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시대를 지나 정보화시대로 넘어오면서 “창의력”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생산현장에서는 “창의력”이 디지털시대의 생산동력이라 하고, 교육현장에서는 미래인재의 핵심역량이 창의력이라 강조한다. “창의”가 모두의 관심사로 떠오른 시대에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가 있다. “생각이 에너지다” “진심이 짓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대중의 뇌리에 팍팍 박히는 광고를 잇달아 내놓은 광고인 박웅현이다. 허나, 그가 내놓은 쌔끈한 광고를 넘어, 이 시대가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광고인 박웅현이 청춘을 향해 내놓은 울림때문이다. 그는 스펙쌓기에 몰두 중인 청춘들에게 “생각의 기초체력이 중요하다”며, “인문학적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고 외친다. 비록, 그 울림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사라져 버릴지라도…
IT기술의 발달로 미디어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시대를 읽어내야 하는 광고인으로서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고, 대응하고 있나?
사실, 나는 기계치다. 내 컴퓨터가 고장 나면, 후배들에게 “이것 좀 어떻게 해봐” 라고 애원하거나, “내 컴퓨터를 왜 나한테 물어?” 라고 화낸다. 그런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통신회사와 검색회사의 광고를 만든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이 변하는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급변하는 시대일수록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다. 그래서 “사람을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다. 내가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내면, 내가 하지 않아도 어떤 방법으로든 SNS를 통해 공유된다. 물론, 그 변화의 속도를 쫓아 재빠르게 변신하는 사람도 필요하겠지만, 나처럼 천성이 게으른 사람은 본질적인 부분만 보는 쪽을 택한 거다. 하지만, 나의 이 같은 속성과는 별개로, IT기술의 발달로 미디어엑세스권이 다변화되는 모습은 좋은 변화인 것 같다. 효선이, 미선이 사건 때 10만이 넘는 대중을 광장에 불러 모은 것은 일개 개인의 외침이었다. 다만, 주의해야할 점은 다변화와 함께 깊이가 얕아지는 한계다. 겉모습은 화려한데, 속은 부실해서 마치 성형외과 신드롬을 보는 것 같다.
시대가 바뀌어도 놓지않고 붙들고 있어야 하는 본질적인 것이 “인문학 혹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건가? 스티브 잡스가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을 강조한 후 사회 전반에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내가 강조하는 ‘인문학’은 학문으로서의 인문학, 문,사,철이 아닌 “인문학적 소양”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이폰의 본질은 전화기다. 그래서 종래의 관점으로 보면, 전화가 잘 걸리고, 가볍고, 용량이 크고.. 이런 하드웨어적인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 아이폰을 만들면서 종래의 통념을 확 깨버렸다. “책장을 넘기는 것 같은 느낌” “차르륵 넘어가는 셔플링” “매혹적인 디자인” 같은 주변부를 중심으로 옮겨낸 것이다. 솔직히, 끈도 달 수 없어 자꾸 떨어져 깨지고, 전화도 잘 안 걸리는 아이폰은 기능적으로는 꽝이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아이폰에 “사람을 향하는” 인문학적 감촉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제일기획을 거쳐 TBWA에서 일하고 있다. 스스로 조직을 만들기 보다는 조직 안에서 역량을 펼쳐내는 스타일인 것 같다.
나는 스티브 잡스처럼 본인 스스로 조직을 만들어 하고싶은 일을 해내는 사람들을 해적, 나처럼 조직 안에서 편안한 사람을 해군이라 표현하곤 한다. 솔직히 해적들이 멋있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해적DNA가 없다. 나는 조직의 지원 아래 일하는 게 편하다. 트위터나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콘텐츠로 몇 십만의 추종자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정말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잘 자, 내 꿈꿔” 라는 광고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400억이라는 돈을 쏟아부었다. 돈이라는 총알을 빼면 나라는 사람의 능력은 보잘 것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광고시장은 대표적인 광고회사들이 모기업 수주물량에 의존하는 제한적 경쟁양상을 띠고 있다. 삼성그룹의 계열사이자, 광고계의 맏형격인 제일기획을 떠나 기댈곳없는 TBWA로 옮겼다. 불안하지 않았나?
아이러니 하게도, 내가 제일기획을 떠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이유는 “광고를 만들고 싶어서” 였다. 내 광고인생을 돌아보면, 제일기획에서 17년을 근무했는데, 입사 후 3~4년은 “이게 내 일이 맞나” 의심하며 보냈다. 논리적이고, 사변적인 특성을 갖고 나였던터라 팀원들로부터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복사도 열심히 하고, 청소도 열심히 하며 버텼다. 그러다가, 빈폴 광고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로 인정받게 되면서 “나도 광고할 수 있겠네”라는 생각을 비로소 갖게됐다(어느 분야든 3~4년은 버티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 이후부터 “무능아딱지” 떼고 회사에서 보내준 유학도 다녀 오고, 정말로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임원승진을 앞두고, 고민스러워졌다. 임원으로 승진한다는 것은 “광고”를 떠나 “조직”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인데, 나는 광고를 만드는데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직을 결심했다. 사실, 내가 TBWA로 합류하던 당시 TBWA는 창업자 5명 중 4명이 조직을 떠나 힘겨운 상황이었다. 다행히도, 내가 합류한 이후 지속적으로 대어를 낚아내며 상승곡선을 그려가게 되었지만. 비록, 대기업이 주는 안정감을 벗어던졌지만 나는 광고인으로서의 야생성을 회복하며 역량을 꽃피우고 있다. 나의 이직소식을 듣고 안부를 묻는 외국친구에게 “Right time, Right place”라 답한 적이 있다. 현업에서 기량을 펼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에 더없이 만족한다.
세간의 관심을 끌어낸 많은 광고를 만들어 냈다. 광고는 대표적인 팀작업의 결과물인데, 팀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특별히 신경쓰는 부분이 있다면?
나는 광고제작 전반을 총괄하는 역할을 하는데, 함께 작업한 감독으로 부터 “박CD(creative director)와 함께 일할 때 결과가 가장 좋았어요” 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팀원들이 그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끌어주고, 기다려 주고, 배려해 주려 신경쓰는 편이다. “잘 자 내 꿈꿔”도 팀원이 툭 던진 아이디어를 잡아서 키워낸 것이다. 특히, 함께 일하는 팀원들에게는 팀장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려 노력하는 대신(물론, 아무리 노력에도 그들에게는 권위적으로 느껴질 테지만..) 광고주에게는 거침없이 대하는 편이다(그래서 광고주에게 짤린 적도 있다).
‘진심이 짓는다’ ‘사람을 향합니다’등 가치를 담은 광고로 울림을 만들어 냈는데, 이는 변화된 시대적 감수성을 적절히 반영해 낸 결과로 보인다. 항상 시대의 변화를 관찰하는 광고인의 입장에서 우리 사회를 발전시켜내는 동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글쎄, 발전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다. 이제까지 경제적인 부가 증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개개인의 행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 입장에서 발전이라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광고인으로서 우리 사회가 빠른 변화를 만들어내는 이유들은 짚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낙천적인 해보자주의가 역동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물론, 동전의 양면처럼 이로 인해 안전불감증이 지적되기도 하지만.
일본사람들의 응집력과 조직순응주의가 산업사회의 성장을 이끌었다면, 우리의 쏠림현상과 모래알주의가 성장엔진이 사라진 시대에 개개인의 발전을 이끌어내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즉, 컨베이어벨트로 대변되는 산업화시대는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였기에 개인의 개성이나 역량이 부각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성장동력을 잃어버린 정보화사회는 개개인이 갖고 있는 달란트가 중요하다. 반면, 대기업이 필요로 하는 단순노동은 기계가 대신하거나 저개발국가로 옮겨 가면서, 달란트를 갖춘 인력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달란트를 갖춘 개인들이 가로수길에 꽃집을 열고, 인디밴드를 하묘 자신의 달란트를 스스로 세상에 내보이게 된 것이다. 서울대에 자유전공학부가 생긴 것도 이 같은 시대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성장 동력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 젊은이들은 어떤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시절에는 대학만 졸업하면 갈 수 있는 직장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 산업화시대의 수요에 맞춰 대학은 전공을 세분화하고 규모를 키웠지만 기업의 인력수요는 줄었고, 전공지식 보다는 통합적인 역량을 요구한다. 그래서, “사람을 이해하는 역량”과 “인문학적 감수성” “생각의 덩어리”를 갖춰야 한다. 컬럼비아대학은 1905년부터 교양학부를 만들어 대학 입학 후 2년 동안은 전공공부가 아닌 교양공부를 하도록 했다. 그런 촉을 갖춘 사람은 의사가 되어도, 변호사가 되어도 인간을 볼 줄 아는 전문가로 성장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대학입시에 도움이 안 된다며 고등학교에서 음악, 미술시간을 없애고 있다. 간혹, 광고인이 되고 싶다고 공모전과 광고제작을 위해 필요한 스킬을 쌓으며 대학시절을 보내는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 친구들에게 나는 “광고에 목숨걸지 말라”고 말한다. 생각의 덩어리를 갖고 있다면 광고회사 뿐 아니라 방송국, 신문사, 어디에서든 쓸모 있는 사람으로 대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광고를 만드는 스킬은 광고회사에 들어와서 2년이면 배우지만,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을 열수 있는 기초체력을 닦아야 한다. 그 기초체력을 닦는 방법이 톨스토이를 읽고, 모짜르트를 듣고, 피카소를 보는 것이다. 인생이 30세에 끝나는 레이스라면, 스펙이 유용한 수단이 될 수도 있겠지만, 70세가 넘어서도 살아갈 양이면 스펙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TBWA는 스펙보다 기초체력을 보고 신입사원을 채용한다.
청춘멘토로 나서 꾸준히 이야기하시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견고해서 도무지 바뀔 것 같지 않다. 스펙궤도를 이탈하는 청춘들이 생겨나고 있기도 하지만, 그들 역시 불안해 하기는 마찬가지이고.
세상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회가 닿을때마다 끝없이 외칠거다. 내가 이처럼 청춘을 향해 내 업무와 상관없는 울림을 공유하는 이유는 “10대라는 형벌”을 안고 살아가는 이 땅의 청춘들에게 미안해서다. 2002년 독일월드컵이 끝나던 날, 집 근처 편의점 앞에서 응원도구를 내려놓은 채 축 쳐져있는 여고생 4명을 본 적이 있다. 저 아이들이 왜 저렇게 슬픈 표정을 하고 있나 싶었는데, 순간 아차하게 됐다. 떳떳하게 TV를 볼 수도 없던 그 아이들에게 월드컵은 부모님, 선생님과 함께 맘껏 즐길 수 있는 해방구였던 것이다. 그 해방구가 닫히고, 다시 일상의 감옥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기에 그들은 그처럼 절망했던 것이다. 얼마 전 특강에서 만난 공대생이 “청춘멘토들의 조언에 따라 나만의 기초체력을 쌓아보려고 휴학을 선택했지만, 걱정하는 지인들의 반응에 흔들린다” 고 하더라. 그래서, 그 친구에게 “흔들릴 때마다 붙잡아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나서라”고 조언했다. 우리가 대학을 다닐 때에는 교수님들이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주는 멘토역할을 해 주셨지만, 요즘 대학은 기술전달에 중점을 두다보니 정작 삶의 뿌리가 흔들릴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스승을 찾기 어려운 것 같다.
글: 오이씨 장영화
출처: http://oecenter.org/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