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는 전산업에 스며든 핵심기반…단일부처가 산업 이끌긴 불가능
‘누가’보다 ‘무엇’을 하나가 중요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부조직 개편을 위한 다양한 의견들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정보통신(IT) 분야 역시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조직을 논하기 전에 먼저 세계적 흐름과 산업의 현황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환경 속에서 정치적 논의에 휩쓸려 우왕좌왕하다가 눈앞의 현실을 놓칠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정보통신부가 별도 부처조직으로 존재하는 나라는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등 개도국 몇 개 국가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여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정보통신을 중요하지 않게 여겨서가 아니라, 정보통신을 IT 단독 산업이 아닌 융합산업의 인프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에 따라 중국도 2008년 공업부와 신식사업부(정보통신부)를 해체하고 IT와 전통산업 육성기능을 통합한 공업신식화부를 출범시킨 것이다.
한국 IT산업의 1단계는 IT산업 자체의 발전이었다. 이때는 강력한 산업 드라이브 정책이 필요했고, 다른 산업과의 관련성이 절대적인 우선 순위는 아니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이젠 IT시대에서 IT융합시대로 이전하고 있다. 모든 산업이 IT와 결합돼야 한다. IT는 단독 산업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전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핵심 기반 역할을 해야 한다.
IT융합은 한국이 지향할 가장 확실한 미래혁신 전략이다. 시장을 창출하는 블루오션 정책은 한국에 적합하지 않다. 블루오션 정책은 거대한 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같은 나라가 시도할 수 있는 전략이다. “한국은 왜 구글 같은 기업이 안 나오냐”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답은 이렇다.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시장이 장벽인 것이다. 세계 시장의 1% 수준인 한국 시장을 바탕으로 한 시장 창출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성공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렇다고 차별화되지 않은 레드오션에서의 무한 경쟁은 중국 등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역시 승산이 희박하다.
결국 한국은 블루오션과 레드오션 사이에 있는 퍼플오션을 지향해야 한다. 퍼플오션은 이미 존재하는 시장에서 핵심 기술을 혁신하는 것이다. 우리가 시장을 창출하지는 않지만, 탁월한 기술개발 역량으로 시장의 경쟁 판도를 바꾸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디지털 TV’나 ‘휴대폰’ 등이다. 퍼플오션 전략의 핵심이 바로 IT융합이다. 한국이 전통적으로 강한 산업 분야들과 IT가 융합하는 것이다. 자동차, 조선, 교육, 의료산업 등이 IT와 융합하는 것이다.
과거 정보통신부는 단일 IT산업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반면 산업 융합 측면에서는 극렬한 갈등을 겪었다. IT가 전 산업에 녹아 있는 지금 상황에서 동떨어진 IT 전담부처가 설립된다면 5년 전보다 훨씬 더 큰 갈등구조가 재연될 것이다. 새로운 기능부처로서 정보통신부의 부활은 시대적 패러다임과 일치하지 않으며, 이미 하나의 부처가 IT산업을 이끌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현실이 됐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매트릭스 조직, 즉 정부의 기능별 부처와 더불어 각 부처를 연결하는 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방송통신위원회 형태는 곤란하다. 방송기능이 결합되면서 정보통신의 중요성은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방송이 워낙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두 개가 묶이는 순간 IT는 뒷전으로 물러나게 된다. 위원회 형태이되, 강력한 부처 간 조정기능을 갖는 정보통신위원회가 필요하다. 전 부처와 각 분야가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는 가운데, IT와 각 분야 간 융합을 촉진하고 활성화할 수 있는 조정·연계 기능이 요구된다.
물론 IT융합 시대에도 IT산업은 존재한다. 수많은 IT융합 중 가장 강력한 IT융합을 추진해야 될 산업부처는 이런 융합기술적 요소들과 IT를 통합 추진해야 하며, 산업 간 IT융합을 이끌어가는 기능을 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누가 하느냐’보다 ‘무엇을 하느냐’일 것이다. 이제 소모적이고 실익 없는 조직 논의보다는 차기 정부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비전과 IT정책을 수립하도록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글: 이민화
출처: http://goo.gl/o65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