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본 한 웹툰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조이 1447화 ‘정답사회’
이 만화의 주제를 요약하자면,
한국 사회에서는 항상 정답을 강요한다. A라는 사람은 이래야 한다. B라는 사물은 이렇게 생겨야 한다 등의 사회적인 강요가 있다. 혹은, 강요가 꼭 있지 않더라도, 무언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방식이나 형식이 있어서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쉽게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그들과 멀어질 가능성이 있다. 모든 것에 순위가 매겨지고, 그 순위 밖에 나는 사람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그 순위에 따라서 가치를 형성하고 살아간다.
사회과학적인 용어로는 이러한 현상을 Groupthink 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한가지 방식으로 생각하고, 획일화된 규율과 규정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Groupthink의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가장 큰 위험은 바로 Risk 분산이 안된다는 점, 그리고 다양성이 저하되어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솔루션을 창조하는 기회가 제한되는 것이다.
다양성의 중요성에 대한 수학적 증명
조금 뜬금없지만, 우리가 중학교때 (고등학교때인가?) 배운 아래 공식을 한번 보자
[E(X)]^2 = E(X^2)- Var (X)
최근에 Socia Dynamics & Network 라는 수업에서 위의 공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접했는데, 그것은 결국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저지르는 실수들을 모두 한꺼번에 모아서 제곱을 한 값은 사람들 각자가 한 실수들을 제곱을 한 값에서 그 분산값을 뺀 것이다. (너무 어렵게 설명했나?)
예컨대, 수업에서 “이 방안에 공기가 몇도일까요?” 라고 교수가 질문을 하고, 50명의 학생들의 추측치를 모두 이야기했다고 하자. 그리고 그 학생들이 말한 값들의 평균과 실제 온도(true value)의 차이의 제곱은 [E(X)^2], 학생들이 말한 값과 실제 온도의 차이를 제곱한 값 E(X^2) 에서 분산 Var (X) 을 뺀 것과 같다.
이 이야기는 아래와 같이 해석될 수도 있다.
Crowd Error = Average Error – Diversity
모든 학생들의 에러를 평균을 낸 다음에 실제 값(true value)와의 차이를 구한 것을 Crowd Error 다시 말해서 “대중의 에러”라고 하고, 각각의 학생들의 “개인들의 에러의 평균” 에서 “다양성”을 뺀 것과 같다. 이 이야기를 다른 말로 하면, 한 집단의 평균 에러는 개개인의 에러의 평균에서 다양성을 뺀 것과 같다는 뜻이다.
개개인의 에러의 평균은 “정확성 (Accuracy)“라고 해석될 수 있고, 분산은 “다양성(Diversity)“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그러면 실제 값(True Value)과 집단의 예측간의 차이를 한 집단의 실수 (혹은 반대의 경우 집단의 정확성) 라고 정의하자. 이것을 줄이기 (혹은 높이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정확성을 높이는 노력 (정답사회를 만드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다양성을 높이는 노력 또한 중요하다.
다양성이 높을 수록 집단의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확성의 상수(coefficient)와 다양성의 상수(coefficient)가 똑같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는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하지만, 그와 똑같은 정도로 다양성을 높이는 노력도 해야 한다.
(참고로 위의 실험과 같은 실험 – 예컨대 방안의 공기 온도를 맞춰보라고 하거나, 소를 보여주고 몸무게를 맞춰보라고 하거나, 달리는 치타가 몇초 만에 100m를 뛰는지 등을 맞춰보라고 하는 것 등- 은 ‘crowd wisdon’ 을 측정하는 유명한 실험들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무작위의 대중에게 이런 것들을 물어보면, 실제로 정확도가 굉장히 높다. 전문가들의 예측치보다 이러한 집단 지성이 훨씬 더 정확하다는 것. 하지만 여기에는 전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참여자들이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 참여자들이 다양성이 높을 수록, 그리고 그들의 의사결정이 독립적일수록 정확도는 높아진다.)
요컨대, 우리에게 친숙한 위의 수학적 공식에서 도출된 새로운 메세지는 바로 우리가 정답을 찾기 위해서 들이는 ‘정확성의 노력’과 마찬가지로 ‘다양성을 위한 노력’에 힘을 기울인다면, 사회적 손실은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시겠지만) 구성원들이 다양할 수록, 즉 아주 높은 추측을 하는 사람과 아주 낮은 추측을 하는 사람이 혼재되어 있다면, 그들은 서로의 실수를 상쇄(cancel out)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 집단에서 무작위로 추출한 똑똑한 사람대비 다양한 집단에서는 집단 전체의 예측이 더 훌륭하게 된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구성원의 다양성이 낮아질 수록 ‘Groupthink’의 덫에 빠질 확률이 더 커진다.
미국인들의 다양성에 대한 고집
미국 사회에서 가장 놀랍게 마주하는 것이 바로 다양성에 대한 이들의 집념이다. 정말로 미국이라는 나라는 “다양성(diversity)”라는 가치에 집착 수준의 집념을 보인다.
처음에는 그냥 다원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까 서로간에 충돌(conflict)를 줄이기 위함이거나, 소득불균형의 격차를 해소하고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기 위함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이나 직장 내에서 일정 부분은 여성이나 흑인/히스패닉/아시안 등의 비율을 보장해주고, 그 비율이 다양하게 섞여 있을 때에 그것을 diverse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많이 보았을때, 이것을 정치적이고 사회정의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기 쉬웠다.
그러나 MBA라는 특성상 기업에서의 의사결정이나, 조직내에서의 창의성과 효율성의 밸런스 등에 대해서 고민하다보니, 다양성이 단순히 정치적인 가치에 머무는 것은 아님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렇지만 미국사회 역시 이러한 다양성에 대해서 수학적으로 측정을 하기는 매우 어렵다. 대부분 성장배경, 학과, 인종, 성별, 국적 등의 정성적(qualitative) 수단으로 다양성을 이야기 한다. 학점, GMAT 점수 등을 그 사람/집단의 정확성(Accuracy)을 측정하는 정량적(quantitative) 측정량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살면서 부러운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다양성이라는 가치의 강조“라는 점이다. 이 점이 아마도 한국 사회와 미국 사회의 특징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이다. 덕분에 가끔 수업시간에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창의적인 대답을 할까?’ 라는 미국 학생들도 많고, ‘어쩌면 저렇게 엉뚱한 시각을 가지고 있을까?’ 라는 학생들도 많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에게 손가락질 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는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전략적으로 포기한 대신 정확성이라는 가치에 전략적으로 올인을 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뒷면에는 우리의 뿌리깊은 ‘따라잡기’ 강박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아시아 사회권에서는 다양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빨리빨리(한국)’, ‘한마음 한뜻으로(일본)’ 등등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가치가 우선시되는 경향이 있다.
오해하지 말라. 반드시 미국에서 하는대로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먼저, 다양성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가치라는 것에만 동의한다면,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이미 다민족 사회이고, 수많은 다른 지역출신들과 다른 대학,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회이다. 이 사회 안에서 다양성은 충분히 추구될 가치가 있다.
맺으며: 인기 검색어 순위 꼭 필요한가…?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다양성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한국 사회가 아무리 작고 좁다고 해도, 그 안에서 충분히 다양성을 더 증진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경우 가장 큰 방해가 되는 것은 서열화이다. 대학의 서열화, 학급내에서의 성적을 통한 서열화 등등이 모두 그러한 다양성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된다. 순서가 1등부터 정해져 있으면 사람들은 자꾸만 거기에 신경쓰게 되기 때문이다.
전 구성원이 하나의 미디어를 보고 있는 것 만큼 위험한 사회도 또 없을 것이다. 위에 소개한 ‘정답사회’라는 만화에서도 잘 지적했지만, 우리나라의 포털들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인기 검색어 순위이다.
인기 검색어 순위를 통해서 사람들이 계속 똑같은 곳만 보고, 똑같은 토픽에만 관심을 갖는 것도 큰 문제일 수 있다.
인기 검색어 순위가 없어지면, 검색 주제가 다양화되고, 사람들의 시각을 분산시키고 다양화 시키는데 일조할 수도 있지 않을까 ? 실제로 구글에서는 자동완성기능 – 몇 글자만 타이핑을 하면, 그와 관련된 가장 빈도가 높은 검색어가 뜨는 기능 – 을 도입할 때에, 구글 내부에서도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만 유도할 수 있다고 반대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포털들도 트래픽도 중요하겠지만, 한국이라는 사회에 절대적인 영향을 갖고 있다면, 한번쯤 이런 고민을 한번쯤 해 봤으면 한다.
나 역시 포털사이트에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인기 검색어에 눈이 간다. 다른 사람들은 뭘 보고 있나? 라는 심리를 이용한 포털의 얄팍한 술수에 걸려 넘어지는 느낌은 늘 들고, 클릭한 순간 아차! 싶은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나라 포탈에 어디에나 달려있는 ‘인기 검색어 순위’는 꼭 필요한 것일까?
정답 강요하는 사회를 해소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더 해야 할까?
글 : MBA Blogger
출처: http://mbablogger.net/?p=3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