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리테일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P&G 마케팅에서 일하던 약 4년 남짓의 시간동안 서울에 있는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를 비롯한 대형마트의 절반 이상은 돌아다녀봤을 것이다. 그 기업들의 본사에도 많이 들락거렸고, 그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보게 된다. 물론 대형마트 뿐 아니라, 그 외에 SSM이나 mom & pop (한국말로는 구멍가게) 라고 하는 스토어도 물론 백여군데 이상 가 보았다.
회사를 그만 둔 다음에는 업무적인 관점 외에도, 단순 쇼퍼(shopper) 입장에서도 많이 둘러보게 된다. 일본에 살던 동안에는 주로 7-Eleven과 같은 편의점이나 지역시장 위주로 쇼핑을 했고, 빅(비꾸) 카메라나 요도바시 카메라와 같은 전자 상품 리테일에도 ‘아무 일도 없이’ 일주일에 한번은 가서 그냥 둘러보곤 했다. 한마디로 리테일은 나의 일이자 취미인 셈이다.
심지어 나의 와이프도 P&G 마케팅 출신이어서, 우리는 주말에 집앞에 있는 홀푸드(the Whole Foods Market)이나 타겟(Target), 코스트코(Costco) 등을 가게 되어도 쇼핑 반, 스토어 평가 반의 시간을 보낸다. 집 주변 뿐 아니다. 해외 여행을 가도 우리는 꼭 마트에 들러서 그 나라의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사는지, 어떤 생활을 하는지 관찰하곤 한다. 마트의 사진을 찍는 것은 우리 여행의 일상이다.
그만큼 리테일에 대해서는 잘 안다고 자부한다.
방법이 틀렸다.
대형마트 강제휴업 문제가 불궈졌을 때, 나는 이것이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형마트에 강제휴업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 이유는 1) 대형 마트의 ‘횡포’(횡포라는 말이 무척 애매하긴 하지만)를 막고, 2) 지역상권을 활성화시킨다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나는 위의 두가지 목적이 현재 우리사회에 필요한 요소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우리나라의 대형마트들은 과점적 지위를 이용해서 많은 공급업체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 사실 자체가 나쁘지는 않다. 그들은 기업이고 그들 스스로의 이익극대화를 위해서 노력할 뿐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역시장의 상인들이 대형마트에 대부분의 손님들을 빼앗기고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가 우리나라의 부의 분배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부가 대기업 중심으로 분배되어 있고, 영세한 상인들은 화려한 경제성장 속에서도 소외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 우리사회에서 해결되어야 할 이슈이다.
하지만 그 해결 방법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대형마트와 재래시장, 다른 세그먼트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다시피 대형마트를 강제휴업시킨다고 해서 그 shopper들이 재래시장으로 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형마트의 휴무일을 피해서 대형마트를 더 이용할 뿐이다. 영업시간을 제한한다고 해서도 해결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생활을 불편하게 만들 뿐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생겨나는 유일한 혜택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대형마트 직원들이 그나마 조금의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뿐이다. (몇몇 사람들이 통계 데이터를 들이대면서 재래시장 매출이 늘었다고 하는데, 말도 안된다. 최소한 충분한 시간과 sample size가 확보된 다음에 통계적으로 늘었는지를 판단하자. 시행한지 한두달만에 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기업의 대형마트 체인이 중소 기업인 공급업체들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것 또한 이런 방법으로는 해결이 안된다. 이미 대기업의 대형마트 체인에 물건을 공급하는 사람들은 대형마트와 한 배를 탄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이러한 중소 공급업체들 중에는 지방의 농/림/수산업에 종사하시는, 어쩌면 재래시장 상인들보다 더 보호를 받아야할 분들이 많이 속해 있다. (이마트나 롯데마트의 바이어 상담실에 가보면 이분들의 절박한 실상을 잘 볼 수 있다.)
나의 짧은 마케팅 경력상으로는 대형마트에 가는 shopper들과 재래시장에 가는 shopper들은 전혀 다른 사람들이다. demographics도 많이 다르고, 소득이나 psychological segmentation 상으로도 많이 다른 사람들이다. 심지어는 양쪽을 모두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들이 대형마트에 가는 니즈와 재래시장에 가는 니즈는 전혀 다르다. 그러니까 한쪽을 누른다고 다른 한쪽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효과는 전혀 다른 두 segment 에서는 성립할 수 없다.
문제는 재래시장에 주로 가는 segment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꾸만 대형마트로 옮겨간다. 그것이 문제다.
나라면 재래시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왜 재래시장을 이용하는지를 분석할 것이다(Driver Analysis). 아마도 재래시장에 가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지역상인들과의 오랜 관계를 통한 신뢰때문이거나, 상인들과의 bargain이 가능해서 가격을 깎거나 양을 더 요구하는 것이 가능해서이거나, 대형마트에서는 살 수 없는 다양한 특산물을 싸고 신선하게 고를 수 있기 때문일것이다. 그렇다면 되는 이유를 더 강화하는 것이 맞다.
물론 재래시장에 가지 않는 이유, 즉 pain point를 따져 봐야 한다. 아마도 주차장, 배송, 품질보증, 카드결제와 같이 대형마트에서는 제공하지만 전통시장에서 제공하지 않는 서비스들 때문이리라. 그러면 이런 것들을 확충해 주는데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재래시장은 마케팅 능력이 떨어진다. 대형마트는 수많은 돈을 쏟아부어서 TV광고도 하고, 연예인들을 활용한 PR 활동등도 많이 한다. 제조업체에서 신제품이라도 론칭할 때면 대형 스타들을 불러서 싸인회도 하고, 각종 사회활동도 많이 한다. 재래시장의 마케팅과 PR 측면을 정부에서 보조하는 방법을 활용하거나, 정부에서 나서서 재래시장의 마케팅을 도와주는 방법을 고려해 봄직 하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해봤다고 말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정부나 재래시장의 마케팅 능력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럼 일본을 한번 보자. 일본의 재래시장 – 메인스트리트 전략과 유통망 장악
일본의 경우에는 재래시장이라고 말하기는 뭣하지만, 지역 상권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다. 지역마다 Main Street 개념의 상점가가 항상 있다. 일본에 여행을 가 본 사람이라면 한줄로 쭉 이어진 상가들이 있고, 그 위는 천막등의 지붕이 뒤덮고 있는 상점가를 많이 봤을 것이다. 이러한 지역 상점가는 특히 농수산물이나 지역 특산물 등을 판매하는 곳이 많은데, 현재까지도 꽤나 발달되어 있다.
메인 스트리트를 활용하는 것은 매우 좋은 전략이다. 우리나라도 대표적으로 명동이나, 지방에는 청주 등에 가면 이러한 일제시대의 메인 스트리트들이 남아 있는데, 이러한 형태는 지역상권의 정립에도 도움이 많이 되고, 관광객들에게도 어필하기 쉽다. 단순하게 재래시장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패스트푸드점이나 잡화점, 레스토랑 등도 함께 입점해 있는 경우가 많아서 많은 사람의 다양한 니즈를 만족시킨다. 그리고 걸어가면서 한번에 쭉- 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대형마트에서의 미로찾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이렇게 메인스트리트가 정립되어 있으면 그 상권내의 업체들이 한꺼번에 마케팅을 하기도 쉽다. 아무튼 지방정부에서 고려해볼만한 전략이다.
두번째는 유통망의 장악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일본에서는 외국의 대형 유통체인 – 월마트, 까르푸 등등 -이 시장에 진입하는 족족 실패했다. 그 이유는 전통적인 농수축산물의 유통망을 전통시장에서 내놓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테일도 결국은 유통망의 끝단일 뿐인데, 그 앞단의 도매 단위에서의 관계형성이 너무 오래 지속되었고, 너무 강하게 형성된 탓이다. 우리나라는 도매 수준의 유통망이 대형마트로 돌아선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가 만약에 재래시장을 활성화 한다면 단순히 대형마트만 규제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유통에서의 서포트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청과 등의 도매업은 면허(라이센스)제도로 운영되는데, 서울에 들어오는 모든 청과는 10군데 이하의 라이센스 업체에서 도매를 한다. 그런 업체 중에서 한두군데만이라도 재래시장만 상대를 할 수 있게 하거나, 몇몇 업체를 추가로 허가를 내줘서, 재래시장 전용의 도매업체를 만들어 주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너만 없어지면 정의가 이룩된다” 는 사고방식 버려야
이 모든 것이 정치인들이 재래시장의 표를 몇표 더 얻어보겠다고 눈가리고 아웅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은 최근에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가 위법으로 결정난 것에 대해서도 이미 어느정도는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누가 뭐라고 하면 ‘최소한 우리는 시도는 해 봤다’ 라는 면피용으로 말이다.
개인적으로 부의 재분배와 특히 재래시장 상인과 같은 분들이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보다 근본적으로 재래시장을 활성화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좀 생각해 봤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우리 사회의 최근의 담론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정의에 대한 담론이다. 최근 몇년간 우리 사회에서 ‘정의’라는 키워드는 너무나 HOT 이슈가 되었고,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책이 전세계 유례없이 히트한 것만 보아도 이러한 정의에 대한 갈망의 반증이 되고 있다.
하지만 마이클 샌델은 정의가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는 정의에 대해서 무엇을 생각해 보아야하는지를 함께 짚어봐 주는 사람, 즉 정의에 대한 Debate에 있어서 최고의 moderator 일 뿐이다. 정답이 없는 문제라는 이야기이다. (정의의 문제에 정답이 있어도 웃기지 않겠는가?)
MB정권이 없어져야… (그 이전까지는 노무현 정권이 없어져야..)
대형 마트가 영업을 못해야….
재벌이 해체되어야…..
수구꼴통이 없어져야…
종북좌파가 사라져야….
조선일보가 망해야…
… 그래야 이 땅에 정의가 이룩된다.
라고 믿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
누군가가 죽어 없어져야만, 그래야만 정의가 이룩된다는 것은 극단적이고 건설적이지도 못하다.
다른 한쪽의 손과 발을 묶는 것이 쉬운 답일 것이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답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 그런 답은 틀린 답인 경우가 많다.
재래시장과 대형마트는 서로의 갈 길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쪽의 손과 발을 굳이 꽁꽁 묶어두지 않더라도, 함께 잘 될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대형마트를 규제하기 전에, 재래시장의 비전과 역할에 대해서 전략적인 사고를 해 봤는지, 그에 따르는 충분한 서포트가 있었는지 한번 반성해 보자.
글: MBA Blogger
출처: http://mbablogger.net/?p=4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