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의 물결이 거세다. 이런 시대의 조류가 과학계도 바꿀 수 있을까? 일단 최근의 변화는 긍정적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설립된 PLoS (Public Library of Science)가 운영하는 일반인들이 누구나 공짜로 과학논문을 볼 수 있는 다양한 오픈 저널들은 최근 날이 갈수록 그 권위를 인정받기 시작했고, MIT를 필두로 하여 다양한 과학의 고등교육 과정들과 강의자료들도 개방이 되기 시작했다.
이런 전반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개방지식재단(Open Knowledge Foundation, OKF)은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서 데이터에 대한 접근성을 더욱 개선하고, 이를 재사용하고, 새로운 연구성과를 사람들이 쉽게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들이 하는 연구라는 것이 결국은 다른 사람들이 이루어낸 성과의 기반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더구나 공공을 위해 국가의 돈이 투자된 과학연구의 결과가 일부 사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발표가 되고,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다면 이런 모순도 별로 없을 것이다.
개방형 과학의 철학은 이미 대형 협업의 형태로 그 효용성을 입증한 바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간유전체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 HGP)이다. 인간의 모든 DNA의 염기서열을 밝히는 이 역사적인 프로젝트는 일부 사기업의 야심차게 준비했던 인간 유전체에 대한 특허장악 시도를 막아내는데 성공했고, 공개된 유전자 서열은 의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개방화의 물결에 반발하는 사람들도 많다. 전통적인 과학연구의 시스템을 통해 연구비 수혜를 받고, 명성을 쌓아가는 과정에 있으면서도 기존의 체계에 적응된 과학자들은 이런 접근방법에 우려를 표한다. 또한 이들은 개방화가 오래 걸리고, 깊게 연구를 해야 하는 과학연구의 경우에는 많은 부분 부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비해서 이미 높은 수준의 성과를 냈거나, 최고의 오른 과학자들은 되려 적극적으로 이런 개방화를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고, 과학연구에 관심이 있지만 쉽게 뛰어들 수 없다고 느꼈던 과학계 외부에 있는 사람들도 이런 변화를 환영하고 있다.
이런 최근의 움직임이 어쩌면 굉장히 낯설어 보이지만, 되려 과학의 산업화와 파편화가 진행된 것은 불과 지난 100년의 이야기이다. 중요한 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과학연구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반드시 흰가운을 입고, 커다란 연구시설을 갖추지 않아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취미와 열정을 가지고 과학연구를 할 수 있고, 이들의 연구결과가 공유되고 발전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과학도 진정한 개방형 과학의 시대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한 과학으로 진입하려는 많은 장애물을 없애고, 수많은 데이터를 개방하고, 최대한 저렴한 연구장비를 개발하며, 이들에 대한 열정을 가진 보통사람들의 접근을 쉽게 한다면 우리의 과학은 또 한 차례 엄청난 퀀텀점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정보에 대한 공유의 인프라는 구축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소셜 네트워크는 관심있는 과학자들이 커뮤니티를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있고, 오픈소스 하드웨어 운동은 저렴하게 실험실 장비를 만들고 보급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우리들에게 어쩌면 과학자라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전문성이 있고, 다가가기 어렵고, 괴짜스러운 인물들로 인식되어 있는지 모른다. 우울한 SF소설에 등장하는 미친 과학자들에 대한 모습이나 외로운 천재와 같은 느낌의 선입견이 우리 모두에게 내재한 과학적 사고와 과학에 대한 능력을 꽃피우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다. 이제 의지를 가지고 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협업을 통해 새로운 과학적 성과를 낼 수 있는 개방형 과학의 시대를 과학자들이 먼저 솔선수범해서 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런 철학을 위해 젊음을 불태워 노력을 하는 청년 과학자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 어쩌면 미래의 희망인지도 모르겠다. 28세의 젊은 생명과학자인 조세프 잭슨(Joseph Jackson)은 ‘DIY 생물학자’라는 운동을 이끌고 있다. 그는 BioCurious라는 회사를 공동창업했는데, 이 회사는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지역사회에서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생명과학 연구실을 운영한다. 그리고, 그는 매년 열리는 Open Science Summit을 조직해서 이런 철학을 널리 퍼뜨리고 있다. 이제 이런 노력이 미국에서만 머물지 않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를 움직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국내에도 이들의 노력에 호응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참고자료:
Open science: a future shaped by shared experience
Open Science Summit 홈 페이지
글: 정지훈
출처: http://health20.kr/2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