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헌책방이 돌아왔다. 그런데..

인터넷 신문이 대세다

“신문 보세요, 10만원 그냥 드립니다아~ 신문 보세요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아파트 단지의 입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런데 목이 터져라 외치는 아저씨의 눈길과 손길을 무시한 채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모습 역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 사람들이 과연 모두 하나같이 바빠서 이런 판촉행위에 관심이 없는 것일까? 바쁜 사람이 40 이라면, 나머지 60 중 20은 구독 중인 신문사를 바꿀 의향이 없는 사람일테고, 20은 신문 자체를 보지 않는 사람, 그리고 20은 인터넷 신문을 보기 때문에 종이신문 구독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 것으로 짐작된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1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종이신문을 보는 사람은 68%, 인터넷 신문을 보는 사람은 78%를 기록하여 처음으로 인터넷 신문 인구가 종이신문 인구를 앞질렀다고 한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월소득 수준이 높은 가구일수록 신문(종이+인터넷) 구독률이 높다는 통계치를 근거로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사회현상에 대한 이해나 지적 욕구에 관심이 많을 것이라는 단순한 가정을 해보았을 때, 월소득액이 높을 수록 인터넷 신문 구독률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 더이상 인터넷 신문을 ‘쓸데없는 정보들의 집합체 혹은 저급 매체’라고 매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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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2011 사회조사, 통계청, 2011년 12월
헌책방의 추억, 그리고..
 
90년대 개포동에는 그 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면 누구나 알만한 아주 유명한 헌책방이 있었다. 중고책 매입/매도, 새책 매도를 모두 취급하는 만능 책방이었는데, 간판도 없고 상호도 없었지만 그냥 ‘헌책방’이라는 이름으로 10년여간 그 일대를 주름 잡았다. 학기 초가 다가올 즈음이면, 쓸만한 지난 학기 교과서/참고서를 트렁크 가득 담은 차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그 차들은 다시 새학기에 필요한 참고서/문제은행/아이들 손에 잡힌 헌 책들을 가득 싣고 떠나곤 했다. (여담이지만, B4 용지 크기에 엄청 두꺼웠던 ’문제은행’만 없었어도 지금쯤 나는 훨씬 창의적인 사람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싶다)
 
1995년 Amazon을 시초로 국내에서는 97년 영풍문고, 교보문고 등 대형서점들이 온라인 서점을 개설하였고, 뒤이어 알라딘, yes24 등 온라인 전문 서점이 생겨났다. 이 곳에서는 새 책을 20~30%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었는데, 이는 약 50% 정도 할인되는 헌책 가격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었다. 집에서 검색하여 원하는 책을 싸게 구입하고 무료로 배송되는 시스템의 편리함은 소비자를 사로잡았고, 직접 방문하여 미로 속에서 책을 찾아야 하는 헌책방 이라는 개념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내가 대학생이 되어 철학책이나 고전을 구하러 헌책방들을 이따금 찾아가곤 했으나 그 협소한 공간과 먼지 쌓인 책, 질서없는 배열, 장사에 큰 관심없던 주인아저씨을 떠올려 보면 그 곳은 서점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헌책방 만이 급속히 변화하는 시대의 희생양은 아니었다. 온라인 서점의 기세로 영풍문고 강남점을 비롯한 많은 오프라인 서점이 문을 닫았고, 미국에서도 전자책 시장의 발달로 시장 대응에 늦었던 업계 2위 업체 Borders는 2011년 결국 파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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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oogle Image
세계적 석학 Umberto Eco는 얼마 전 종이책의 불멸을 외치는 다큐멘터리를 찍던 중 2층 난간에서 자신의 소설 <장미의 이름>과 전자책용 기기 kindle을 함께 던졌다고 한다. 당연히 kindle은 부서졌고, 종이책은 구겨졌을 뿐이다. 본인 스스로가 아이패드의 애용자라고 밝히면서도 종이책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그 믿음을 보여주기 위해 행한 일종의 쇼 이지만, 그러한 행위를 해야할 만큼 이 시대 지식인들은 종이책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실제로, 2011년 Amazon은 2007년 kindle books가 도입된 이래 처음으로 kindle books 판매량이 print books 판매량을 초과했다고 발표했다. 한국과 프랑스 등 몇몇 나라에서는 전자책이 아직 맥을 못 추고 있지만, 미국인들은 전자책의 저렴한 가격, 가벼운 무게 등에 매료되어 종이책을 서서히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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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귀환, 그런데?

 
나는 출국 전 대청소의 일환으로 소장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일부 책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교보문고에 온라인 중고장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설마 하는 마음으로 올려놓았는데, 6주 동안 무려 8권이 팔렸다. 가격을 특별히 낮게 책정해 놓은 것도 아니었고, 팔려는 책의 이곳 저곳을 찍은 사진을 올려놓는 등의 특별한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매우 놀라운 결과였다. 헌 책의 거래가 이렇게 활성화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간상 제약으로 팔지 못했던 나머지 100여권의 책들은 알라딘의 원클릭 일괄매입 시스템을 통해 단번에 해결하였는데, 이는 개인간 거래(C2C)의 불편함을 해결해 주고자 알라딘이 중개자로 나서 C2B 형태의 헌책방 비지니스 모델을 만든 것이다. 알라딘은 2011년 9월 종로점을 시작으로 깔끔한 인테리어의 오프라인 헌책방을 대도시 곳곳에 오픈하고 대량 매입한 헌책들을 진열하였고, 이러한 헌책방에는 사람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 정도면 헌책방의 화려한 귀환이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렇게 부활한 온라인 기반의 헌책방 성장의 발목을 잡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전자책이다. 나 역시도 그렇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장 넘기는 손가락의 움직임, 손에 닿는 종이의 감촉, 맘에 든 책갈피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 등을 잊지 못해 종이책을 버릴 수 없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영어단어는 직접 찾아야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영어강사의 말에 두꺼운 종이 사전을 넘기던 것도, 세계적인 사람이 되겠다고 침대 머리 맡에 세계지도를 붙여놓고 지리를 외우던 것도, 패닉의 <달팽이> 코드를 익히겠다고 서점에서 노란 악보들을 뒤적거리던 것도 이제는 추억 속의 단편으로 남아있을 뿐이고, 모니터를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나는 자기 전 베개 위에 비스듬히 누워 책을 보며 하루를 마감하는 것을 일종의 의식처럼 지녀 왔는데, 언제쯤 내가 쥐고 있는 그 책이 전자기기로 바뀔 것이며, 그 때도 과연 내가 같은 느낌으로 하루를 마감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물론 더욱 궁금한 것은 어렵사리 부활한 헌책방들이 어떻게 제 2의 인생을 살아갈 것인지, 격변의 시기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서점업계는 또 어떤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로 소비자를 유혹할 수 있을지, 과연 소비자들은비슷한 가격대라면 촉감을 자극하는 깔끔한 헌 책과 편리함으로 중무장한 전자책 중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등이며, 이를 흥미롭게 관전할 생각에 조금은 흥분된다. 온라인 서점의 파도에 휩쓸려 사라진 헌책방이 전열을 가다듬어 온라인 헌책방으로 야심차게 돌아왔는데, 이번엔 전자책의 파도라니.. 시대의 흐름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헌책방이 다시는 죽지 않았으면 한다. 이번에 죽으면 과연 또 부활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글: MBA blogger
출처: http://mbablogger.net/?p=4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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