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마다, 도시마다 제2의 실리콘밸리를 어떻게 하면 만들까 라는 고민을 한다. 이는 우리나라만 아니라 유럽이나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흔히들 그래서 실리콘 밸리의 성공요인이 뭔지 분석하고 그걸 다시 재현해 보려고 노력한다. 스탠포드 출신과 이민자들을 기반으로 한 인력, 미국 총 벤처자본의 1/3이 몰린다는 자본, 미국이라는 단일 거대 시장, 모든 나라들이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참고하기에 가능한 전 세계로의 확장성, 좋은 날씨와 생활수준 (그러나 무지하게 비싸다는..!) 등등. 아마 실리콘밸리 성공요인에 대한 분석은 수백번도 더 되었으리라. 하지만 아무리 실리콘밸리의 성공요소를 뽑아내도 실리콘밸리 또하나 카피해서 만들수 있을까? 그건 아마 불가능하지 싶다. 여러가지 눈에 안보이는 요소들 (intangibles) 도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형성된 이곳만의 문화라는 것은 다른곳으로 복제되기 힘들거라고 본다. 나도 이제 막 이곳 문화를 배워가는 입장에 불과하지만, 때로 이런건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여기서 살아보고 체험해 봐야 느낄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는 듯.
일례로 여기서는 스타트업 창업이 그냥 사회의 자연스런 일부다. 스탠포드앞 University Avenue에 가서 아무 카페에나 점심시간쯤 앉아있으면 사방에서 노트북 펼치고 피치(pitch) 하는 소리가 들린다. 농담삼아 비즈니스 하고 싶은데 아이템이 없으면 거기서 한시간만 앉아서 귀 기울이고 있으면 왠만큼 배울수 있다고 할 정도. 아마 다른 지역에서는 이러한 광경이 펼쳐지는 빈도수도 여기보단 적을것 같고, 이런 광경을 보고 느끼는 느낌도 이곳 사람들과 다를것 같다.
여기선 그러한 스타트업 문화를 완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게, 워낙 많은 사람들이 창업에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헐리우드 가서 배우 지망생 마주친다고 해서 화들짝 놀랄 일도 아니거니와, 뉴욕에서 바바리 코트에 정장 입고 택시 잡아타려고 기다리는 뱅커 타입을 만난다고 해서 깜짝 놀라지도 않는 것처럼, 이동네 사람들 그냥 창업을 너무 당연히 여긴다.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startup entrepreneur라고 대답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social status가 이곳과 다른 곳은 확실히 다를것 같다. 또는, 직장 잘 다니는 사람이 어느날 창업한다고 하면 다른곳 같으면 너 제정신이냐 할수도 있겠지만, 여기선 그냥 “어 그래? 축하한다, 잘될꺼야” 이러고 넘어가는 수조차 있다. 이런 차이때문에 오히려 사람들도 창업에 대한 멘탈 부담이 덜한것 같고 그래서 더 창업을 많이 하는 선순환 구조가 생기는게 아닐까?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도 앞으로 5년뒤에 뭐할것 같냐고 물으면 대부분 “글쎄, 뭔가 창업이나 내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보통 성공의 기회가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고, 그래서 상당히 (때로는 놀라울 정도로) 관대하다. 일견 경쟁관계처럼 보이는 회사 사람들도 (겉으로만 그런건지도 모르지만) 자주 만나서 정보 교환도 하고 서로 도움도 주고받고 그런다. 사람들 소개해 주는 문화도 한국만큼 앞뒤 재는것 같지는 않고, 때로는 요청한것 이상으로 나서서 남들을 도와주려는 사람들도 있는것 같다.
뭐 이곳 사람들이라고 해서 천성이 거룩해서 그럴것 같진 않고^^ 뭔가 론 콘웨이나 리드 호프만처럼 무조건 한 10년 남들 도와주다보니 자기도 어느덧 실리콘밸리의 대부로 우뚝 선 그런 사례들을 알고 있어서 그럴게다. 그리고 여기도 사람 사는 사회니까 다들 각자의 이익에 따라 움직일 거고, 엔젤 투자가가 선뜻 10만불 수표 그자리에서 끊어주더라, 이런 이야기는 그렇게 해서 대박낸 사례가 전에 있었으니까 자기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것 아니겠나.
아무튼 어찌 되었든 간에 실리콘밸리에는 그렇게 남들에게 도움받고 그걸 또 돌려주는 소위 “pay it forward” 문화가 자연스레 형성되어 있는것 같다. 그와 연관되서, 멘토 네트워크가 참 잘 형성되어 있는것 같다. 인텔의 앤디 그로브가 스티브 잡스를 멘토링해 주었고 스티브 잡스가 마크 주커버그를 멘토링해 주었다는 스토리들도 있고. 비슷한 인종이나 배경을 갖춘 사람들끼리 서로 끌어주는게 당연시 되기도 한다. 인도계 네트워크는 이곳에서 절대 무시 못하고, 인도사람들이 차린 회사에서 미국 비자를 다른 인도사람들에게 발급해 주는 일이 흔하다. 그리고 구글에서도 세르게이 브린과 맥스 레브친은 둘다 우크라이나 유태인 출신이라서 서로 꼭 붙어다니더라. 거기에 대해서 문화적 배경이 서로 비슷한 팀이 코어가 되서 일할때 가장 성공 확률이 높은거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밸리에서 한인 네트워크가 더 강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창업쪽)
암튼 이런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문화들은 다른 곳으로 복제되기 힘들것 같고 따라서 제2의 실리콘밸리를 만든다는 것은 힘들지 않나 싶다. 마치 PC를 이긴건 더 나은 PC가 아니라 아이패드와 모바일 기기였던 것처럼 실리콘밸리가 아니라 실리콘밸리보다 더 나은, 다른 무언가를 만드는게 더 나은 전략일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서울만의 강점과 문화적 배경을 최대한 살리는게 좋은 전략일 거다. 그런 면에서 서울은 뉴욕에서 배울 점이 무척 많은것 같다. 광고와 패션, 금융과 출판의 중심인 뉴욕은 그러한 백그라운드를 최대한 살려서 지금은 실리콘밸리에 필적하는 커다란 벤처 허브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코넬-테크니온 뉴욕 캠퍼스 계획을 보면 스탠포드가 실리콘밸리에서 했던 역할 이상이 기대될 정도. 아무튼 여러면에서 뉴욕이야말로 서울이 배우고 벤치마킹할 점이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글: 김창원
출처: http://www.memoriesreloaded.net/2012/06/blog-post_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