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대기업 할인마트가 동네상권을 몰락시킨다는 아우성에 정부는 할인마트 영업을 규제하기에 이르렀다. 동네상권의 몰락은 동네마트 뿐 아니라 동네책방도 마찬가지다. 한 동네에 한 개쯤은 있었던 동네책방은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의 확장에 따라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고, 급기야 “동네서점”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할 지경에 이르렀다. 동네상권의 몰락이라는 참담한 현실 속에서 생겨난 지 불과 1년 6개월 된 동네책방 땡스북스는 홍대 1호점, 가로수길 2호점에 이어 오는 8월 삼청동길 3호점을 오픈할 예정이다. 모두가 책방문을 닫는 시절, 나홀로 확장세를 이어가는 땡스북스의 비결은 이기섭대표가 살아온 삶의 이력에 온전히 녹아 있다.
점이 모여 선을 이뤘다, 내 인생
학창시절 이대표는 “생각 가는 대로 몸이 가는” 학생이었다. 생업을 꾸리느라 바쁘셨던 부모님은 아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할 겨를이 없었고, 아들은 “좋은 짓, 나쁜 짓”을 막론하고, 또래 아이들이 하는 짓은 다 해보는” 그러나 “부모님께 대놓고 표시하지 않는” 그런 학생이었다. 부모님의 방목으로 이대표는 자연스레 사소한 것에서부터 진로결정에 이르기까지 본인이 선택해 결정했고, 이로 인해 이대표는 일찌감치 “홀로서기” 근력을 단련시킬 수 있었다. 이후, 홍익대학교 미대에 진학해 미술학원 강사로 일하며 경제적인 자립까지 이루고 보니, 일찍이 발달시켜 왔던 홀로서기 근육은 더욱 단단해졌다.
1) 업보다 맘이 먼저다
이대표의 업력을 살펴보면,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하고, 최선을 다해 일해 온 갈짓자 행보가 눈에 띄게 도드라진다. 대학졸업을 앞두고 있을 무렵, 이대표는 친구들과 함께 “홍익미술”이라는 잡지 만들기에 빠져있었다. 프로페셔널이 아닌 아마추어 대학생들이 만든 잡지였지만, 전자출판 양식을 도입해 미술전문잡지인 “월간미술”보다 수려한 편집을 뽐내며 종래 학술지 양식과는 다른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비록, 잡지 작업에 몰두하느라 취직도 미루고 졸업 후 6개월 동안 백수라는 신분으로 살게 되었지만, “남 보기 어떻다” 가 아닌 “내 맘이 원한다”는 기준에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다. 대학생들이 해낸 작업이라고 믿을 수 없는 결과물 덕에, 이대표는 대표적인 디자인스튜디오인 홍디자인으로 부터 러브콜을 받아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2) 일을 통해 배우다
첫 직장이었던 홍디자인은 이대표가 “디자인에 관한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훌륭한 배움터였다. 1990년 중반 무렵은 우리나라가 높은 경제성장율을 보이던 시절이라 디자인영역에 대한 수요가 넘쳐났다.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넘쳐나는 일 더미 속에서 살아가는 세월이 2년 정도 쌓이고 보니, 쉼표를 찍어주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택한 결정이 “시카고미술대학 입학” 이었다. 그런데, 학기를 시작할 무렵,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툭 튀어나왔다. IMF를 맞아 고환율폭탄이 터지면서 갑자기 학비가 4배가 되었던 것이다. 그 정도의 비용까지 지불하며 학업을 진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던 터라, 이대표는 해외봉사프로그램에 눈을 돌렸다. 따지고 보면, 그의 유학목표도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이었으니, 학업이 아닌 봉사와 여행을 통해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후, 이대표는 2개월을 키부츠에서, 4개월을 중동지역 여행으로 보내며 다양한 경험,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편견 없이, 융통성있게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되었다.
3) 마음을 열면, 기회가 보인다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IMF의 위기를 극복한 대한민국은 벤처열풍에 휩쓸려 있었다. 디자인작업을 한 이대표의 눈에도 인터넷시대는 디자이너에게 새로운 기회를 안겨주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허나, 인터넷영역은 종래 해오지 않은 영역인 터. “일을 통해 배운다”는 그의 원칙대로 “일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직장”을 수소문했다. 그렇게 해서 1999년 합류하게 된 회사가 미래랩이라는 인터넷 비즈니스모델 인큐베이팅 회사였다. 이대표는 미래랩에서 그래픽디자인과 브랜드 인큐베이팅작업을 맡아 진행했다. 이대표가 합류할 당시만 해도 15명에 불과하던 구성원이 불과 1년 새에 200명으로 늘어났으니, 당시 우리사회를 휩쓸었던 벤처열풍을 느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래랩은 거침없는 성장세를 보이더니, 급기야 2000. 3. 문구제조 브랜드인 바른손을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33살이던 이대표는 새롭게 인수한 바른손의 이사로 발령받아 브랜드개발작업에 투입됐고, 세계 곳곳을 돌며 보고, 듣고, 느끼면서 신규비즈니스 개발사업을 맡아 진행했다. 그러나, 거품은 피어오르는 속도는 물론, 꺼지는 속도도 빨랐다. 벤처거품의 몰락과 함께 회사가 매각되면서 이대표는 회사생활을 정리한 후 그간의 비즈니스 경험을 바탕으로 친한 선배들과 함께 디자인스튜디오를 운영하게 되었다. 업계에서 어느 정도 평판을 얻은 이들로 구성된 스튜디오는 굳이 일감을 따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의뢰 받은 일감만으로도 운영이 가능해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했고, 회사가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생겨났다.
그렇게 마음의 여유와 경제적 여유를 제공하던 스튜디오 운영을 6년째 이어가던 중 이대표는 또 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아들이 태어나면서 육아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싶었고, 그간 묻어두었던 동화책 작업을 위해 전업작가의 길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즐거워서 시작했다, 땡스북스
동화책작가에게 서점은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더욱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기분 좋게 들러 책도, 사람도, 문화도 경험할 수 있는 동네책방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가 홍대언저리 주민 이기섭대표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소망은 그리 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다. 홍대 앞 상권은 갈수록 임대료가 높아지면서 일개 개인이 무슨 일을 벌여보기에는 진입장벽이 너무 높았던 것이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큐레이팅을 하며 전시를 돕던 미술관의 건물주로부터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든다면, 임대료를 조절해 줄 수 있다”는 제안을 받게 된 것이다.
오랜 기간 즐거운 동네책방을 갈망해 왔던 터라, 이대표는 빛과 같은 속도로 동네책방 오픈 작업을 진행해 갔다. 여윳돈이 많지 않은 터라 인테리어는 최대한 심플하게 구성했고, 서점에 필요한 약간의 가구는 전시공간이 없는 온라인 가구매장의 쇼룸 역할을 해 주겠다 하여 들여왔다. 수익원을 다양화하기 위해 음료판매대와 함께 예쁜 문구도 배치했고, 책을 좋아하는 디자이너들을 영입해 북디자인스튜디오도 함께 꾸렸다. 이렇게 만들어진 땡스북스에서는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미니전시회는 물론 북포럼이 진행된다. 이렇게 넓지 않은 공간에서 알콩달콩 문화향기가 끊임없이 새어 나오고 보니, 각종 언론은 동네책방, 땡스북스의 부활을 부지런히 전했고, 홍대언저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찾아보아야 할 명소가 되었다.
불과 1년 6개월 만에 지속가능성을 만들어내고, 3개의 직영점을 두게 된 땡스북스는 “시대가 저버린 아이템”이라 하더라도, 지식과 경험을 더해 만들어낼 “틈새는 있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제안해 준다.
이기섭대표가 제안하는 “즐겁게 일하기”
1. 일상이 즐거워야 인생이 즐겁다
땡스북스의 구성원들은 매주 돌아가면서 점심메뉴를 정한다. 배를 채우는 점심시간이 아닌 즐거움을 채우는 점심시간은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물론, 구성원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메뉴를 정하게 되더라도 모두가 흔쾌히 응한다. 그렇게 서로 포용하고, 경험을 함께 하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2. 일상은 여행처럼, 여행은 일상처럼
이기섭대표는 1년에 4번은 반드시 가족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일상에 쉼표를 찍어주고, 새로운 활력을 넣어줄 충전제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생각에서, 땡스북스 가족들이 북페어를 빙자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
3. 즐겁게 키우자
땡스북스가 복합패션몰 Aland 가로수길점 안에 2호점을 열고, aA뮤지엄 삼청동점에 3호점을 열게 된 것은 “우리동네문화쉼터”를 표방하는 땡스북스의 철학과 성과를 이해해준 기업들이 땡스북스의 브랜드를 품어 라이프스타일브랜드로 성장하려는 필요와 만났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배경이 있었기에 땡스북스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트렌드가 형성되어 가는 지역들을 공략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4. 즐거운 만큼만 벌리자
의도치 않게 사업규모가 커지면서 땡스북스 가족들에게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책이 들어오는 날이면, 설레이는 마음으로 책포장을 풀었는데 어느새 포장을 푸는 설레임 대신 피곤함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대표는 다시 템포를 늦추기로 결정했다.
글 : 오이씨
출처: http://oecenter.org/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