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벤처기업가이신 이민화 디지털병원수출조합 이사장님을 만나 뵙습니다. 이민화 이사장께서는 일찍이 의료기기회사 메디슨을 창업하셨으며 이후 대한민국의 중소기업과 벤처창업을 위해서 민간 및 공공영역을 드나드시면서 많은 활동을 해오고 계십니다. 실제 회사의 창업 및 경영, 또한 공공영역에서의 활동을 통해 체득하신 통찰로부터 후배 전자공학도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소중한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정인영: 회장님께서는 메디슨 창립자로 저희 후배 전자공학도들에게 유명하신데요
이민화: 나이든 분들에게 그렇죠. 젊은 사람들은 잘 몰라요.
정인영: 저는 지금 40대 초반입니다만
이민화: 40대는 아시는데, 20대는 잘 몰라요. (웃음)
정인영: 메디슨 창업하신 것 이외에도 많은 일들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민화: 별로 중요한 일 없고요 (웃음) 메디슨을 85년도에 설립을 했고요, 95년도에 벤처기업협회를 만들었죠. 메디슨 다음으로 중요한 일이라고 하면 그 협회를 만든 겁니다. 코스닥설립, 벤처기업특별법 제정이 협회활동으로서 중요한 역할이었죠. 그 외에 실험실창업운동을 통해 창업활성화 활동을 하고요, 그리고 2000년도에 기술거래소를 만들었죠. 기술이 거래되어야 창업이 활성화되니까요. 기술거래소 이후에 사단법인 유라시안네트워크를 만들었죠. 그건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자는 취지였죠. 2009년도에 기업호민관이라는 정부직책을 맡았었죠. 중소기업 규제문제, 애로사항을 풀어주는 역할이었죠. 2011년도 3월에 만든 게 디지털병원수출조합입니다. 조합은 개별 회원사가 하기 힘든 일을 묶어서 하자는 취지로 만든거죠. 그리고 지금은 KAIST 강의하고, 2009년도에 시작한게 중학생 때부터 미래 기업인으로 키울 수 있는 영재를 발굴해서 육성하자. KAIST에서 전국적으로 150명 뽑아서 가르치고 있는 영재기업인 프로그램을 하고 있어요. KAIST에서 대학원, 학부강의, 특별프로그램으로 전국 중학생 가르치고 있기도 하죠.
정인영: 참으로 많으신 일들을 해오셨고 현재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현재 공식직함은 한국디지털병원수출조합 이사장이신데, 설립한지 얼마 안 되었다니 많은 분들이 잘 모르실 것 같습니다. 간단하게 소개 좀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민화: 지금까지는 IT가 한국을 이끌어왔는데 앞으로 21세기는 IT만으로는 좀 어렵습니다. 중국이 따라왔으니까요. 그러면 앞으로는 한국이 뭘 먹고 살거냐? 최고 인력이 옛날에는 IT분야로 갔는데, 지금은 의료분야로 가잖아요. 그러니까 의료분야가 한국을 이끌어가야 할 것 아니냐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한 거에요. 그러면 의료라는게 휴대폰이나 반도체처럼 글로벌 산업으로 갈 수 있느냐? 그 중 하나가 환자를 한국으로 데려오는 건데, 흔히 ‘의료관광’이라고 하는 건데, 이건 여러가지 한계가 있어요. 그러면 한국이 할 수 있는 다음 대안은 병원을 통째로 해외로 내보내는 거다. 개별의료기기기나 의약품이 아니라 병원전체를 해외로 수출해보자. 중요한 건 병원 운영의 노하우, 아이피 등이 의료기기, 소모품 등과 융합되어 나가는 거죠. 이런 건 개별기업들이 하기가 어려워요. 조합사들이 병원도 있고, 의료기회사, 소프트웨어회사도 있죠.
정인영: 요즘 사회적으로 멘토현상이 붐인데요, 만약 전자공학도가 창업을 한다고 생각해보면 누가 멘토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회장님께서 제일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제가 만약 창업을 한다고 가정하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굉장히 막막할 것 같습니다.
이민화: 창업은 그냥 시작하면 돼요.
정인영: 큰 전략 같은 것도 있어야하고, 세세한 행정절차 같은 것도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민화: 전략까지 생각하면 너무 어려운 얘기이고, 행정절차 같은 건 생각 안 해도 돼요. 창업에 젤 중요한 건 남들이 잘 못하는 것 하면 되지요.
정인영: 남들이 잘 못하는 거라고 하더라도 시장이 없을 수 있잖습니까? 전자공학도가 잘 못하는 것이 그런 거라고 생각됩니다만.
이민화: 물론 시장성이 있어야 한다는 건 필요조건이죠. 지금 당장은 시장성이 없어도 미래에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시작할 수 있죠. 미래의 시장성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다 어려워요. 시장이 형성될 확률이 대략 50% 쯤 된다고 생각하면 도전하는 거고, 1% 정도라고 하면 하지 않는 게 좋겠죠. 어차피 100%는 없어요. 그러나 창업 초기단계에서 특허를 확보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업을 하는데 남들이 가지지 못한 걸 해야 되잖아요. 요즘은 기술은 쉽게 따라옵니다. 그러니까 5~10년전에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미리미리 특허를 확보하는게 필요해요. 그런 특허들이 5~10년 정도 지나면 상용화 기술단계로 들어가기 시작하지요. 그 단계에 그 특허를 바탕으로 시작할 수 있지요. 오늘 사업하겠다고 마음먹고 내일 차별화된 능력을 갖는 거는 어렵지만, 5~10년 후를 대비해서 미리미리 지적재산권을 준비한다면 가능하지요.
정인영: IT분야에서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창업에 성공하신 분들은 꽤 계셨는데요, 하드웨어 기반으로 창업하신 분들은 생각나는 분들이 많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민화: 그건 잘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대한민국에 매출 1000억이 넘는 벤처기업이 2011년 기준으로 380개쯤 됩니다. 올해는 450개가 넘을 겁니다. 그 중 소프트웨어 회사는 10% 정도, IT 전체로는 약 35% 내외입니다. 기계제조 분야가 거의 50%입니다. 일반분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30개 내외의 소프트웨어회사를 일반분들이 잘 알고 계시는 거죠. 매출 1조를 넘는 벤처기업은 소프트웨어회사와 하드웨어회사가 하나씩 있습니다. NHN, 그리고 삼동. 언론을 통해서 알려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보셔야 됩니다.
정인영: 전자공학 전공하시는 분들이 창업하신다고 한다면 소프트웨어분야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IT기기나 반도체칩 같은 전자시스템 제조하는 쪽을
생각을 하는데, 갈수록 각종 제품들의 기능이 다양해지고 사양이 높아지며 디자인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웬만해서는 시장에 고개도 내밀기
어려운데요, 따라서 옛날에 HP나 애플이 그랬던 것처럼 이른바 ‘garage 창업’이 앞으로는 어려워지는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이민화: 전혀 그렇지 않아요. 갈수록 창업하기 쉬워져요. 요즘은 ‘open innovation’라고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직접하지만, 남들도 할 수 있는 것은 외부에서 사올 수 있어요. 옛날 같으면, 컴퓨터나 프린터를 하나 만들려면 모든 부품을 내가 다 만들어야 합니다. 할 일이 굉장히 많아지지요. 요즘은 기본적인 모듈들은 다 외부에서 조달이 가능합니다. 심지어는 설계도 조달이 가능합니다. 3D 프린터가 있어서 웬만한 프로토타입도 만들어 볼 수 있죠. 옛날엔 그런 것 만들어보려면 굉장히 어려웠잖아요.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내가 차별화된 부분만 만들면 일반적인 부분은 외부조달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garage 창업’이 더 쉬워지죠. 평균 창업비용도 줄어듭니다. 요즘 평균창업비용이 천만원대로 떨어졌지요
정인영: 아웃소싱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이론적으로는 회장님 말씀이 수긍이 가기는 하는데 현실이 실제로도 그렇습니까?
이민화: 그렇죠. 아웃소싱이라고도 할 수도 있고, 오픈 이노베이션이라고 얘기하는데,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다 구할 수 있어요. 요즘은 자기가 잘하는 것만 하면 되죠. 비유하자면 소고기국을 끓여도 소고기만 들어가는 거 아니잖아요. 내가 잘하는 소고기 부분만 내가 하면 되고, 다른 국거리는 시장에서 사오면 되는 거죠.
정인영: 회장님께서는 평소에 학생들이 열정과 패기를 가져야 한다, 또 사회는 한번 실패한 사람들이 쉽게 재기할 수 있도록 패자부활이 가능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많이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창업에 성공하신 분들의 인터뷰를 보면, 숱한 고난과 시련을 거의 초인적으로 극복한 얘기들을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인터뷰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지 않나 하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창업하는 것을 마치 소풍을 가듯 가볍게 시작하게 하고, 하다가 안되면 접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마치 독립운동을 하듯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뛰어들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쉽게 창업을 하는 풍토 조성을 위해서는 사회제도가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민화: 앞으로 창업이 가벼워질 겁니다. 요즘 창업하는 젊은이들은 정말 가볍게 해요. 미국 실리콘밸리 창업은 그냥 소풍 가듯이 하죠. 그냥 재미로 하다가 이것 아닌 것 같다 싶으면 접어 버리고. 미국은 그럴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죠. 창업자금 조달이 주로 엔젤투자로 조달됩니다. 투자이기 때문에 열 개 투자해서 한두 개만 건지고, 여덟 개 정도는 날려도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창업을 하는 사람들도 하다가 안되면 그냥 접으면 되요. 그래도 큰 불이익이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엔젤투자가 거의 없어요. 창업을 하게 되면 주변분들 돈을 쓰다가 안되면 은행에서 돈을 빌립니다. 돈을 빌리는 순간 연대보증을 하기 때문에 회사를 그만 두는 순간 신용불량자가 돼요. 금융시스템의 차이 때문에 한국은 기업을 시작하면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죠. 그러니까 비장한 각오로 죽자 살자 해야 합니다. 미국은 하다가 안되면 물러나면 돼요. 그리고 빨리 다른 아이템으로 바꿔서 다시 시작해요. 실리콘밸리에서 평균 창업횟수가 2.8회에요. 그러니까 .8회를 실패하고 거의 세 번째 만에 성공한 거죠. 그 때문에 2000년 이후 우리나라의 기업가정신이 계속 약화되어왔는데 이제는 좀 달라지고 있어요. 지금은 창업하는데 큰 돈이 안 들어가요. 천만원 미만으로도 창업이 가능해요. 예를들어 App 같은 것 만들어서 사업하는데는 큰 돈이 안들잖아요. 학생들도 그 정도는 날린다고 하더라도 인생이 망가지고 하는 수준은 아니에요. 실패하더라도 그걸 통해서 얻는 게 훨씬 많아요. 제가 볼 때는 억대 미만의 실패란 것은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소득이 훨씬 많아요. 엔젤투자 시장은 커지지 않았지만 가벼운 창업이 가능해졌다. 이것이 플랫폼 경제의 특징이죠. 무겁게 모든 걸 들고 갈 필요 없이 물병만 하나 들고 기차를 타고 가는 식이죠.
정인영: 회장님께서도 대학에 계셔서 체감하시겠지만 요즘 대학생들이 학점과 스펙쌓기에 몰두하면서 열정과 패기에서는 오히려 멀어지고 있습니다. 스스로 뭔가를 시작하기보다는 지시받거나 정해진 대로만 하는 경향이 제 추측에는 아마 사교육의 폐해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민화: 그건 학생들의 잘못이 아니에요. 대학입시제도가 정답위주의 교육으로 되어있다 보니까, 사교육이 거기 맞추어지게 된 거고, 거기에 길들여져 있다보니까 정답찾기 연습만 한 거고. 스펙쌓기라고 하는 게 결국 일종의 정답찾기잖아요. 스펙쌓기로 간 가장 큰 이유가 대학입시제도와 대학교육시스템 문제죠. 한두 문제만 틀려도 명문대에 가기가 어렵게 되면, 이런 환경에서는 학생들이 과감하게 도전하기가 어렵게 되죠. 모든 시스템은 두 가지로 나눠질 수 있습니다. 하나는 불패의 시스템이죠. 안 틀려야 하고 잘못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이건 과거 우리나라 개발연대의 요소경제에 맞는 것이죠. 여기서는 정답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선진국이 한 걸 따라가면 되니까. 그런데 이런 시스템은 한계에 왔어요. 선진국 따라가는 건 중국이 잘 하니까. 우리는 남들이 안한 걸 할 수 있어야 하죠.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열정과 패기, 소위 혁신을 만들어 내야 하니까. 이제는 요소경제에서 혁신경제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 때 가장 핵심적인 것이 정답위주에서 오답위주로 바뀌어야 합니다. 입시에서 반쯤 틀려도 붙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생각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답이 없는 거니까. 대학교육도 바뀌어야 합니다. 답이 없는 것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답이 있는 것은 인터넷에 맡기고, 사람들은 창의적인 쪽으로 가줘야죠. 그러려면 교육이 오답위주로 가줘야죠. 오답위주로 가면서 혁신을 장려해줘야죠. 혁신이란 건 100% 성공하면 그게 혁신이 아니죠. 성공과 실패가 섞여있는 게 혁신입니다. 한 개인보고 혁신하고 도전하라고 해놓고 실패하면 두들겨 팬다면 아무도 혁신하지 않죠. 지금 구조는 그런 시스템이죠. 그래서 실패에 대한 지원, 재도전제도, 패자부활, 이것이 혁신경제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것이 뒷받침되려면 교육도 정답위주의 오답위주로 가야하고, 교과서 중심에서 프로젝트 중심으로 이동해야죠. 프로젝트라는 것은 답이 없잖아요. 이런 것들이 우리사회가 가야할 거대한 방향입니다.
정인영: 회장님께서 말씀하시는 오답위주의 교육을 학교에서 시행하자면, 그 오답을 평가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만….
이민화: 그게 문제죠. 혁신을 평가하는 것은 템플릿이 없으니 어렵죠. 혁신을 평가하는 것은 주관입니다. 뭐든지 객관화하려면 정답위주의 교육이 될 수 밖에 없죠. 다만 주관을 한 명한테 맡기면 그건 안됩니다. 그러니까 집단평가 밖에 할 수 없어요. 집단평가를 하는데 전문가를 모시고 하면 돈이 너무 많이 들잖아요. 그러니까 동료평가를 해야 돼요.
정인영: 기업호민관으로 계시는 동안 느끼신 바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면 합니다.
이민화: 제가 주장했던 건 대한민국이 혁신경제로 가야 한다. 혁신을 잘할 기업들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기업이 커질수록 관료화되고 혁신이 어렵습니다. 이건 이미 입증된 법칙입니다. 대한민국이 혁신경제로 가려면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려면 중소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 애로사항을 해결해줘야 하는 거죠. 제가 7대 과제를 들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대•중소기업 문제에요. 이게 정부규제보다 더 심각합니다. 대•중소기업간의 공정거래문제를 풀지 않고는 일류국가가 안돼요. 대기업이 시장을 갖고 있고, 중소기업이 혁신을 공급할 때 국가가 잘 됩니다. 그러려면 공정거래가 중요한데, 그렇지 않고 중소기업을 쥐어짜면 결국에는 대기업이 손해를 보게 됩니다. 제가 그 일을 하면서 느낀 바는 아직도 행정, 정치의 핵심분야는 친대기업적 정서가 매우 강하다고 하는 겁니다. 앞으로는 달라지겠죠.
정인영: 마지막으로 후배 전자공학도들에게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이민화: 이제는 IT가 단독으로 한국의 산업을 이끌던 시대에서 서비스산업과 융합하면서 한국을 이끄는 시대로 변모하고 있다. 전자공학도들이 이제는 IT 기술 자체를 승화해서 이 세상에 어떤 서비스가 존재하는가, 그들과 어떻게 융합할까라는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많은 서비스 산업을 살펴봐야 합니다. 의료와 어떻게 융합할 것인가 교육과 어떻게 융합할 것인가 이런 것들을 의료, 교육 전문가와 IT 전문가가 힘을 합쳐서 풀어가야 합니다.
정인영: 바쁘신 와중에 인터뷰를 위해서 소중한 시간 내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글: 정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