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야든 그 분야를 이끌어 가는 책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베스트셀러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스테디셀러가 있죠. 대략 그 책이 몇 만 권 정도 팔리는 셀링 파워를 갖는다고 해보죠. 그럼 그 책 때문에 분야가 생기는데, 베스트셀러에는 못 미치지지만, 그 분야를 이끌고 가는 책을 바쳐주는 책들이 생기죠. 이 책들은 대략 만 권에서 왔다갔다하고, 그 다음으로 몇 천 권씩 팔리는 책들이 다수 생깁니다. 마지막으로 1쇄도 안 팔리는 책들이 출판되는 형태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베스트셀러가 중요하죠. 그냥 많이 팔리는 책이 아니라,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서 시장을 터주는 책들요. 그런데 베스트셀러만 있으면 출판사가 먹고 못 살죠. 베스트셀러를 바쳐주는 책들이 얼마나 많이 나와서 시장을 넓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판 시장에서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만 생기는 게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요.
한동안 한국영화가 흥행실적이 저조하다가 도둑들로 다시 한 번 1000만 관객의 기록에 도전한다고 한다. 물론 그런 대박을 치는 영화가 나오는 게 중요하기는 한데. 그런 승자독식 형태의 대박신화는 그다지 좋지만은 아닌 것 같다. 먹고 사는 측면에서 보자면 출판 시장이 그렇듯이 영화분야도 중박 이상의 되는 영화가 계속 나와주는 게 중요하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끊어지고 포식자들만이 남았을 때, 머지 않아 그 포식자조차도 사라지고 만다. 영화든 출판이든 모든 분야는 생태계와 비슷하다. 물론 생존법칙에 따라 적자가 생존해야 한다는 논리를 따른다면 대박만이 중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생존법칙이라는 게 자연의 법칙이 아니다. 정치 경제 체계는 인간이 만든 룰이다. 따라서 그 룰이 포식자만이 살게 할 때, 결론적으로 인간사회 전체를 아사시키는 첩경이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