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비즈니스맨, 스티브 잡스
비즈니스맨과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는 너무 명확한 사업가인데, 이 두 단어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장실에 앉아서 숫자 가득한 결재판에 싸인하는 모습보다는, 차라리 종교단체에서 설교하고 있는 모습이 더 잘 어울린다.
매킨토시를 통해 PC 시장을 만들고,
Pixar 를 통해 에니메이션 시장을 만들고,
iTunes 을 통해 음악 유통채널을 장악하고,
AppStore 와 iPhone 을 통해 모바일 디바이스와 그 S/W 의 유통채널을 뒤흔들더니,
본인이 만든 PC 와 스마트폰 시장의 가운데 시장인 태블릿 시장까지 만들어버린
스티브잡스.
그의 가장 유명한 어구 중 하나인, ‘인문학과 기술의 만남’
‘인문학’ 과 ‘혁신’ 을 뺀 비즈니스맨 스티브잡스는 어떤 모습일까?
#1. 매킨토시의 몰락
애플I 으로 시작된 PC 컴퓨터를 만들었던 시절, businessman 측면에서 보았을때 스티브 잡스는 형편없었다.
사실, 워즈니악의 고안을 사업화 시킨것도 스티브 잡스고, 애플I 을 만들때도 인텔에 전화 한통으로 D램 칩을 얻어올 정도로 수완이 좋기도 했다. PC 시장을 만든 것은 물론이고, 제록스에서 개발해놓은 PARC GUI 도 가져다가 매킨토시에 올린 것도 훌륭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혁신적인 발상을 통한 시장 수요로 많은 것이 용서되었지만, 그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빌게이츠는 GUI 의 미래를 알아봤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에 탑재시켰다. 애플은 도둑질이라고 주장했지만, 애플과 제록스 것을 도둑질 한 것이었고, 법적으로도 하자는 없었다. IBM 은 PC 시장에는 뒤늦게 진입했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어느정도 우위에 있었고, 아키텍처를 개방하면서 많은 제조사들이 IBM PC 를 만들 수 있게 했다. ( 지금의 안드로이드가 생각나는 장면이다. )
하지만 스티브잡스는 제품의 품질 이나 원가보다는 디자인에 지나치게 신경을 썼다. 정밀한 기계에 색깔이 싫어 페인트를 덧입혀 회로를 손상시키거나, 리사컴퓨터에는 완벽함을 추구하기 위해 엄청난 개발기간과 초화 부품을 통해 1만달러(현재 가격 2천만원 상당)의 가격으로 시장에 내놓았고 참패했다. 1바이트 미만의 text 중심의 PC시장에서, 지나치게 우하한 폰트를 쓰려고 20~30배의 메모리를 사용했고 ( 너무 앞서갔고 ), 리사는 1,000KB 램을 내장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지만, 가격의 시장성을 잃었으며, 매킨토시는 128KB 램을 통해 심각하게 느린 속도를 만들었다. 또한 소리 나는 것이 싫어서 냉각펜을 없애, 부품이 쉽게 고장났으며, 디자인상 하나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만을 보유함으로써 사용자들에게 불편함을 줬다. ( 이것도 너무 앞서갔다. )
이러는 동안 스티브잡스는 사내정치를 하면서(?), 본인의 영향력에 신경쓰느라 차마 이런 점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 정치에서의 패배로 스티브 잡스는 쫒겨나고, 한동안 고수익에 취해있던 애플은 차차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2. Think Profit
모두다 아는 것처럼 그 후, 넥스트와 픽사를 거친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와 애플의 합병을 통해 다시 애플의 CEO 로 복귀를 하게 된다.
“화려하고 예술적인 것에 집착해 돈을 잃지 마라, 무엇보다 공급망을 확실하게 통제하라, 과잉생산을 하지 마라.”
1997년 애플복귀 직후 스티브잡스가 한 말이라고 한다. 제품개발에만 치중했던 창업 애플시절과는 달리 넥스트에서 생산에서 유통까지 모두 경험 해 본 내공이 잘 나타나는 한마디다.
말 뿐은 아니었다.
제품의 70% 를 없애면서 제품라인을 간소화하고, 개발중이던 새로운 운영체제의 기능을 제거하고, 제조라인 역시 외부 위탁하면서 첫해 3,000명 이상을 해고했다. 2개월 치가 넘게 싸여있던 재고를 1개월로 줄인 것은 물론이고, 팀쿡을 채용 한 후 이 재고는 6일치를 넘어서 2일치까지 줄어들었다. 최저 15시간어치만 보유한 적도 있다고 하니, 정말 어마어마한 경영 효율화가 아닐 수 없었다. ( 재고를 감소시키는 것은, 단순히 C/F 상 유리한 것이 아니라, 재고관리를 하는 창고를 없앨 수 있고, 재고 관리비용도 줄이며, 부실재고의 위험도 줄어들고, 제품의 최신화를 이룰수 있다는 점에서 비용절감에 큰 역할을 한다. )
또한, 복귀와 함께 빌게이츠에게 전화를 걸어, 사용자 인터페이스 지적재산권과 익스프롤러 설치를 조건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애플 투자와 함께 오피스의 공급을 요청하면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사용자를 위해 자존심을 굽히는 모습’ 도 보여줬다.
스티브 잡스의 복귀 후 첫 맥월드 행사의 마지막 프리젠테이션 화면이었다. CEO 복귀후 1년도 되지않아, 연간 10억달러가 넘는 적자를 기록하던 애플이 분기 흑자로 돌아선 것이다.
#3. iPod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스티브잡스 면목이 제대로 들어났던 시기는 iPod 때였다.
당시 냅스터나 한국에서는 소리바다를 기반으로 한 CDP 와 CD 형 MP3 ( MP3 CDP ) 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CD 형을 대체할만한 MP3 로는 하드형과 플래시형 MP3 가 고려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의 레인콤(이하 아이리버)나 코원은 플래시형 MP3 를, 스티브잡스의 애플은 하드형 MP3 를 통해 시장에 진입하고 있었다.
2002년 베스트바이를 뚫고 미국시장에 진출한 아이리버는 이노디자인과 함께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세계 점유율 11% 를 차지하며 CDP 와 MP3 시장의 강자로 활약하고 있었다. 당시 플래시메모리 공급과잉으로 가격까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이익율은 30% 가 넘어섰고, ‘Sorry Sony’ 를 외치던 아이리버의 파격적인 광고는 실제 판매댓수에서 소니를 제치며 현실이 되고 있었다.
적은 용량이지만 가볍고 휴대하기 편함을 무기로 하는 플래시형 MP3 의 용량은 점차 늘어나고 있었고, 큰 용량이지만 휴대가 불편했던 하드형 MP3 의 크기는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달랐던 두 MP3 시장이 하나가 되어 격돌하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승부수를 던진 쪽은 아이리버였다. 2004년 한국에서 시험을 마친 5GB 의 아이리버의 첫 하드형 MP3, H10 을 미국에 출시 한 것이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가 2005 CES 에서 직접 시연을 했을 정도로 전 세계적인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아이리버가 소니와의 승리에 취해, 배우가 사과를 먹는 광고를 하며 100억이 넘는적극적인 마케팅을 시도한 것도 이 때였다.
시장에 내놓은 H10 의 반응은 좋았다. iTunes 의 견제를 받던 냅스터는 슈퍼볼 경승전의 자신의 광고에 H10 을 노출시키며, iPod-iTunes-Mac 을 견제할 아이리버-MS-냅스터 로 이어지는 반 애플 진형 체재를 국건히 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5년 초, 애플은 아이팟 셔플에 이어, 아이팟 나노를 내놓으며 전세를 단숨에 뒤집었다.
청바지에서 아이팟 나노를 빼는 스티브잡스의 화려한 쇼맨쉽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셔플 512MB 12.5만원, 1GB 19만원, 나노 2GB 23만원, 4GB 29만원. 같은 용량의 아이리버 제품의 반값에 내 놓는 파격적인 가격할인을 선보였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아이리버의 첫 하드형 MP3 였던 H10 의 하드디스크에 문제가 생겼고, 대박을 예견하며 초기 200억어치나 구입한 하드디스크 드라이브와 그 하드디스크로 만든 H10 은 모두 재고로 남게 되었다.
MP3 시장에서 승리한 애플은 iTunes 의 비호아래 iTunes > iPod > iPod Touch > iPhone > AppStore > iPad 로 이르는 S/W 와 H/W 를 넘나드는 환상적인 시나리오와 함께 세계 최대의 기업이 되었고,
iPod 에게 무참히 패배한 아이리버/코원 등의 한국 MP3 업체는, 초 저가시장에서 싸우거나, PMP 로 진출하여 새로운 동력을 모색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그마져 잠식되어 심각한 경영악화에 이르르게 된다.
#4. iPod 승리의 비결
iTunes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은 iTunes 를 통해 음악 유통의 혁신을 가져오고, iPod 의 편리한 UI 와 화려한 디자인으로 시장을 점령했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에 그것은 나중에 뒤돌아봤을 때이고, 당시 이 점은 생각만큼 크게 문제되지 않았을 것 같다.
냅스터도 있었고, MS 의 Zune 도 있었고, 다른 컨텐츠 프로바이더도 있었다. 디자인은 아이리버의 트레이드마크였고, UI 도 횡스크롤로 어느정도 따라하기는 했었다. 물론 엄청 큰 이유라는 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내 생각에는 아이리버 제품의 반값에 내놓은, 가격경쟁력 때문이었다.
#4-1. 삼성전자에게 대량구매를 보장하며 할인된 가격에 받아온 플래시메모리
당시 큰 논란이 됬지만, 어쩔 수 없다. 대량구매를 했을 때의 risk 를 애플은 감수했고, 다른 회사는 감수하지 못했을 뿐이다. 애플은 한번의 risk 감수로 추후에도 대량구매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고, 다른 회사는 그 기회를 놓쳤다.
플래시메모리는 통상 MP3 원가의 60% 를 차지하는 것으로, 애플은 이와 같은 대량구매를 통해 플래시메모리를 총 원가의 30% 까지 떨어뜨렸다.
아이리버가 플래시메모리 60%, 나머지 40% 를 통해 MP3 를 만드는 동안 애플은 플래시메모리를 30% 로 가져옴으로써 아이리버의 70% 의 가격으로 생산을 할 수 있었다.
#4-2. 자체 유통망을 통한 유통마진 우위
당시 아이리버는 베스트바이를 통해 미국 시장에 진출해 있었다. 초기 진출 당시 세계적인 브랜드만 진열해놓는 베스트바이를 뚫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업계에 큰 파장이었고, 실제로 베스트바이를 통한 진출은 국내시장에 머물던 아이리버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어주는 계기가 됬다. 이러한 상황이었으니, 베스트바이와의 협상을 통한 유통마진을 신경쓸 여유는 아이리버에게 없었다.
하지만, 애플은 달랐다. 미국 전역에 600 개가 넘는 자체샵을 보유하고 있었고, 아이팟 미니의 출시와 함께 미국에 아이팟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베스트바이는 일반적인 유통마진에 비해 1/3 정도의 마진으로 아이팟을 공급했다.
일반적으로 30% 정도의 유통마진을 붙여, 생산과 함께 130% 의 가격으로 아이리버가 생산/유통을 하는동안, 애플은 70% 로 생산을 하고, 10% 의 유통마진을 붙여 77% 의 가격으로 생산/유통을 한 것이다.
이곳에 각 30% 정도의 마진을 붙여서 판다고 가정하면, 아이리버 169% vs. 애플 100% 로, 아까 말했던 얼추 ‘반값’ 이 되는 것이다.
#4-3. 플러스 알파들
SCM(공급망 관리) 단 하나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올라선 ‘델’. 하지만 SCM 순위에서 델은 항상 2순위이다. ( 2순위 밖으로 밀려난 적도 몇번 있긴 하다 ) 1순위는 다름아닌 애플이다. 공급망관리로는 두말할 것 없는 국내 최고이고, 세계적인 수준인 삼성보다도 재고회전율이 3배가 높은 애플.
사실 이것에는 팀쿡의 역할이 지대하다.
남들이 다 하는, 하지만 더 제대로 하는 제품의 특성에 따른 일본-중국-대만-말레이지아-인도네시아에 걸친 글로벌 아웃소싱 + 2차소싱
타이트한 공급망에 완벽에 가까운 재고관리
거기에 단품전략을 통한 한정된 라인업으로 더욱 효율성 강화시켜, ‘진짜 반값 생산’ 을 실현한 것이다.
한번 기울어진 추는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혁신’ 만 있었던 창업애플시절에는 낮을 원가의 copycat 들의 등장으로 다시 반대쪽으로 기울어져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혁신’ 에 ‘원가경쟁력’ 을 더한 이상 적수는 없었다.
1등의 chicken game 에 2등 이하의 player 들은 모두 초저가시장에서의 그들만의 전쟁을 시작했고, 애플은 시장의 70~80% 를 지배하기 이르렀다.
#5. 혁신
내가 바라보는 애플의 turning point 였던 iPod 의 승리는 혁신을 통해 영웅이 이기는 흔해빠진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원가를 절감하고 가격을 싸게 내놓아 시장을 점령했다는, 더욱더 흔해빠진 이야기이다. 하지만 엄청나게 실행하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패턴은 iPhone 과 iPad 에서 고스펙으로도 동일한 가격 출시, 전 모델의 파격적 가격인하로 같은 시나리오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말 혀를 내두르게 한다.
과연 기업가가 ‘혁신’ 과 ‘경영’ 중에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그 하나는 ‘혁신’ 일까?
‘혁신’ 이라는 피상적인 단어로만 표현되기에 스티브 잡스는 너무 저평가 되있는 것은 아닐까?
글쓴이: 디피
출처: http://www.dongpyo.com/blog/?p=2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