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 이거 괜찮은데요. 하지만 이런 점은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래도 괜찮게 한 것 같아요.”
이 문장에서 정말 말하고 싶은 건,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 “당신이 해 온 결과물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듣는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저 사람은 내가 한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어도 전체적으로 마음에 들어 하는군”이다. 이런 칭찬 샌드위치가 너무 상황을 희석시키는 경우라면 칭찬이라는 빵을 하나 걷어내고 칭찬 피자를 만들면 된다.*
“괜찮게 했네요. 하지만 이건 고쳐야 할 것 같아요.”
빵을 하나 걷어냈지만 여전히 말하는 사람은 동료가 만든 산출물이 없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듣는 사람은 뒤의 말은 잘 들리지 않고, 앞의 칭찬만이 들린다. 칭찬 샌드위치와 칭찬 피자는, 사회적 관계를 망치지 않으면서도 동료의 작업물에 대한 피드백을 하고 싶은 때 한다. 하지만 의사소통의 비대칭성 때문에, 이런 칭찬 샌드위치와 칭찬 피자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적 관계를 고려한 모호한 의사소통에서 오는 실패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형편없는 결과물을 가져 온 동료에게 맛있는 토핑이라고는 한 조각도 없는 맛없고 푸석푸석한 식빵을 면전에 대고 먹으라고 하면 된다. 이렇게 말이다.
“이런 형편 없는 걸 만들어 왔단 말이에요?”
사실 이렇게 말하면 그 사람과의 원만한 관계는 더 이상,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 고려 대상이 아니란 뜻이다. 듣는 이의 자존심을 완전히 밟아버리는 화법이 그나마 효과가 있는 경우는 어떨 때일까? 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이 여러 가지 면에서 뛰어나고 위계 구조에서 한 단계 위라면 그나마 효과가 있을까? 이런 경우 자발적인 추종은 생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따를 수도 있으니 효과적일 수도 있다.
이런 위계의 효과가 뛰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동료에게 삼키기 힘든 빵을 먹으면 몸에 좋으니 먹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평소에 당신과 동료 사이에 관계가 어땠는지가 이런 먹기 힘든 빵을 건냈을 때 동료가 목넘김이 힘들어도 불구하고 그 빵을 먹을지를 결정할 것이다.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냉정한 평가가, 동료에 대한 평가가 아닌 결과물에 대한 평가임을명확하게 할 정도로 뚜렷하게 의사소통을 했다면, 그나마 효과적일 수도 있다.
칭찬 샌드위치, 칭찬 피자, 맛 없는 빵 중에서 사회적 관계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면, 가장 효과적인 건 확실히 맛없는 빵이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맛없는 빵을 먹게 하기란 쉽지 않다. 맛없는 빵을 사용한 의사소통은 의도한 것과는 다른 효과를 만든다. 당신의 불편한 메시지를 동료가 명확하게 접수할 수 있을 정도록 확고한 의사소통 채널을 확보하지 않으면, 당신이 던진 그 맛없는 빵을 언제가 당신이 먹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 순간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리라…
* 칭찬 피자란 말은, 칭찬 샌드위치를 보고 영감을 얻어 내가 만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