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퇴근길
퇴근길 by 신치림(信治琳)
퇴근길 지하철 집으로 가는 길에
술도 한잔 해서 여러모로 피곤한 저녁
지나간 하루가 오늘따라 서운한 건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이야기
기억하니 우리 십년쯤 돈 모아서
큰 바다를 건너 그곳으로 살러 갈거랬지
스무살 사진 속에 보았던
푸른 해변에 웃고 있는 반 벌거벗은 여인
하지만 나는 아직 여기
그나마는 아직
버틸만한 하루
그래도 나는 기억하네
아직 꿈을 꾸네
그녀를 만나기를
꿈꾸며 사는 건
어쨌거나 좋아요
나의 서운한 오늘이 내일을 꿈꾸네
윤종신, 하림, 조정치 세 사람이 함께 하는 신치림이라는 그룹의 ‘퇴근길’이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나의 서운한 오늘이 내일을 꿈꾸네’ 라는 한 문장으로 퇴근길 직장인들의 허전한 마음과 그 속에 감춰진 낭만을 표현한다.
그렇지만 유학 전, 짧았던 나의 직장생활에서의 퇴근길은 위의 노래처럼 허전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았다. 퇴근 시간은 대부분 10시 이후 ~ 2시 사이 정도였고, 맥주 한잔 하거나 내일의 희망을 느끼기보다는 온 몸에 진이 빠진 상태였던 적이 많았다. 집에 돌아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에는 내 몸에 어떤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다고 느낀 적이 많았던 것 같다. 퇴근길에서 대부분의 시간은 회사에서는 볼 시간이 없는 책을 보거나, 아니면 전철, 택시 등에서 눈을 붙이는데 쓰였다. (참고로 밤 새고 새벽에 퇴근한 적도 많았지만, 최악이었던 적은 수요일에 출근해서 토요일 아침에 퇴근 한 적이 딱 한번 있었다.)
하지만 유학을 와서 위의 신치림의 노래를 들으니 뒤늦게 퇴근길이라는게 정취가 있었던것 같은 생각도 든다. 노래 가사처럼 서운한 오늘과 꿈꾸는 내일도 조금은 있었던 것 처럼 느껴진다.
힘들었던 퇴근길의 기억들도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인가보다.
2. 퇴근 후 우리의 마음은 쉴새 없이 떨리는 다리와 같다.
예전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분은 Relentless Leg Syndrome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면 쉴새 없는 다리 신드롬 ??) 이라는 것에 걸렸던 적이 있다. 줄여서 RLS라고도 부르는 이것은, 이름 그대로에서 보여지듯이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쉴 새 없이 다리를 계속 떠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신경정신학적인 장애인데, 불안, 초조 등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다른 원인들도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증상은 특히 저녁에 집에 가서 조용하게 있을 때나 잠을 잘 때도 계속되는 경향이 있단다. RLS는 이름 그대로 다리를 쉴새 없이 떠는 것이기도 하지만, 몸의 다른 부분을 흔들거나, 혹은 정신적으로 무언가를 멈출 수 없이 계속 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한다. 내가 아는 그 분의 경우에도 신체를 계속 움직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 분의 문제는 회사에서 하던 생각을 멈출 수 없는 것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사에서 일을 끝내고 퇴근을 하면 집에 가서 회사일을 잊어버리려고 노력한다.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위해서 부모님 혹은 배우자 혹은 자녀들에게 집중하면서 이야기도 하고, 함께 식사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회사일 못지 않게 매우 소중하다. 그런데 피치못하게 집에서도 계속 회사 일을 해야 하거나, 회사와 관련된 전화를 받아야 하거나, 혹은 이렇게 표면적으로 회사와 접속해 있지는 않지만, 우리의 뇌 속에서 계속 회사일을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내 경험상으로는 우리의 가족들은 이런 경우, 우리가 컴퓨터로 회사일을 하고 있을 때나 전화를 받고 있을 때보다 더 심하게 화를 낸다. 동공에 촛점이 없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채 계속 딴 생각을 하는 우리는 그냥 몸이 집에 있을 뿐이고 마음은 계속 오피스에 앉아 있다. 이런 모습이 우리의 가족들에게는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하게 하는 것 같다.
이런 사실을 잘 알지만, 우리는 종종 회사일을 머릿속에서 떨쳐 낼 수가 없다. 어느날은 계속 회사에서 고민하던 문제가 떠오른다. 나 또한 심한 경우에는 영화 ‘큐브’의 한 장면처럼 꿈 속에서 엑셀 시트의 칸속을 옮겨 다닌 적도 있다. 그렇게 자고 나면 아침에 일어나도 하나도 개운하지 않다.
하지만 회사에서 계속 야근을 하기 싫거나, 혹은 야근을 할 수 없는 상황인 경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가방 한 가득 일거리를 가지고 집으로 올 수 밖에 없다. 그 경우에 가족들에게 최대한 예의를 지키는 방법은 샤워하고 밥먹고 TV 보면서 수다도 좀 떨다가 방에 들어가서 랩탑을 열고 일을 마치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이럴때마다 드는 생각은 랩탑, 스마트폰, 인터넷, 클라우딩 등등의 기술 발전은 모두 회사원들의 노동착취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고용주들이 비밀리에 R&D 비용을 후원하는 단체에서 개발해 내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상상이다.
3. 직장과 집의 적정한 거리는?
‘A 과장, 내가 어제 집에가면서 생각을 해 봤는데, 그 문제는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나의 멘토는 정말 열심히 일하시는 분이셨다. 위의 문장은 그 분이 그 전날 새벽2-3시에 퇴근을 하시고, 다음날 아침 6시반에 출근하면서 부하직원에게 하셨던 말씀이다. 이 이야기의 상대방인 A 과장님도 1시에 퇴근해서 7-8시에 나오는 사람이다. 2시에 퇴근해서 7시에 출근하는 사람이 ‘집에 가면서 생각을 해봤다’라고 말하는 것은 은근히 부담이 되는 코멘트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그 분의 댁은 분당이셨고, 회사는 역삼동 이었다. 새벽에 차로 달려도 3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인데, 차속에서 생각을 하신걸까? 꿈속에서 생각을 하신 걸까?
출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예전에 한 논문에서 직장인에게 적절한 통근거리에 대해서 언급한 것을 본 적이 있다. 회사에 가깝게 살면 가깝게 살 수록 좋을 것 같지만, 우리의 뇌는 한가지 일에 너무 몰입하면 RLS 같은 장애를 겪을 수도 있기 때문에, 중간 중간 어느 정도 OFF 를 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 퇴근길이 20-30분 정도 거리가 되어야만 회사일을 머릿속에서 잊고 다시 한번 리프레쉬(refresh)할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우리는 집에 가는 동안, 차를 타고 가면서 창밖을 보거나 신호등을 보기도 하고,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은 사람구경도 하고, 멍하니 지하철에 붙어 있는 광고판들을 보기도 한다. 초저녁에 번화가를 끼고 있는 전철역을 지날때면 저녁약속을 나가느라 한껏 치장한 젊은 사람들을 보기도 하고, 밤늦게는 취객들의 몸개그를 보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잠시 회사일을 잊고 수다를 떨기도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회사에서 일하던 모드에서 점차 가족과 함께하는 모드 혹은 친구들과 한잔 하는 모드로 뇌의 준비태세를 바꿀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 이런 중간과정없이 회사에서 집으로 5분만에 직행하면, 우리의 뇌는 아직도 회사에서 보고 있던 엑셀 파일의 셀들을 순환참조하며 하염없이 돌고 있다.
집이 회사에서 너무 가까우면 집에 가서 계속 회사 생각이 난다. 아직 모드 전환이 완벽하게 되지 않은 것이다. 그럴때면 TV를 보거나, 샤워를 하거나, 아니면 자녀들과 놀면서 잠시 뇌를 공회전 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특히 남자들은 피곤하거나 외부에서의 상처가 있거나 하면 말수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데,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표현하는 ‘동굴에 들어가는’ 경우이다. 동굴에 들어가기를 좋아하는 남자들은 TV뉴스나 드라마 등을 보면서 멍때리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때면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맥주나 한잔 마시면서 TV에 집중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이 때 하룻동안 있었던 일들을 공유하고 싶은 여성들은 그들에게 자꾸 말을 건다. 그러나 그 순간 남자의 뇌는 공회전을 하는 중이고, 말문도 닫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부인들이 아무리 말을 걸어도 정신이 빠진 사람처럼 보인다. 반면 여자들은 이런 점에서 유리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현명하다고 해야할지 모를 습성이 있는데, 그것은 수다를 떨면서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잊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비활성화 되면서 OFF를 시키는 남자들과 달리 오히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더 활성화 되면서 회사 일이 OFF가 되기 때문에 더 관계지향적인 방법으로 일에서 생활로 모드 전환이 되는 것 같다. 물론 모든 남자, 모든 여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정도의 차이나 스타일의 차이는 물론 있을 것이다.
4. 습관적 야근과 늦게 집에 가는 직장 상사
한국의 직장인에게 퇴근길은 두가지 단계로 이뤄질 때도 있다. 첫번째 단계는 누군가를 만나서 저녁식사나 술한잔을 하러 가는 길이고, 그 다음 단계는 그러한 자리를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단계이다. 최근에는 회식도 많이 줄고, 가정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경향이 더 커지고 있기 때문에 퇴근하고 바로 집으로 직행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사람 사이의 네트워킹의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기에 식사 한끼, 술 한잔 할 수 있는 퇴근후의 저녁시간은 많은 직장인들에게 집으로 직행하기에는 어려운 시간일 수도 있다.
첫번째 단계의 퇴근길은 무척 길이 막히고, 전철도 붐빈다. 특히 서울에서 광화문, 강남역, 종로, 명동, 삼성역 등 오피스가 밀집해 있는 지역에서는 이 시간에 전철을 타거나 길거리를 걸으면 영락없는 컨베이어벨트 위의 짐짝신세다. 내가 내 몸을 움직이는 것인지, 나도 모를 숨겨진 모터가 저 멀리에서부터 나를 밀어 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반면 두번째 퇴근길은 어느 정도의 조정은 가능하다. 간단한 저녁을 하고 조금 일찍 자리를 일어나면 여유있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편하게 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을 놓치면 낮에는 손님대접을 해주며 줄지어 기다리던 택시들에게 배신의 승차거부를 당하면서 택시잡기 경쟁의 대열에 참여해야 한다. 눈치싸움과 위치 선정의 전략등이 난무하는 심야의 택시잡기 경쟁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추억이 되지 못한다. 전철이 아직 끊이지 않았다면 전철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취객들의 알콜기 다분한 날숨을 감내해야 한다. 게다가 혹시 운이 좋지 못하면 서너 사람의 좌석을 모로 누워 강제 점거한 승객을 보며 얼굴 찌푸리는 일을 겪기도 한다. 가끔은 전철 한켠에 사람들이 없이 한적한 자리가 있어서 자리에라도 편하게 앉아볼까 하면, 누군가가 오늘 저녁으로 무엇을 먹었는지를 표시해 놓은 자리가 있기도 하다. 사람들이 피하는데에는 이유가 있었던것 이다.
야근을 늦게까지 하는 경우에는 회사에서 교통비를 지원해 주는 경우도 많다. 물론 택시비의 경우에는 적용되는 시간과 금액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첫번째 단계의 퇴근시간을 놓친 경우에 차라리 아예 느즈막히 회사를 나서서 회사의 교통비 지원혜택을 누리고 한적한 길을 달려서 두번째 야근 시간을 노리는 효율성을 추구하기도 한다. 일찍 나서서 막히는 길이나 만원 전철에서 불쾌한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차라리 심야에 귀가를 하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야근이 습관화 되기도 하는 부정적 효과도 있다.
야근이 습관화 되는 것은 여러모로 안좋은데, 첫번째는 낮 동안에 마음가짐이 흐트러진다는 것이다. 시간을 정해놓고 효율적으로 일을 하기 보다는, ‘어차피 야근한다’라는 심정으로 일을 하게되면 특히 오후에 마주하는 일 중에서는 ‘밤에 한적할 때 혼자 해야지’ 라는 마음가짐으로 미루게 되는 일들도 종종 생긴다. 그 다음으로 부정적인 효과는 혼자만 야근하는 것이 아니라 팀이 다 같이 야근을 하게 되는 현상이다. 즉, 아예 마음놓고 퇴근 시간을 미루는 문화가 만연한 조직일 수록 누구 하나 집에 일찍 가기가 눈치가 보이게 된다. 특히 직급이 높은 사람일 수록 집에 일찍 가주시는 센스가 필요하다. 그러면 사랑받는 직장 상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5. 저녁이 있는 삶은 우리에겐 아직 낯선가?
일본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일본의 전철역 근처에 있는 라멘집에서 종종 저녁을 때우곤 했다. 저녁무렵의 라멘집에는 퇴근 한 후에 라멘을 먹으면서 생맥주를 한잔씩 걸치고 있는 사라리만(샐러리맨)들을 꽤 많이 볼 수 있다. 이들 중에는 혼자서 한잔 걸치면서 라멘을 먹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당시만해도 대학생이었던 나는 혼자 밥먹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신기하게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한 일본인 친구가 그 샐러리맨들은 가정이 있는데도 일부러 저녁을 먹고 들어가는 경우도 가끔 있다고 그랬다. 집에 너무 일찍 들어가면 무능력해보이거나 너무 바빠보이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회사에 일이 너무 없어 보이면 가정에서도 걱정을 한다고 한다. 당시에는 웃어넘겼지만, 사실 우리 주변에서도 가끔은 이렇게 일부러 오버해서 바쁜 척 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음을 깨닫게 되면, 그렇게 우스운 이야기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최근 한 대선후보가 ‘저녁이 있는 삶’ 이라는 문구로 자신의 정책을 대변해서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야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거나, 친구들과 만나서 맥주 한잔 부딪힐 수 있는 여유, 즉 ‘저녁이 없는’ 우리에게 이 문구는 약간은 서글픈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도 일본의 사라리만들 처럼 저녁이 있는 삶에 별로 익숙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저녁 7시면 집에 들어와 있는 아버지들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낯설다. 아버지들도 뻘쭘해서 뭘 해야 할지도 몰라하실 것만 같다. 꼭 중년의 아버지들 뿐이 아니다. 주변의 싱글들 중에서 가끔 늦게까지 일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왜 집에 안가고 있어?’ 라고 물으면 ‘어차피 집에 가도 할게 없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올 때가 있다. 이런 대답을 들을 때면 갑갑함을 느낀다. 쉴줄 모르고, 놀줄 모르고,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은 함께 일하고 싶지 않지만, 더 갑갑한 것은 쉬고, 놀고, 즐기지 않더라도 일 외에는 딱히 달리 할 일이 없는 사람이다.
글: MBA Blogger
출처: http://mbablogger.net/?p=4926