인은 컨텐트 산업에 대해 몰이해라고 생각하는데, 이 부분은 일단 논외).
왜 자꾸 공동의 스크린만을 가정하느냐, 소비 환경이 점차 개인화되어가고, 컨텐트들도 개인화된 틈새 영역으로 확대되는 시점에, 개인화된 TV 환경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저도 이런 퍼스널 TV의 가능성에 대해 의견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화된 스크린이라는 다른 폼팩터로의 TV 플랫폼의 확장을 논한 것이지, 빅 스크린 TV 자체를 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빅 스크린 TV의 미래가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TV는 가장 편안한 몰입형 미디어 소비 환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TV에 최적화된 서비스는 누가 뭐래도 역시 비디오입니다. 고로 핵심 TV 서비스의 지향점은 바로 여기에 맞춰져야 합니다. 연결된[connected]TV의 강점도 사실 이 부분에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한 날로 발전하고 있는 비디오 유통의 혁신이 연결된 TV를 통해서 바야흐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혹자는, 그래서 스마트TV의 애플리케이션은 비디오 서비스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 스마트TV 프레임이라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마트폰에서 발화된 앱 스토어 성공 신화가 스마트TV라는 기형적 프레임을 만들어 낸 것 아닐까요? 그 비디오 “애플리케이션”이 VOD 라이브러리를 갖춰놓고 소비자에게 지루한 탐색의 고통과 머나먼 접근성이나 부여하는 소비 환경이라면 더더욱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TV는 상대적으로 짧은 탐색과 긴 시간의 피동적 시청에 적합한 스크린이라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도대체 떠오르지 않는 UX 발굴 환상을 대책 없이 전제하고 들어가는 오류를 반복하면 안 되겠지요.
결론: 사실 TV는 이미 수 십 년간 빅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검증된 소비 모델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듯이, 채널이라는 최상의 비디오 큐레이터 모델이지요. ‘애플리케이션’이라는 모델은 스마트폰의 프레임입니다. TV의 프레임이 아닙니다. 그런 억지스러운 프레임을 미리 전제해 놓고 서비스를 찾다 보니, 맞지도 않는 능동형 서비스, 인터페이스 문제 타령을 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애플리케이션 모델의 프레임을 다시 ‘채널’ 모델의 프레임으로 복귀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글 : 게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