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며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내립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최소한 나에게는 최선이었음을 인정합니다. 최상의 선택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현재 내가 처해있는 상황, 내가 알고 있는 정보의 관점에서는 다른 선택을 내리기는 어려웠겠죠. 그런데 우리가 내리는 그 선택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것이 설사 시간이 지나서보니 성급한 결정이었을 수도 있고, 손해를 보는 결정일 수도 있었겠지만요.
그러나 생각보다 우리는 ‘틀린 생각’, ‘틀린 선택’을 내리는 것에 큰 공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틀리지 않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고,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자기 자신에게는 물론 상대방에게도 납득시키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최선이었어’, ‘어쩔 수 없었어’, ‘OO 때문에 할 수가 없었어’ 라는 말을 습관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자꾸 선택 내리기를 보류하기도 합니다. 전형적인 예가 직장에 관한 불만이죠. 내가 원하는건 이게 아니야, 이건 말도 안돼, 내 일을 시작해야 해. 라고 수없이 생각하고 다짐하지만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스스로 새로운 도전을 내리기보다는 현재 직장에 있는 것이 훨씬 좋은 선택임을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도전을 앞둔 사람에게는 ‘바깥은 찬 바람이 부니 조심하라’는 당부를 아끼지 않으면서 말이죠. 틀린 선택을 할 경우 리스크가 너무 크다면서요.
틀린 선택을 내릴 수 있고, 또 언제든지 그럴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는 왜 틀리지 않기 위해 필요이상으로 집착하는걸까요.
‘Being Wrong’의 저자 캐서린 슐츠는 ‘교육’에서부터 그 원인을 찾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를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린 아이들을 보면 ‘틀림의 분기점’을 쉽게 알아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잘못을 하거나 실수를 하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이나 불편함을 가지지 않습니다. 틀렸다는 것을 아는 순간 즉시 자신의 지식을 수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양상은 달라집니다. 주기적인 평가를 통해서 아이들은 ‘정해진 정답’을 말해야만 하고 틀렸을 경우에는 지적을 받고, 본인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열등하다는 것을 확인받게 됩니다. 기준을 넘을 경우에는 그것도 모자라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기 일쑤입니다. 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체벌은 틀림에 대한 두려움을 극대화하는데 그만이었습니다.
어렸을 때의 교육 뿐만 아닙니다. 사회적 가치 사슬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위 ‘사’자 직업들은 경제적 이익은 상관없다 하더라도 ‘사회적 명성’을 보장받는 것들입니다. 교사는 말할 것도 없고, 의사/변호사/검사/회계사 등은 그 자체만으로 위엄이 느껴집니다. 공무원과 같은 ‘원’자 계열도 있죠. 물론 회사원은 제외입니다 -.-; 가치사슬의 상위를 차지하는 이런 직업들의 공통점은 ‘틀리면 안된다’입니다.
캐서린은 틀리지 않음에 대한 집착의 진짜 문제는 ‘자신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자 애쓴다’라는 점입니다. 즉 사회적으로 정답을 강요하는 수준이 강하고 그것에 따른 가치사슬의 확립이 강력할수록 사람들은 역으로 자신의 행위는 옳은 선택임을 더욱 확신하는 경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한마디로 자신은 옳고 상대는 틀리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을 할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은 옳다라는 과신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많은 갈등들의 핵심과 왠지 닿아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정부의 무능과 부패에 관한 이슈들, 노사간의 갈등들, 사람과 사람들간의 갈등. 여러가지의 갈등들이 진실 그 자체보다 훨씬 강화되고 왜곡되어 상대방의 어떤 행위로 인한 결과 그 자체보다는 상대방의 인격 그 자체를 부정하고 그 사람의 인생 자체를 왜곡된 시선으로 평가해버리는 모습들은 그 갈등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막막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바야흐로 창조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정답이 아니라 새로운 발견, 새로운 인사이트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이는 것이 새로운 가치로 자리잡는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소셜미디어를 포함한 스마트 혁명들은 이런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죠. 내가 옳다는 확신이 아니라, 내가 틀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니라… ‘음… 모르겠는데? 내가 틀릴 수도 있겠는걸? 저 사람은 내 생각과 뭐가 다른거지?’라고 생각을 바꿔보는 거죠. 틀림을 인정하고 새로운 가치사슬을 발견하는 것의 핵심은 바로 ‘호기심’이니까요.
글 : 송인혁
출처 : http://everythingisbetweenus.com/wp/?p=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