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지대’는 전설적인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가 죽음의 지대, 해발 8,000미터 이상의 산에서 그가 마주친 한계상황을 상당히 극현실적으로 설명한 책이다. 오래 전에 이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극한의 공포와 거기서 느끼는 무력감 등의 무척 생생한 날 감정에 많이도 전율했다. 단어 단어 하나에 담긴, 죽음의 지대에서 그의 체험이 너무 생생해서 그랬을까? 아무튼 상당히 신선한 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계상황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한계 상황이란 뭘까? 아마도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버티는 것. 그것말고 할 게 없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무기력하게 그렇게 그 자리에서 외부의 처분만을 바라는 것이다. 이 책을 빌려서 설명하자면 나약한 인간에게 죽음의 지대,란 극한의 한계 상황일 수 있다.
(같은 책에서) 1953년 의사이자 등반가인 에트와르 위스 뒤낭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인간은 6,000미터의 고소에서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7,000미터를 넘으면 고도 적응이 어려워진다. 이 고도에서는 적응한다고 해도 그 시간이 제한된다. 휴식을 취해도 이미 소비한 에너지를 넉넉히 보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7,000미터에 이르면 ‘쇠퇴 현상’이 발생한다. 처음에 목이 아프다가 대수롭지 않은 염증이 악화되며 궤양이 일어난다. 동상은 유기조직에 산소가 부족해지면서 한층 어려운 고비에 이른다. 심장이 적응할 수 없게 되어 팽창한다. 자기의 한계를 벗어난 높은 곳에 지나친 게 오래 머무는 자는 결국 산의 제물이 된다.
죽음의 지대는, 이처럼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한계 상황이다. 장비나 기술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라이홀트 메스너는 이 한계상황을 극복한다. 그가 초인적이어서 그럴까? 물론 육체적인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의 구절에서, 그 실마릴 찾을 수 있었다. 그의 말을 옮겨본다.
탐구해야 할 것은 산이 아니고 인간이다. 나는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려고 오르지 않았다. 그랬으면 성공을 보장받기 위해 쓸 수 있는 모든 기술을 동원했으리라. 나는 그저 이 자연의 최고 지점에서 자기 자신을 체험하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에베레스트의 장대하고 준엄한 모든 것을 내 팔에 안고 싶었다. 이런 일을 산소 마스크의 힘을 빌려서는 하지 못한다. 나는 유토피아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었을 뿐이다. 나의 유토피아는, 의사와 물리학자와 등반가들의 논쟁의 초점이던 8,848미터의 고봉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