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호
아파트 입주자회의에서 한 뼘씩 내어준 텃밭에 / 주민들이 고구마 옥수수 가지 토란 통 등속을 심었다 / 이랑을 돋우고 비닐도 씌워주고 시든 잎은 솎아내고 / 고추와 오이는 지지대도 세워주고 / 주말마다 텃밭을 일궈 아이들 교육이나 삼자며 / 다들 소란스럽게 행복했는데
장맛비 몇 번에 텃밭은 그만 홀랑 물웅덩이로 변했다 / 배수가 안 된 황톳물이 벌겋게 출렁대 / 고추와 가지 등은 벌써 썩어가기 시작했다 / 잠깐의 주말농장에 대한 낙담이 심했는지 / 누구 하나 나와서 돌보는 사람이 없었다 / 겨우 한 뼘씩의 땅에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마는 / 둘러보면 안쓰러웠다
그런데 물에 잠긴 텃밭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 흙탕의 수면 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 발을 동동 구르는 소금쟁이들이 가장 먼저였다 / 이어서 어느 틈에 떼로 모여든 올챙이와 송사리들 / 그리고 뭘 잡아보겠다는 건지 페트병을 들고 나온 아이들 / 장마 다 끝났다는 듯, 고인 물 위로 / 파란 하늘과 양떼구름까지 모여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대책회의처럼 모두 모여 한근심해주자 / 텃밭은 불끈 새 힘을 얻었는지 이윽고 옥수수와 토란부터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 물론 흙탕물에 옷 버린다고 야단치며 / 어른들은 아이들을 집으로 거두어가기 바빴다 / 아파트 주민들이 다시 행복해지기까지 / 텃밭에 어른들이 제일 늦었다
시 속에서 아파트 주민들은 한 뼘 땅 덕분에 행복하다 비 때문에 낙담했다가 다시 행복해지는 과정을 겪습니다. 문제는 어른입니다. 어른들은 고추나 오이, 고구마를 심고 그 결과를 생각합니다. 혹은 아이들 교육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텃밭을 기능적으로 해석 합니다. 비가 와서 밭이 망가져 결과와 기능에 문제가 생기자 어른들은 이내 텃밭을 무의미로 인식해 버립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텃밭을 놀이 공간으로 바꾸어 행복의 과정을 만들어 갑니다. 어른들의 인식과 180도 반대로 텃밭을 인식합니다. (여름 한때 텃밭이 주는 깨닫음 중에서, 윤성학)
취학전의 어린이를 보고 있으면 결과에는 영 관심이 없습니다. 공부를 할때도, 목욕을 할때도, 심부름을 할 때도 뭐를 하든 하는 그 과정을 즐깁니다. 결과가 엉망으로 나와도 별로 개의치 않고 금방 다른 재미를 찾아 즐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주 힘든 일이지요. 야단을 쳐도 그때뿐이니 철이 없다고 한탄을 합니다.
생각해보면 철이든다는 것은 결과를 따지는 일입니다. 학교에 가면 공부에 성적을 매깁니다. 일을 하면 평가를 받고 기술에 등급을 매기며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실수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며 잘못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로 여기게 됩니다. 성인은 그렇게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입니다.
결과가 아닌기능으로 일을 바라보면,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기능을 바뀌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일 을 즐겁게 하는 사람에게 세상은 천국이다’라고 했습니다. 나는 결과와 기능만을 생각하는 사람인가, 과정을 즐기는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창의적인 사람들은 서로 다르긴 하지만 한 가지 점에서 일치한다고 합니다. 바로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한다는 사실입니다. 일의 결과에 따른 돈이나 명예보다는 그 일이 좋아서 할 뿐입니다.
창의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아이처럼 일의 결과가 아닌 기능으로, 그 자체를 즐겨야 합니다. 그래서 창의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항상 아이들을 보라고 하는 것이지요.
글: 황순삼
출처: http://swprocess.egloos.com/2878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