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에 다녀왔다. 어머님과 누나 그리고 조카들을 데리고 가서 Cirque Du Soleil 공연중에 보고싶었던 KA도 보고, 그랜드 캐년의 웨스트림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Spirit 이라는 초저가 항공사를 이용했다. 보통 항공사들은 비행기 안에 가지고 타는 캐리어 하나 정도는 허용하는데, 이 항공사는 티켓이 싼 대신에 캐리어 하나까지도 돈을 받았다. 좌석 밑에 들어갈 수 있는 백팩 하나만 혀용이 되었다. 음료수나 과자도 물론 사먹어야 하고, 티켓팅을 할때 키오스크가 아닌 사람에게 하면 $5를 내야 했다. 미국의 Pricing 시스템의 전형적인 방식인, ‘더 원하면 돈을 더 내라’라는 사고방식이 잘 드러난 케이스였다.
그래서 짐을 최대한 줄여야 했다. 옷도 외출복 하나 잘때 입을 옷 하나만 가지고 갔다. T셔츠도 세장만 달랑 넣었다. 불필요한 짐은 하나도 넣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근에 해 본 유일한 computer-free 여행이었다. 물론 아이폰도 컴퓨터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아이폰을 제외하고는 노트북, 아이패드 등을 하나도 갖고 가지 않았다.
최근에 읽고 있는 하드커버의 두꺼운 책이 있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그 책 대신에 얇은 책을 가져가기로 했다. 책장을 보니 읽으려고 사 놓은 책 중에서 가장 얇은 책이 하나 눈에 띄였다. Zen Mind, Buguinner’s Mind라는 책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에서 스티브 잡스가 젊은 시절에 영향을 많이 받은 책으로 몇번이고 읽었고, 잡스 뿐 아니라 미국의 많은 유명인사들이 수회독을 했다고 해서 사 놓은 책이었다.
공항에 가서 읽기 시작했는데,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탐욕의 도시(sin city)인 라스베가스로 가면서 짐은 최대한 줄이고, 가져가는 책은 ‘zen mind, beginner’s mind’라는 불교의 선 사상에 대한 책이다. 아이러니하다… 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책을 펴니 그 안에는 아래와 같은 붓글씨가 들어있었다.
초심
“In the beginner’s mind there are many possibilities, but in the expert’s there are few”
(초심자의 마음에는 많은 가능성에 있지만, 전문가의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일본에 부러운 것, 3 가지
내가 초중고를 다닌 80-90년대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대한 컴플렉스를 느끼던 기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일본과 한국의 경제 격차는 지금보다 훨씬 심했다. TV나 VCR 등의 전자기기는 소니나 파나소닉 같은 회사가 삼성, LG보다 우월했다. 학생 때 항상 가지고 다니던 소니의 워크맨은 삼성 my-my와 비교도 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보아온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과 상대가 되지 않는 깊은 철학이 있어보였고, 게임도 일본 게임이 재미있었다. 고등학교때 우연히 들었던 X-Japan의 달리아(Dahlia) 앨범은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사운드였고, 대학교 1학년때 본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의 감성은 동시대의 감성이었으나, 훨씬 세련된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이러한 일본의 문화가 극복되었다. 우리 제품들의 질도 좋아지고, 우리 문화도 성장했다. 물론 아직까지 일본이 많이 앞서있는 부분이 많지만, 그렇다고 90년대처럼 그 차이가 따라잡을 수 없는 무엇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2002-2003년에 일본에 살면서 그 나라의 사이즈와 다양성, 그리고 고급문화부터 저급문화까지 저변이 넓다는 점을 몸소 체험하면서 부러운 점이 없지 않았지만, 그것은 단지 시간상의 문제이거나 ‘다름’의 문제일 뿐 뒤쳐지거나 따라잡거나 할 ‘달리기 순위’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도 일본에 대해서 부러운 것은 세 가지이다. 하나는 일본의 국기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인들이 가진 디테일이며, 마지막 하나는 문화의 포장능력이다.
일본의 국기는 말할 것도 없이 참 부럽다. 그 간결함과 상징성은 한번 본 사람이라면 잊혀지지 않는다. 누가 만들었는지 참 심플한 디자인으로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다. 일본의 장인들이 추구하는 디테일의 경지도 참 부럽다. 무엇이든지 일본이라는 나라에 정착하면 끝까지 궁극의 단계까지 끌어올려 보려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동양의 문화 = 일본의 문화
마지막으로 부럽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일본 문화의 ‘포장 능력(presentation skill)’ 이다. 누군가가 일본은 동양 문화의 종착지라고 한 말을 들었다. 중국이나 인도에서 시작한 문화들이 여러 문화권을 거치고 거쳐서 결국 일본까지 온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그래서인지 일본에는 여러가지 문화가 차곡차곡 쌓여서 공존하고 있다. 그들은 외부에서 들어온 것들과 스스로 가지고 있던 것들을 구분하면서도 잘 믹스(mix)해서 보존한다. 우리처럼 확 뒤집어 엎어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것을 택하기 보다는, 전통은 전통대로 우대하고 권위를 인정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잘 포용한다.
그 과정에서 일본인들은 외부의 시선을 많이 신경쓰는 것이 느껴진다. 자기만의 오리지널이 불분명해서인지, 아니면 천성이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본만큼 외부의 문화나 국가가 자기들을 어떻게 보는지 신경쓰는 나라도 드문것 같다. 일본인들은 일본에 대해서 설명하는 책도 많이 내고, 일본 안에서도 외부가 자신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책들을 많이 쓴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잘 포장해서 외부에 표현하는 기술을 체화해서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현재 많은 서구문화권에서 동양의 문화라고 이해되고 있는 것들은 사실 일본의 문화이다. 동양적이라고 표현하는 가옥, 의류 등을 보면 사실 우리의 눈에는 낯선 일본의 것들일 뿐이다. 우리가 보아도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의 것들을 구분하기 힘드니까, 사실 비슷비슷한 처지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일본인들의 놀라운 문화 프리젠테이션 능력 덕분에, 동양의 문화 중에서 재미있는 것들은 대부분 일본의 것들이라는 생각이 미국 친구들 머릿속에도 어느정도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Zen Mind, Beginner’s Mind라는 책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가 많이 되었다. 선(zen) 사상은 일본 고유의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바대로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사상이 중국의 도가 사상과 잘 어우러져 좌선과 명상을 강조하고 깨달음(enlightment)을 추구하는 선사상이 탄생하였다. 그리고 선 사상은 한반도를 거쳐서 일본이라는 종착역에 다다랐고, 일본인들의 성격대로 깔끔하고 정갈하게 발달했다.
이러한 일본의 선 사상에 서구인들은 감동했고, 선 사상은 이제 국제적으로 Chán Zōng (禪宗)이나 Seon 이라는 중국어 혹은 한국어 발음이 아닌 Zen 이라는 일본어 발음으로 더 보편화되어 있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 있는 책이 바로 이 책 Zen Mind, Beginner’s Mind 이다.
이 책은 Suzuki Shunryu (鈴木 俊隆) 라는 일본의 선승이 50년대 미국으로 건너와서 선에 대해서 설파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San Francisco Zen Center를 설립하여 미국인들에게 좌선과 명상을 통해서 불교의 가르침을 전파하였고, 그 장소와 내용은 현재 미국인들이 열광하는 Zen 사상의 모태가 되었다.
사실 이 책은 동양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나같은 사람에게는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는 내용들이다. 아마도 여러분 대부분에게도 새로운 내용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새로움이 없는 점이 바로 Zen 사상의 핵심이며, 새로울 것도 배울 것도 없지만, 계속 정진해 나가야 한다는 내용을 이 책은 담고 있다. 그리고 계속 읽다보면 같은 내용이 반복되지만, 종교적 가르침이나 경전이라는 것이 바로 우리가 잊고 사는 그런 것들을 계속 일깨워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나가며..
결국 스즈키 슌류 선사가 말하는 선사상의 핵심은 초심(Beginner’s Mind)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한없이 겸손한 그 마음을 잊어서는 안되지만, 우리는 초심을 잃어버리기가 얼마나 쉬운지 모두 잘 이해하고, 체험하고 있다.
탐욕의 도시 라스베가스를 여행하는 3일간 이 책을 읽으면서, 오묘한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제 미국의 한적한 교외에서 공부를 끝내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또 다른 탐욕의 도시) 서울로 돌아가서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하려는 나에게 딱 어울리는 책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책을 모두 읽고나니, 이 책을 왜 많은 유명인들이 가까운 곳에 두고 읽기를 반복했는지 이해하겠다. 이 책의 내용은 어디를 펴도 비슷한 내용이지만, 그 비슷비슷한 내용이 모두 우리에게 초심을 일깨워주는 내용들이다. 종교, 문화, 인종, 소득, 학력을 모두 떠나서 모두에게 명상을 통해서 스스로에게 더 집중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공부를 더 많이 할 것을 알려준다.
다시 탐욕의 도시로 돌아가서도 가까운 곳에 두고, 아무 곳이나 펴 보면서 읽을만 한 책이다.
초심(Beginner’s Mind)을 잊지 말자.
글: MBA Blogger
출처: http://mbablogger.net/?p=48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