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난 ‘수우미양가’로 평가받는 성적표를 받았다. 당연히 ‘수’가 학업 성적이 좋다는 뜻이고, ‘가’는 성적이 나쁘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성적표를 받으면 당연히 ‘수’를 몇 개 받았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시험을 못봐도 ‘수’를 받고 싶던 당시엔, ‘수우미양가’가 무슨 뜻인지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한참 지나고 나서, 난 ‘수우미양가’의 참뜻을 알았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참 놀랐는데, ‘수우미양가’ 중에서 하나도 버릴만한 성적이 없기 때문이다. 수는 빼어날 ‘수’다. 즉 말 그대로 뛰어난 실력이란 뜻이다. 우는 넉넉하다고 말할 때 ‘우’다. 미는 아름다울 ‘미’지만, 괜찮다 정도로 해석하면 될 듯싶다. 양은 양호하다의 ‘양’이고 마지막으로 모든 이가 싫어하던 가는 가능하다의 ‘가’이다.
‘수우미양가’는 과거 성적의 서열화를 추구하던 교육의 상징이었는데, 참 그뜻은 심오하여 만민이 다 잘한다거나 잘할 수 있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결과는 중요하지 않으며 과정이 중요하다고들 말하면서, 실제로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반성하자면 나도 그럴 때가 있다.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것만큼 성공할 때가 몇 번이나 있을까? 손에 꼽힐 것이다. 이것을 떠나서 자신이 스스로 만족할 수준의 결과를 얻을 때도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다들 성공하길 원한다. 하지만 자신이나 타인이 인정하는 성공을 거머쥐기 위해서는, 수 십 번 혹은 수 백번의 실패를 해야 한다. 그게 세상의 법칙이고 삶의 법칙이다. 그렇기 위해서, 실패와 친해져야 한다. 그렇다고 좋은 게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패마다 나름의 결과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그 기준이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이어서는 안된다.
바로 초등학교 때 받은 성적표의 수우미양가처럼, 서열이 아닌 의미관점에서 우리의 결과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완전한 실패는 성공의 가능성을 본 것이고, 진짜 홈런은 가감없이 성공의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