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 시티그룹, 존슨앤존슨, P&G, I.B.M.의 공통점은? 모두 100년을 넘긴 글로벌기업이라는 사실이다. 100년을 넘긴 글로벌기업에게는 도대체 어떤 D.N.A.가 자리 잡고 있을까? 지난 해 100돌을 맞은 IBM은 컴퓨터제조회사로 눈부신 성장을 이뤘지만, 컴퓨터하드웨어시장이 저물면서 IT솔루션, 컨설팅회사로 변신해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다. 1984년 한국IBM에 입사해 2005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휘성 대표는 사회생활의 시작과 전성기를 IBM과 함께 하고 있는 온전한 IBM인이다. IBM인, 이휘성 대표에게서는 100년 기업으로부터 전수받은 “변화”와 “자부심”이 반짝인다.
당당함으로 젊음을 무장하다
대학시절, 그는 소심하고도 허점투성이 젊은이였다. 게다가 가정형편도 넉넉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디서든 당당한 사람이 되고픈 열망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다소 원론적일수도 있지만 “내가 옳다고 믿는 일을, 내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발휘해 재밌게 일하고, 많이 배우자”는 생각에 대학시절이 아니면 해보지 못할 것들을 찾아다녔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연출을 맡게 된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취업면접을 포기한 것도 대학시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치열한 대학시절을 보낸 덕에 대학을 졸업할 무렵, “나는 무슨 일을 해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기확신을 얻게 된 것이 대학시절의 가장 큰 결과물이었다.
IBM의 철학과 문화에 반하다
IBM의 문을 두드리기 전, 이대표는 세계를 무대로 무역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지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입사시험에 합격한 그가 배치된 곳은 내근부서였다. 그는 무역업무에 대한 강한 열망을 내비치며 부서이동을 요구해 보았지만,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그저 “기다리라”였다. 열정이 넘치던 그로서는 “기다림”을 수용할 수 없었기에 회사에 사표를 낸 후, 글로벌기업IBM 입사를 선택했다. 그가 IBM에 입사할 당시인 1984년은 민주화의 열망 속에 글로벌기업을 매판자본으로 몰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같은 시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면접을 통해 접하게 된 IBM인들은 합리적인 이성을 갖춘 전문가들이었고, 무엇보다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IBM이라는 회사가 품고 있는 핵심가치와 그 핵심가치를 업무에 녹여내는 기업문화였다.
IBM이 현재 공유하고 실천하고 있는 핵심가치인 1. 고객의 성공을 위한 헌신 (Dedication to every client’s success) 2. 회사와 세상을 위한 혁신 (Innovation that matters – for our company and for the world) 3.모든 관계에서 신뢰와 책임(Trust and personal responsibility in all relationships) 은 170여 국가에 흩어져 있는 IBM구성원들이 온라인상의 토론을 거쳐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전체 구성원들의 생각을 담아 Bottom-Up 방식으로 만들어낸 핵심가치는 말뿐인 구호에 그치는 여느 기업들과는 달리 IBM이라는 기업의 방향설정과 운영에 현실적인 지침으로 작용한다. 이휘성대표가 28년이라는 세월을 기업이라는 조직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실행에 옮기면서 살아왔다”는 자부심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IBM의 핵심가치가 조직 구성원들 간에는 물론 고객과 사회와의 관계에서도 지켜지고, 인정받아왔기 때문이다.
위기를 맞아 도전으로 성장하다
IBM에 입사할 당시, 이대표는 “회사에서 10년만 일하자”는 다짐을 했다. 10년이라는 시간이라면 회사에서 받은 것을 모두 갚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IBM에 입사해 1년 동안 IT교육을 받으면서 이대표는 엔지니어로서의 적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막연히 무역인이 되겠다는 열망은 회사가 제공한 교육기회 속에 엔지니어로의 변신을 이끌어내게 된 것이다. IBM이라는 회사가 세계최고의 인재개발기업으로 불리는 이유를 확인하게 되는 지점이다. 입사할 당시 독립하기로 마음먹었던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간 1993년의 어느 날, 이대표는 엔지니어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을 하기로 마음먹고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마침 회사는 컴퓨터하드웨어시장이 기울면서 상황이 어려워져 명예퇴직을 받고 있던터라 사직에 대한 부담감을 덜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사표를 제출한 후 그의 마음속에는 회사에 대한 미안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10년 동안 회사로부터 받은 것이 너무도 많은데, 회사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떠난다면 평생 빚진 기분으로 살아가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대표는 상사를 찾아가 “회사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회사에 남겠다”는 제안을 했다. 어느 누구도 하려 하지 않는 일을 맡아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보고, 회사의 성장도 돕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해서 맡게 된 일이 서비스영업이었다. 엔지니어로서 일해 온 배경을 바탕으로 영업을 하게 되면 경쟁력 있는 영업실적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은 있었지만, 당시는 하드웨어 판매 이후 이루어지는 서비스를 돈주고 구입한다는 개념이 전무한 상태라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이후 4~5년의 세월은 그야말로 “죽지않을 만큼 일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힘들지만 성과를 만들어가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더 이상 회사에 미안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회사 내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어 회사를 떠날 이유가 없어졌다.
모든 성과는 “함께”의 힘이다
기업이라는 조직에서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대부분의 일은 팀을 이뤄 진행하게 된다. 이 대표는 평사원으로 입사해 대표이사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이뤄낸 모든 성과들은 IBM이라는 조직에서 일하는 동안 함께 해준 팀원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팀원들과 어떻게 일을 하느냐는 일의 효율 뿐 아니라 행복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대표가 신입사원 선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다양성”이다. 면접을 직접 진행할 때에는 사회통념으로 바라볼 때 우수한 직원들 뿐 아니라 통념에서 벗어나는 자질을 발산하는 이들을 주목했고, 대표이사가 되어 면접에 관여하지 않게 된 지금에 와서도 점검하는 부분은 성비율, 전공, 학교, 나이 등 다양성비율이다. 한편, 팀웍에서 강조하는 부분은 “효율”과 “수평적 관계”다. 팀웍은 일을 중심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들이” 모여서 “최고의 능력과 역량”을 발휘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일을 중심으로 다이나믹하고도 헐거운 관계 속에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과 울림을 공유하고 싶다
이대표가 IBM인으로서 품고 있는 자부심의 근원에는 IBM이라는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인류와 사회의 발전에 공헌한다는 점이 자리 잡고 있다. 이대표는 기업의 사회공헌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기업이 얻은 수익으로 기부활동을 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되지만, 보다 근본적인 사회공헌은 기업의 활동 자체가 국가와 지역사회에 얼마나 기여를 하느냐 라고 강조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대표가 한국IBM의 대표로서 관심을 두고 노력하는 부분은 전 국민의 IT지수를 높여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교육과 봉사활동이다.
IBM은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기업의 변신으로 이어내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낸 기업이다. 대표님 역시 변화에 잘 적응하는 편인 것 같다. 리더에게 변화란 무엇인가? (오랜 전에 찍음직한 이 대표의 사원증 사진은 “아저씨” 이휘성이지만, 현재의 외모는 깔끔하고 세련된 “오빠” 이휘성이다)
“변화”라는 것은 머릿속에만 머물고 실행하지 않으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외모를 바꿔본 것도 변화를 실천하려는 나의 의지를 나타내고 싶었기 때문이고, 외모의 변화를 행동양식의 변화로 이어가야 궁극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이미 이뤄낸 성과와 경험에의존해 편한 것만 찾으려 하면서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본성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중심을 두고 살아가면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같다. 리더에게는 변화를 습관으로 만들어가는 훈련이 필요하다. 변화하는 것이 유일하게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고, 변화하지 않는 개인이나 조직은 발전이 없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리더로서 풀어야 할 숙제로 “우리 사회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이리 생산성이 낮을까?”라는 문제를 해결해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IBM이라는 기업에 속해 일을 하지만, 미국인들이 일하는 방식과 한국인들이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 한국인들은 문제가 주어지면, 팀의 리더가 팀원들을 불러 모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제외한 나머지”를 해결해달라는 요청을 한다. 이런 방식은 한 사람의 머릿속을 벗어나지 못하고, 나머지 구성원들을 들러리로 만드는 배타적 오너십을 낳는다. 반면, 미국인들은 문제를 함께 풀기에 적절한 사람들을 불러 모은 후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이야기하게 하고, 그 일들을 배정해 준 후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 일을 팀의 리더가 맡는다. 이런 방식은 구성원 모두가 오너십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 같은 방식의 결과에는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고 있지만, 훈련을 통해 효율적인 문제해결방식을 전파하고 싶다.
이 대표님은 대한민국CEO들을 두루두루 접하고 교류하는 분이시자, 조직 내외부에서 신뢰를 얻고 있는 분이시다. 인생살이, 비즈니스를 통틀어 가장 어려운 “사람” 그리고 “관계”의 문제를 풀어가는 대표님만의 해법이 있는지?
사람은 누구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리더의 자리에 있는 이들은 함께 일하는 이들의 긍정적인 측면을 꺼내주고, 키워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게 되는 사람들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누구에게든 마음을 열고, 배려하고, 존중하면 나중에는 상처받지 않고, 좋은 사람들과 풍요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 오이씨
출처: http://oecenter.org/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