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인씨가 지은 ‘문제는 경제다’를 읽었다.
일단 책 내용이 워낙 풍부하고 탄탄했다. 최근에 읽어본 책 중에서는 분석면에서는 가장 훌륭한 책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가 말하는 한국 경제의 문제점들에 대해서 95% 이상 동의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의아해지는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분석에 대한 해석들이다. 그리고 일부 부분에서는 분석에 따른 Next Step 들에 대해서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좀 있었다. 그래서 이 포스팅에서는 선대인씨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동의했던 부분과 반대하는 부분에 대해서 적어보고자 한다.
데이터의 장난Agree
대표적인 것이 실업률 같은 부분이다. 우리나라 정부에서 발표하는 실업률이 3%대였다며 ‘고용대박’ 운운했던 것이 모두의 기억에 생생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실업률 데이터는 발표하는 사람이나 그 발표를 듣는 사람이나 별로 믿지 않는다. 이렇게 신뢰도가 떨어지는 데이터라고 할지라도 절대적인 넘버는 틀릴 수 있으나, 장기적인 트랜드(추세)는 믿을만 한 경우가 많으나, 우리나라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실업률 자료는 거의 ‘가라(일본어로 빈말이라는 뜻)’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서구 사회에서 사용하는 실업률의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인데, 선대인씨도 지적했듯이 대표적인 사례가 고시생과 50대의 자영업자들이다. 고시생들은 실업으로 잡히지 않으나, 사실상 실업자로 봐야 하며, 50대의 자영업자들 중에서는 직장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나와서 퇴직금으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 경제의 독특한 특성의 결과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 정책입안자들이나 연구기관에서 사용할만한 대안은 ‘실업률’ 이라는 정의를 다양하게 해석하여서 한가지 넘버만 트래킹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정의의 실업률의 추세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분석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밖에는 한국 사회에서 재벌의 의존도가 매우 높아서, 재벌이 나라를 먹여 살리고 있다고 믿게 만든다던지, 부동산 부양정책으로 부동산 거품이 꺼지지 않을 것 같은 인식조작을 하는 것 등이 모두 이와 비슷한 예로 분류될 수 있다.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전적으로 선대인씨의 논의에 동의한다.
Disagree
선대인씨는 이 책에서 OECD데이터를 많이 인용하고 있다. 예컨대 OCED라는 선진국 집단의 사이에서 한국의 숫자들은 도저히 납득이 안되는 점들이 많은 이상한 국가로 보인다는 것이다. 나도 예전에 미국의 연방정부의 정책수립에 대한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 수업에서도 OECD 데이터를 많이 인용했다. 그런데 이 수업에서 나오는 2×2 매트릭스 같은 차트들에서 국가별 데이터로 점을 찍으면 (예컨대 GDP 와 복지예산을 각각 X축, Y축으로 해서 점을 찍으면) 항상 한국은 다른 무리의 나라들에서 뚝 떨어져서 이상한 위치에 있었다. OECD라는 집단 안에서 생각해보면 미운오리새끼 같은 존재였다. 그 수업의 교수도 북유럽 국가들과 서유럽 국가들 유형, 앵글로 색슨식 영국과 미국의 유형, 남유럽 국가들의 유형, 등등을 설명하다가 음… 한국은 여기 위치하고 있네요..라면서 얼버무린 적이 많았다. 아무리 봐도 어울리지 않는 집단에 섞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어울리지 않음’이라는 것이 단순히 후진국인데 억지로 OCED에 끼여 있다기 보다는 뭔가 Unique 하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몇몇 재벌에 대한 과도한 경제의존도, GDP는 높은 편이지만 분배에 있어서는 인색한 점, 말도 안되게 긴 근무시간 등등은 단순히 후진국형이라고 정의하기에는 좀 어색하다. 아니, 정말 unique하다. 선진국에 끼여들기는 했으나 아직 어디로 갈지 갈피를 못잡은 그런 국가가 한국이다.
그리고 이렇게 2×2 매트릭스들을 그리면 또 홀로 외톨이로 찍혀 있는 점이 있으니, 그것은 미국이었다. 그런데 미국 학생들은 미국이 왜 혼자 한 귀퉁이에 찍혀 있는지에 대해서 당당하다. ‘우리는 미국이니까..’ 라면서 말이다. 자신들은 유럽의 시스템도 아시아의 시스템도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낸 새로운 시스템이므로 다른 나라들과 비슷한 그룹에 속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식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런 느낌이었다.)
얼마전 미국 대법원의 판결을 통과한 오바마 케어만 해도 그렇다. OECD 국가들 대부분이 실행하고 있는 국가 주도의 강제적인 전국민 의료보험제도는 한국이나 일본, 혹은 유럽에서 온 친구들이 볼 때는 ‘그거 당연히 해야 되는거 아닌감?’ 하면서 측은한 눈빛으로 보고 있는데, 클래스에 있는 몇몇 미국애들은 죽어도 아니란다.
우리는 항상 어떤 형태를 벤치마킹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래서 선대인씨도 자꾸만 멕시코형 경제가 되면 안되고 대만이나 브라질 혹은 북유럽식 모델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많이 이야기 한다. 특히나 OECD국가들과 섞어 놓고 보면, ‘이것봐~ 한국만 이상하잖아..’ 라는 식의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의 특수성을 좀 더 고려할 수는 없나? 라는 생각은 종종 들었다. 물론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이미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고, 성공이 증명된 몇몇 모델들을 들이대면서, ‘이렇게 하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설득력이 크기는 하지만, 이미 우리는 다른 길을 오랫동안 걸어 왔기에 방향키를 돌리는 것이 쉽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재벌의 역할과 수출주도형 경제
Agree
재벌이 제 역할을 못한 것은 사실이다. 재벌이 사회에 대한 책임 없이 자신들의 배를 불린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도 재벌들이 빵집이나 수퍼마켓 하지 않고, 카네기나 록펠러 같은 부자들이 말년에 했던 것과 같이 그 돈을 사회에 환원했더라면, 혹은 꼭 사회 전체가 아니라 제대로 된 사학이나 공공의 건물에라도 투자했더라면, 한국 사회는 지금보다는 좋았으리라. 재벌 2-3세들이 온실속에서 부를 불리고, 누가 말했듯이 우리나라에서 1등 광고기획사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진 사람이 20년동안 노력해도 재벌 3세가 하루아침에 광고회사를 만들어서 계열사 물량을 모조리 가져가면서 1등 광고회사를 만들어버린다면, 도대체 누가 꿈을 키우겠는가?
게다가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모토 아래에서 60-70년대에 우리 모두 한곳만을 보면서 달려왔고, 그 논리에 익숙해진 세대가 이제는 새로운 세상이 되었으면 다른 세대로 갈려야 할텐데, 우리나라는 너무 빨리 발전한 탓에 그 세대가 여전히 사회의 지도층에 자리잡고 있어서 오히려 더 변화를 어렵게 만든 측면이 있다. (그럼에 생각해볼때 과연 사회가 빨리 발전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라는 물음도 갖게 된다.) 하지만 선대인씨가 말한대로 수출보다는 내수에 촛점을 맞춰야 할 때이다. 내수가 살아야만 두개의 동력이 함께 돌아가서 한국이라는 배는 순항한다는 말이 깊이 공감되었다.
순환출자를 생각해 낸 사람은 변호사이든, 회계사인든, 기업가이든, 혹은 그 모든 사람의 팀웍이 산물이든간에 천재들이다. 어떻게 이렇게 기발한 생각을 해냈을까 싶다. 하지만 이 방법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게다가 지금처럼 모든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서 경제민주화(이게 무슨 말인지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를 부르짖고 있는 이 마당에 순환출자구조가 사라질 운명에 처한 것은 기정사실인 것 같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함께 노력해야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재벌 3세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또 한번 이러한 순환출자구조를 디펜스 하기에는 여론도 너무 좋지 않고,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지 않을까?
Disagree
재벌이 우리 경제의 주 동력이었던 것은 맞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재벌이 이렇게까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것도 또 얼마 안된다. 불과 6-7년 전에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 글로벌 top 5 운운했을 때, 내 주변에 있던 많은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대놓고 비웃었다. 그런데 지금 미국에서 보면 상황이 다르다. 불과 10년전에 실리콘 밸리가 있는 팔로알토 시내에 처음으로 삼성 간판이 걸렸을때, 나도 몹시 흥분했던 1인이다. 재벌 시스템은 해로운 점도 많지만, 우리가 만들어낸 참으로 신기한 신종 기업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들이 외국에 나가서는 잘 하고 있다.
따라서 이 동력을 여러조각을 내어서 일단 한번 혼란에 빠뜨린 다음에 다시 재편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은 맞는 말이나,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신종 기업형태를 마음대로 재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는 아무래도 경영학을 배운 사람이라서 기업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기업이라는 것을 경영하는 경영자와 그 경영자에 딸린 수많은 종업원, 그 종업원의 가족들, 그리고 그 기업에 돈을 넣고 있는 주주와 채권자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을 생각하면 비록 그 기업들이 비겁하게 큰 덩치고 작은 아이들을 상대로 맨날 이기는 싸움만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불법이 아닌 한에는 그들을 제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대신에 작은 아이들에게 무기를 쥐어주는게 낫지 않을까? 큰 아이들을 손발을 묶지 말고, 작은 아이들에게 칼, 총을 쥐어주면, 큰 아이들은 밖에 나가서 다른 아이들하고 싸우지 않을까? 그게 쉽지 않아서 자꾸만 법을 만들고, 제제를 가하자는 것인데, 이렇게 자꾸 규제만 만들면 결국 그들은 창의적인 방법으로 그 규제를 피해나갈 뿐이다. (creative reaction/ creative response라고도 한다). 따라서 그보다는 작은 덩치의 애들 편을 들어주자는 것이다. 돈이 필요하면 돈을, 능력이 필요하면 능력을 후원하면 된다.
문제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생긴 벤처 육성 정책들이 잘 나가다가 수많은 비리 케이스들이 나오고 코스탁에 장난질 치는 악질 기업들이 나타난데다가, 네이버/다음 등도 결국에는 재벌처럼 폐쇄적인 형태로 운영되는 것을 보고나니 사람들도 ‘그놈이 그놈이네’라는 심정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럴때일수록 ‘진짜들’이 성공하도록 인내심을 갖고 도와줘야 한다.
얼마전에 일본의 라쿠텐에서 팔리는 상품중에서 가장 많은 상품의 일본 각 지방의 특산물이라는 것을 알고 놀란 적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일본의 지방의 국공립대학교(참고로 일본은 지방의 국공립대의 수준이 매우매우 높다)에 다니는 학생들의 인턴 기회를 이러한 지방의 특산물 제조업체로 알선해서 인터넷 전자상거래 등을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많이 후원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돈이 부족할 뿐 아니라 지방의 특산물 제조 업체들은 전자상거래를 제대로 하는 방법을 몰랐던 곳이 많았는데, 제대로된 기획자, 프로그래머 꿈나무들이 달라붙어서 이들 특산물들을 전국으로 판매할 수 있는 판로를 많이 개척했다고 한다.
특히 선대인씨가 미국에서는 인건비가 들어가는 서비스업은 비싸지만, 제조업체들의 제품들, 특히 국내 대기업들의 제품들이 싸서 화가난다고 했던 부분은 특히 동의할 수 없다. 책의 이 부분의 요지는 우리나라에서는 비싼 가격을 받으면서 외국에서는 거의 덤핑 수준으로 싸게 파는 우리 대기업들을 겨냥한 것인데, 미국에서 제조업 제품의 가격이 싼 이유는 시장이 크기 때문인 것이 더 크다. 나도 외국계 대기업에서 일해봤지만, 같은 물건이라도 한국에서 더 비싸게 팔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마찬가지로 한국은 볼륨이 작아서 그렇다. 결코 한국 소비자를 봉으로 봐서 그런것이 가격이 비싼 이유의 100%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경영학 공부한 사람 관점에서는 볼때 제조시설을 마켓에 가까이 옮기는 것은 local market learning을 얻는 것을 포함, 미국 같은 경우 연방정부와 주정부에서 제공하는 각종 세제 혜택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비용절감 이외에도 많은 이점(advanatge)가 있다. 이것을 단순하게 얄팍한 대기업들이 인건비 몇푼 아끼겠다고 국내 노동자를 버리고 해외로 튀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재벌을 어떤 식으로든지 다시 짜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떠받치던 큰 축을 갈아 엎자는 것이므로 매우 조심스런 논의다. 사람들은 재벌을 좋아해서 따르는 것 보다는 싫지만 그들을 버리기에는 너무 큰 위험이 따르므로 참고 있는 것인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는 transition plan을 구체적으로 세워줘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재벌에 손을 대기보다는 중소기업들에게 ‘심하게 유리한’ 많은 장치들을 더 확충해야 하는것 아닌가?라는 생각. 물론 이런 것들도 생각해봤고, 실행도 일부 해봤겠지만, 너무 촛점이 재벌에게만 맞춰져서 하는 이야기이다.
맺으며
어줍지 않게 몇자 적어봤지만, ‘문제는 경제다’ 이 책은 좋은 책이다. 다만 초반에 비판의 부분이 너무 길어서 읽다보면 ‘그래서 뭘 어쩌자는 것인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성미 급한 한국의 독자들은 ‘우리나라 재벌들 더러운 것들!’ 혹은 ‘나는 이제부터 삼성 제품 안살란다’ 라는 식의 단편적이고 건설적이지 못한 반응만을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선대인씨가 운영하는 세금 혁명당의 페북을 봐도 그런 감정적인 댓글이 많다).
오히려 이 책은 제 3 부에 나오는 ‘지금 우리가 준비해야할 것들’ 이라는 부분이 액기스인것 같다.
특히 국공립대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부분이나, 공무원들의 월급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점, 북한과의 경제교류를 확대해야 한다는 점, 창조도시들을 육성해야 한다는 점 등은 평소의 내 생각과 싱크로율 100%라서 깜짝 놀라면서 읽었다. 역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은 대한민국에 만명쯤이 동시에 생각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더 훌륭한 사람들은 이미 책도 내고 그러는구나… 라는 생각에 겸손해지기도 한다.
2012년 대선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2023년 우리나라의 모습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걸어온 경제의 방향과 그 부작용에 대한 fact들을 이해하고, 그 순간에 이런 방향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얻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읽어야지, 너무 무비판적으로 읽으면 ‘재벌해체’, ‘삼성불매’와 같은 공허하고 비건설적인 구호만 외치는 수도 있겠다.
글: MBA Blogger
출처: http://mbablogger.net/?p=4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