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스퀘어 독자 여러분, 한 주 동안 안녕하셨어요?
저는 지난 금토일(5/18-20) 시애틀 스타트업 위크엔드에 다녀왔습니다. 한 주 앞서 서울에서도 스타트업 위크엔드 행사가 열렸다고 한 독자분께서 알려 주셨는데요, 일단 스타트업 위크엔드가 생소하신 분이 많을테니 행사 소개부터 시작해 보죠.
스타트업 위크엔드(Startup Weekend)란?
스타트업 위크엔드는 2007년 콜로라도 주에 Startup Weekend LLC라는 이름으로 법인 설립되었던 것이 2009년 시애틀에서 비영리 단체로 재등록되게 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특히, 2010년 이후 카프만(Kauffman) 재단의 후원을 받아 정규 직원들이 조직을 꾸려나가게 되면서 빠른 성장을 거듭하게 되는데, 현재까지 전세계 93개국에서 587회 스타트업 위크엔드 행사가 열렸다고 합니다. 이번 주말에도 폴란드, 영국, UAE등 전세계 여덟 곳에서 동시에 행사가 진행된다고 하니 굉장하죠?
이 행사는 유료행사($99)이며 대신 3일동안 식사, 간식, 음료(술 포함) 등이 넉넉하게 제공됩니다. 등록시 스킬셋에 따라 개발자, 디자이너, 비즈니스(non-technical)를 선택하게 되는데, 개발자와 디자이너 대비 비즈니스의 비중이 50% 대 50%이 되도록 계획했다고 하네요. 지역에 따라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평균100명 규모의 행사가 열리고 있으며 요즘에는 점점 인기가 높아져서 대도시의 경우 일찍 등록하지 않으면 한 달 전에도 티켓이 동나곤 합니다. 저는 한 달 훨씬 전에 티켓팅을 시도했음에도 비즈니스 티켓의 경우 판매가 완료되는 바람에 디자이너 자격으로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시애틀이 스타트업 위크엔드 헤드쿼터가 위치한 곳이라서 일까요? 이번 행사의 경우엔 행사 전에 모든 티켓이 동났다고 하니 그 열기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도시별로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20를 내면 관찰자 자격으로 일요일 진행되는 프레젠테이션만 따로 참석할 수도 있다고 하니 확인해 보세요.
모든 스타트업 위크엔드 행사의 기본 모델은 동일합니다. 연령, 성별, 배경에 대한 제한이 없어 누구나 60초 아이디어 제안 시간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표할 수 있습니다. 이후 인당 세 표씩 맘에 드는 아이디어에 투표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일정 수 이상 득표한 아이디어만 살아남아 팀 구성을 시작하게 됩니다. 지난 레드몬드 대회 땐 행사를 며칠 앞두고 아이디어 피치 연습을 위한 소규모 모임이 구성되기도 했으니, 스타트업 위크엔드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안할 계획이시라면 지난 주 말씀드린 밋업(meetup.com) 사이트를 한번 확인해 보세요.
이렇게 각 팀은 개개인의 자율 의지에 의해 구성되기 때문에, 이 후 삼일간 팀원 모두가 54시간의 마라톤을 함께 뛰기 위해서는 강력한 팀워크와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중간에 와해되는 팀도 많고,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도 목격하곤 합니다. 또한, 모두가 행사에 임하는 동기나 열정의 정도가 같지 않기 때문에 크던 작던 트러블을 경험하게 되는데 처음 통성명을 한 친구들과 하나하나 일하는 방식부터 세워 나가는 과정을 경험해 보는 것은 스타트업의 생리를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여하튼, 마지막날인 일요일 오후에는 선배 창업자, 투자자 등 심사위원이 도착하게 되고, 5분씩 발표 시간이 각 팀에게 주어집니다. 하지만, 발표 후 2~3분 동안 심사위원들의 날카로운 질문 세례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5분 발표 내용만 준비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습니다. ‘경쟁사 조사는 하셨나요?’ 질문은 기본이고, 세일즈 능력이 중요한 아이템인 경우, ‘팀원 중에 세일즈 경험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묻기도 합니다. 지난 레드몬드 대회에서 어떤 심사위원은 대놓고, ‘당신의 프리젠테이션 비쥬얼은 내 눈을 병들게 한다’고 독설을 퍼붇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행사장 도착 & 네트워킹 시작
시애틀 스타트업 위크엔드는 금요일(5/18) 오후 6시 반에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행사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저녁 식사로 준비된 피자 상자가 반쯤 비워진 상태였고, 마이크로 소프트 사 본사를 빌려 진행했던 레드몬드 대회에 비해 장소는 협소했지만, 그대신 밝고 쾌활한 분위가 넘쳐 흐르고 있었습니다. 특히 행사 며칠 전 주최측에서 마련해 준 ‘해피아워’ 사전 행사 덕에 낯익은 얼굴들이 많이 보여 서로간에 쉽게 말문을 틀 수 있었습니다.
저는 현재 제가 시작하고 있는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피치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을 좀 했는데 결국은 발표하지 않는 대신 되도록 많은 개발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동안 쌓은 네트워킹 실력을 발휘해, ‘(뻔뻔하게) 난 지난 레드몬드 대회 우승팀 멤버야’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쉽게 사람들의 관심을 살 수 있었고, 신나게!!! 네트워킹을 시작하게 됩니다. (지난주 컬럼을 안보신 분들은 [미국에서 스타트업 하기 (4)] 스타트업의 네트워킹을 참고하세요.)
미래의 저커버그 탄생
드디어 아이디어 발표 시간.
50여명 정도가 줄을 서 발표를 시작했는데, 이 때 Ashwin이라는 이번 행사의 슈퍼스타가 등장합니다. 참고로 이날은 페이스북이 상장한 날로, 미디어는 온통 마크 저커버그 얘기였습니다. 이 가운데, Ashwin이라는 꼬마가 마이크를 잡고 한 첫 마디는… “저는 여섯 살이예요. 저는 창업가예요!(I’m six years old, I am an entrepreneur!” 그 때까지 엄마가 일하는 데 쫒아온 사랑스런 개구쟁이 꼬마를 떠올렸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놀라 자빠지게 됩니다. 이 꼬마 저커버그는 떠는 기색 하나 없이 마이크를 잡고, ‘물에 녹는 스티커’에 대한 아이디어를 소개했습니다.
관객들의 박수가 쏟아졌고, 꼬마 신사의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경청한 몇몇 디자이너, 개발자들은 주말동안 Ashwin 을 도와 아이디어에 옷을 입히게 됩니다. 6살짜리 꼬마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표현하도록 용기를 북돋는 부모와, 환호하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보며, ‘아, 이것이 미국이란 나라의 경쟁력’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행사 후 Ashwin을 도와 스티커를 제작한 Dwight이란 디자이너가 쓴 블로그 포스팅이 있으니 한번 읽어보세요. 보시면 창업가를 대하는 미국인들의 열린 사고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결국 행사 마지막날 Ashwin은 시애틀 스타트업 위크엔드 팀이 이름붙인 “미래의 저커버그 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Ashwin의 발표 동영상 클릭)
나의 54시간 마라톤
스타트업 위크엔드에 참여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54시간 동안 처음의 열정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또한, 대부분이 행사를 통해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일하다보니 궁합은 커녕 서로의 스킬셋을 파악하기에도 충분하지 않은 시간입니다. 결국 ‘나는 왜 스타트업 위크엔드에 참여했는가’, ‘나는 이 경험을 통해 무얼 얻길 원하는가’에 대한 목적 의식이 없다면, 이 54시간 마리톤이 지루한 고행이 될 수 있습니다. 회사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죠.
제가 지난 레드몬드 대회에 참여했던 시점은 SpurOn사업을 접는다는 안내 메일을 고객들에게 발송한 직후였는데, 제게 스타트업 위크엔드의 도전은 가족, 친구라는 안전지대를 벗어나 홀로서기에 대한 첫 시도였습니다. 그동안 외국인라는 이유로 뒷걸음질 쳤다면, 이 기회에 온전히 혼자의 힘으로 팀을 이루고, 그동안 쌓은 지식과 노하우를 발휘해 보겠다는 도전장을 던진 것이지요. ‘무슨 일이 있어도 중간에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 ‘혼자 끝까지 한번 해보자’는 오기가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었고, 그렇게 저의 100%를 발휘했던 탓에 팀의 우승에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시애틀 대회에 참여할 때의 자세는 좀 달랐습니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대화나누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사실 팀에 대한 절박함은 부족했죠. 그래서 였을까요? 결과적으로 실제 제가 합류한 팀의 규모는 지난 레드몬드 대회 때의 두 배였지만, 유의미한 결과 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한편, 시애틀 스타트업 위크엔드의 우승은 자폐아들을 위해 키넥트 게임 개발을 시도한 Kinetix Academy라는 팀이 차지했습니다. 현직 자폐아 아동 치료사 두 명에 의해 아이디어가 제시되었는데, 게임 게발자와 디자이너가 팀에 합류해 네 명의 소수 정예 팀으로 전문성과 완성도 높은 발표를 선보였고,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마무리하며…
시애틀 스타트업 위크엔드에서는 지난 레드몬드 때보다 더 뜨거워진 창업 열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행사에 참여한 중국인, 인도인 개발자들의 수가 더 많아졌는데 놀라운 것은 이들은 하나같이 영어 의사 전달력이 떨어짐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해 보였습니다. 저한테 큰 이슈인 외국인이라는 사실과 영어가 네이티브가 아니라는 사실이 이들에게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을 보고 큰 자극을 받았습니다. 저는 더이상 한국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엔 이들과 팀을 이루거나,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더이상 뒷걸음질 치면 안되겠다고 다짐하게 된 것이죠.
참,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음 한 주는 컬럼을 쉬게 될 듯 합니다. 두 주 지나고 뵐 때는 좀더 흥미롭고 에너지를 확확 불어넣는 컨텐츠를 가지고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다시 뵐 때까지 화이팅해요!
글: 에이프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